[김현주 더봄] 제주의 미술축제, 제주비엔날레만의 감흥
섞어서 모이고 바뀌는 제주의 문화
지역의 가치를 담은 제주비엔날레

제주 출장을 다녀왔다. 일정이 여유 있지 않았지만 시간을 쪼개서 방문하고 싶은 곳이 있었다. 제주비엔날레 전시장이다. 제주에서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대한민국 미술 축제' 포스터 때문이었다.
9월 전국 단위로 시작되는 대규모 미술 행사를 소개한 포스터였는데 키아프서울, 프리즈서울, 경기도자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와 함께 제주비엔날레가 적혀 있었다. 다른 행사장은 한두 번은 가봤는데 지금까지 제주비엔날레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제주의 비엔날레는 어떤 작품들을 선보일지 궁금했다.
8월 2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 제주돌문화공원, 제주 원도심(제주아트플랫폼·예술공간 이아·갤러리 레미콘)에서 열리고 있는 제5회 제주비엔날레는 20개국 69명(팀)의 작품을 전시한다.
올해 비엔날레는 <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 변용의 기술>을 주제로 제주의 문화적 특성을 '연결과 융합'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고 있다. 제주의 토착문화가 북방 문명과 만나 섞이고(허끄다), 모이고(모닥치다) 다시 변용(이야홍)되어 온 과정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제주 민요의 후렴구인 '이야홍'을 넣는 등 제주어로 제시된 이 주제는 흐르고 섞이며 다시 태어나는 변용의 과정을 제시한다.
제주는 북방과 남방 문화가 공존하고 충돌해 만들어 낸 특별한 문화 지형을 가지고 있다. 2년 전 개최된 네 번째 비엔날레가 해양 문화를 중심으로 형성된 '표류'의 제주를 구현했다면 이번에는 육지로부터의 영향을 '문명의 변용'이란 측면에서 풀어내고 있다.
여기에서 변용이란 제주라는 주체와 바깥 문화라는 타자 사이에서 변주와 융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유배, 신화, 돌 문화 등 각 전시장을 대표하는 단어들은 신화와 정치의 북방 문화가 제주 문명에 미친 영향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추사 김정희가 만년에 도달한 예술적 경지 '불계공졸(不計工拙): 잘하고 못함을 따지지 않는다'를 선언하며 전시는 시작된다. 소박하고 서툴게 보이는 작품도 좋은 작품이란 뜻인데 제주에 유배를 온 추사가 남긴 '세한도' 영인본, 작자미상의 제주 문자도, 현중화의 '취시선', 오석훈의 '한라영곡' 등의 작품이 이어졌다.
'귤화위지(橘化爲枳):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라고 적힌 방으로 들어가니 변시지의 '풍파', 강요배의 '도새기 통시', 홍종명의 '망향' 등 제주에 와서 조형이 변한 작가들과 그 제자들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1층에 단독으로 조성된 시민갤러리에서는 추사의 유배 기록과 천주교인 정난주의 유배, 이재수의 난 등 민란과 저항의 역사, 제주 민요 등을 그림과 글씨로 풀어낸 이진경의 '나는 그 초록인가'를 선보이고 있었다. 척박한 환경과 어지러운 역사적 기억에 민요와 노동요, 생활의 흔적을 끌어들인 이 작품은 700년이 넘은 역사 속에서 잊히고 밀려난 존재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려주는 듯했다.
2층에는 '세한(歲寒) : 동시대 유배'를 제목으로 제주로의 유배라는 역사적 경험을 난민과 이주, 강제 이동 등 오늘의 문제와 연결하는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었다. 이쥬의 '아포리아의 증인'. 아슬란 고이숨의 'Volga' 등 체첸, 아랍 지역, 캐나다, 중국, 예멘 등의 작품 속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다른 역사를 살아온 이들의 격변 속 현실을 바라보며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비엔날레는 지역 미술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힘과 노력을 잘 담아내는 게 중요하다. 올해 열린 여러 비엔날레 중 제주비엔날레는 제주가 가진 '장소성'의 의미를 충실히 구현했다고 생각한다. 유배, 돌, 신화, 바람 등 제주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를 돌아보며 이동과 생존, 인간과 자연 등의 보편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게 만드는 전시다.
추석 연휴 제주에 내려간다면 비엔날레가 열리는 미술관을 찾아 제주 섬이 가진 생명력과 받아들여 변하는 역동적인 태도를 감상해 보는 것을 권한다.
hyunjoo71@hanmail.net

김현주 한국국제교류재단 글로벌센터사업부장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7년간 <코스모폴리탄>, <우먼센스> <모닝캄>등 주요 잡지의 편집장으로 활약한 콘텐츠 전문가다.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을 거쳐 현재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문화 교류 업무를 맡고 있으며, 50대 중년이 되어 발견한 일상의 여유와 경험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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