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골의 목소리를 담은 이야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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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한 다큐멘터리 상영 소식이 SNS를 통해 알려지자, 일부 사람들이 "여성영화제에서 어떻게 이런 작품을 상영할 수 있냐"며 불만을 드러냈다.
용주골을 비추는 이야기조차 정말 용주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분이 용주골에 살면서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고 '주민'이 되어간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쫙 해주셨거든요.
내가 이 업주들을 본 건 사실 한정적 기간이지만, 용주골 투쟁을 통해 본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는 데 그들의 이야기를 뺄 순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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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한 다큐멘터리 상영 소식이 SNS를 통해 알려지자, 일부 사람들이 “여성영화제에서 어떻게 이런 작품을 상영할 수 있냐”며 불만을 드러냈다. 논란의 작품은 바로 영화 〈용주골〉이다.
영화는 파주시의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폐쇄 결정을 마주한 용주골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한 연대자들의 이야기다. ‘여성인권’을 거론하며 이루어지는 집결지 폐쇄 과정에서 일어난 폭력과, 거기에 저항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관련 기사: 파주 용주골, 여기 아직 사람 있어요 https://www.ildaro.com/9826)
영화 〈용주골〉엔 거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다. 그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왜 거기서 살게 되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공간 폐쇄가 어떤 의미인지를 묻고 답을 들으며,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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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영화 〈용주골〉을 만든 홍지연 감독(좌)과 박나혜 씨(우)가 노트북에서 용주골을 검색한 결과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일다 |
이번이 첫 영화 연출인 홍지연 감독, 그리고 기획·구성으로 참여한 박나혜 씨를 만나 〈용주골〉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은 용주골을 방문했던 연대자로, 현장에서 의기투합하여 영화를 만들었다.
-저도 파주시의 행정대집행 소식을 듣고 용주골에 몇 번 찾아갔는데요. 두 분은 언제, 왜 용주골에 가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홍지연: 2023년 봄인가 여름 즈음부터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SNS 계정을 통해 용주골 소식을 처음 접했어요. 당시 저는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이라는 모임 활동을 했는데, 그 구성원 중에 차차 활동가가 있어서 용주골 소식을 종종 전해주었어요. 그때마다 ‘한 번 가봐야 하나’ 했는데, 일 때문에 제주도에 있을 때여서 파주까지 가기 어려웠죠. 그러다가 2023년 11월, 파주시에서 행정대집행을 한다고 했을 때 마침 일주일 정도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였어요. 사실 ‘대집행’이라는 게 뭔지도 몰랐지만 용역이 용주골에 들어올 거고, 그걸 막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일단 가야겠다 싶었어요.
박나혜: 아직 학생이었고 페미니즘을 막 배우기 시작한 때였어요. 페미니즘 독서모임도 했는데 그 모임에서 용주골 소식을 알려주더라고요. 언젠가 학교에서 ‘안락한 의자에 앉아서 책만 보고 현장을 모르면 안 된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그게 생각나더라고요. 책만 붙들고 페미니즘 공부를 할 게 아니라 현장에 가봐야겠다고요. 제가 대전 사람이라 파주가 꽤 멀긴 했는데 그래도 가야겠다 싶었어요. 하나 웃긴 일은, 제가 현장에 가는 게 처음이니까 집회나 시위는 당연히 사람이 엄청 많이 모이는 걸로 생각을 한 거에요. 지역별로 모여서 출발하는 버스가 있는 줄 알고 ‘대전에선 어디서 출발하나요?’ 이렇게 물었다가 머쓱해진 일이 있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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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용주골〉의 스틸컷. 용주골의 모습 |
-용주골에 갔을 때 첫인상은 어땠나요?
지연: 용주골 현장과 연대하기 전까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완전 타자화했던 것 같아요. 용주골은 무섭고 이상한 곳이고, 나와 다른 사람들만 있을 거라고요. 근데 막상 용주골에 가니까 그렇지 않더라고요.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졌고요. 오히려 전 이들을 바라보는 공무원이나 용역의 눈빛이 더 이상했어요. 용주골 사람들은 당장 자기들 집이 뜯겨나가는 상황인데, 공무원들의 눈빛은 그들을 골칫덩어리 바라보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괘씸했고, 기억에 남아요.
나혜: 현장에 있는 활동가들을 보고 반했어요. 나는 빈 박스 활용해서 피켓 적는 일도 한참 걸리는데 그들은 쓱쓱쓱 하더라고요. 다른 일들도 척척 했고요. ‘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현장에서 활동을 했던 걸까?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용주골에선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연대자여도 한두 번 가고 안 갈 수도 있는데, 왜 용주골 현장을 계속 찾게 되셨나요?
지연: 그곳에 여자가 있으니까.(웃음) 왜 용주골 현장에 마음이 동했을까 생각해 보면 연대자들이 함께 하기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농성장이 있었고, 거기서 먹고 잘 수 있었거든요. 한동안 용역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까 계속 상주해야 했는데, 용역이 안 들어오면 그냥 거기서 놀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다 보니 용주골 사람들, 연대자들이랑 친해지고 그곳에 대한 애정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나혜 님도 알게 됐고, 친해지게 됐고요.
저한텐 페미니스트, 퀴어 등 여러 정체성이 있지만 계급에 대한 것 또한 중요한 정체성이거든요. 빈곤을 경험했다는 게 내 안에서 중요한 부분인데, 그동안 여러 곳에서 활동하면서 소외감이 들 때가 좀 있었어요. 열등감 같은 거였죠. 빈곤,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용주골에선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용주골에 자주 가게 된 것 같아요.
나혜: 거기서 싸우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고, 함께 싸우는 구성원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용주골에 있으면서, 내가 머리로 배운 것들이 현장과 연결되는 경험을 여러 번 했는데, 그걸 깨닫게 되는 부분도 재미있었어요.
-두 분은 어떻게 알게 된 건가요?
나혜: 우리 처음 만난 거 기억나요? 난 기억이 안 나.(웃음)
지연: 나혜 님은 그냥 항상 농성장에 있는 사람이었어요.(웃음) 나혜 님을 처음 만나기 전에 사람들이 모여서 밥 먹는 공간이었던 사랑방에서 수다를 떨다가 “오늘은 누가 여기서 자고 가요?”라는 말이 나왔어요. 별이(용주골 성노동자, 자작나무회 대표) 님이 “나혜 님은 당연히 자고 가지. 대전 살잖아.”라는 말을 했던 게 기억이 나요. 그래서 ‘아, 대전 사는 분이 있구나’ 했죠.
나혜: 지연 님은 처음부터 사람들한테 호감을 많이 샀던 것 같아요. 전 용주골에 처음 혼자 와서, 아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었거든요. 근데 지연 님은 오자마자 사람들이랑 너무 친하게 지내더라고요. ‘저 사람은 뭐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사람인가 보다’ 싶었어요.
지연: 나혜 님은 알고 보니 되게 열정적이더라고요. 스펀지처럼 이야기를 잘 흡수하는 사람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용역들이랑 정말 잘 싸워요.(웃음) 전 용역들이랑 대치하고 그러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좀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데, 나혜 님은 바로바로 막 소리치더라고요. 멋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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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용주골〉의 스틸컷. 용주골 곳곳엔 연대자들이 쓴 종이 피켓이 붙어있다. |
-영화를 찍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연: 사랑방에서 수다 떨고 놀다가 별이 님이 이 투쟁이 너무 의미가 있는데, 기록이 좀 되면 좋겠다, 이걸 누가 다큐로 찍어줬음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길 듣고 ‘이거다’ 싶었어요. 아무도 나에게 그런 걸 시키진 않았지만, 다들 어떤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도 뭔가 하고 싶다는 고민을 하고 있던 차였거든요. 별이 님이 그 얘기를 꺼내길래 덥석 “제가 해보겠습니다” 했죠.
나혜: 저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요. 그러고 나서 정말 며칠 안 있어서 영화 제작 회의가 잡히고, 일이 진행되더라고요. 사실 제가 대학에서 언론을 공부했고 용주골에서 활동하면서 기사를 쓰기도 했단 말이죠. 취재를 하면서 모은 자료도 있었고요. 그래서 지연 님을 좀 부추기기도 했어요.(웃음) 내가 갖고 있는 인터뷰 자료 등을 다 줄테니까, 영화 한번 만들어 보라고요.
-영화가 생각보다 빨리 만들어진 것 같아요. 얼마 안 걸린 거죠?
지연: 2년 걸렸어요.
나혜: 용주골 투쟁이 완전히 다 끝나고 사그라지기 전에, 영화가 무조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연: 용주골 뿐만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에서 성매매 집결지 폐쇄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이걸 ‘해결’해야 한다고 하고 있잖아요. 이 투쟁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론장으로서 역할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조바심 내면서 빨리 만든 것 같아요.
나혜: 이 영화가 “한때 이렇게 싸웠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그곳을 기억합시다”로 전해지지 않았으면 했어요.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할지 같이 생각해 보자”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성매매 집결지 안에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전하고 싶어
-서둘러 완성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또 다른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지연: 어려운 점... 너무 많았죠. 일단 영화를 계속 만드는 일 자체가 어려웠어요. 누가 등 떠밀어서 하는 일도 아니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제작비도 거의 없었고요. 연출은 처음이다 보니 그것도 어려웠죠. 또 성노동 담론을 오랫동안 고민해 왔던 것도 아니니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담을지 계속 고민했던 것 같아요. 나혜 님이랑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나혜: 영화에서 용주골 성노동자 분이 “나는 내 일에 뿌듯함이 있다, 내 일을 좋아한다”는 식으로 자부심을 드러내는 장면이 있어요. 전 처음에 그 장면을 넣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사람들이 성노동자들을 ‘피해자’로 프레임화하는 것 때문에 일부러 넣는 장면 같았거든요. 근데 지연 님이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에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 있고, 그 노동이 자신의 삶의 일부로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어요. 시간이 좀 지나니까 그 말에 동의가 되더라고요. 제가 노조에서 일하는데요. 노동자들을 보면, 회사가 하는 짓이 싫지만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선 자부심이 있어요. 그리고 그 자부심은 항상 누군가와 연결이 되어 있더라고요. ‘내가 누군가를 돕고 있고, 무언가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그런 자부심이요. 그래서 노동의 의미가 드러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특히 용주골에서는요.
-두 분은 원래 용주골의 연대자이자 활동가였잖아요. 영화를 만들면서 ‘내가 너무 한쪽의 이야기에 치우치는 건 아닌가?’라는 고민은 없었나요?
지연: 파주시에서 쏟아내는 보도자료와 언론 기사들이 너무 많았어요. 일일이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요. 반면, 용주골에서 내보낼 수 있는 이야기는 너무 한정적이었죠. 용주골을 비추는 이야기조차 정말 용주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용주골 목소리를 담은 이야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영화를) 용주골과 ‘거리두기’ 하며 만들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용주골 이야기를 한발 뒤에서 지켜보고 분석하고, 그들이 경험하는 문제들을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생각한다? 그런 일은 불가능했을 거고, 사실 그런 태도를 갖고 싶지도 않았어요.
-영화에는 성노동자 뿐만 아니라 업주, 동네 주민 등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요.
나혜: 영화에는 안 나온 이야기인데요. 용주골에서 주방이모로 일하다가 업주가 된 분이 있어요. 그분이 용주골에 살면서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고 ‘주민’이 되어간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쫙 해주셨거든요. 아무래도 ‘성매매 업주’라고 하면 사람들로부터 차단되기 쉬운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던 거죠. 용주골이 폐쇄된다는 건 그렇게 쌓아온 관계들, 삶이 없어진다는 거라는 이야기를 했던 게 생각이 나요.
-용주골 부녀회 이야기에서도 그런 말들이 나왔었죠.
지연: 부녀회 이야기는 저한테 좀 놀라웠어요. (업주들이 모인) 부녀회가 지역 안에서 공동체로 함께 살아갔고, 심지어 표창장도 받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그분들이 지금 억울해 하는 것도 이해가 되긴 해요. 파주시가 지금은 완전 그들을 가해자로 몰아가고 있으니까요.
-영화를 보면서 계속 고민되는 지점이 있었어요. ‘업주들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이해해 줘야 하나? 그럼 끝이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이요. 두 분도 영화 만들면서 스스로에게 남는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지연: 저도 비슷한 고민을 했어요. 업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카메라에 어떻게 담을 것인지요. 내가 이 업주들을 본 건 사실 한정적 기간이지만, 용주골 투쟁을 통해 본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는 데 그들의 이야기를 뺄 순 없었어요. 오히려 그들의 이야기를 빼놓고 영화를 만든다는 게 스스로 안 받아들여지더라고요.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보여줄 게요, 업주 이야기를 빼고요.’라고 하고 싶지 않았어요. 특히 파주시가 용주골을 폐쇄한다고 하면서 한 말이 ‘성매매 여성은 세뇌당한 피해자다, 업주들은 다 가해자다’니까요.
사실 저도 용주골에 있으면서 ‘여기 진짜 피해가 없을까? 가해자가 없을까?’ 이런 생각 많이 했는데요. 당연히 있지 않을까요? 피해가 있어서 탈성매매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계 등의 이유 때문에 일을 계속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너무 다양하게 있겠죠. 하지만 지금의 ‘이분법적’ 논의만으론 오히려 피해자가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만약 내가 용주골의 성노동자인데 피해자이기도 하다면, 집결지 폐쇄를 앞두고 그 피해를 말할 수 있을까요? 내가 사는 곳이 없어질 텐데 말이죠.
그러니까 전 ‘피해자-가해자’의 이분법적인 위치가 아니라 용주골 안 관계의 복잡성을 좀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업주들의 이야기를 넣으려고 했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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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용주골〉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박영숙살림이상’을 수상했다. (출처: 촌 CHON SNS) |
-앞으로 영화가 많이 상영돼서 사람들이 논의를 펼쳐가면 좋을 것 같아요. 특히 어떤 분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나요?
지연: 영화 상영 소식 이후 SNS에서 욕을 좀 먹었는데요. 전 그렇게 말하신 분들이 한번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분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 사람의 이야기를 접하고 구체적인 모습을 보면 마음이 또 달라질 수 있잖아요? 이 영화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성매매 집결지라는 장소 안에 정말 다양한 캐릭터의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전하고 싶어요.
영화를 만드는 내내 성노동자 당사자들을 많이 생각했어요. 미디어에 비춰지는 그들의 모습은 대체로 불행을 이야기해야 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성노동을 선택했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계속 설득하잖아요. 그게 좀 답답했었어요. 유달리 불행하지 않더라도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런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폭력적인 행정을 당하고 무시를 당해선 안 되는 거잖아요? 그냥 그들의 삶을 담고 싶었고, 그게 당사자들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나혜: 이 영화가 모두가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영화제 상영 때 가족, 친척, 친구들한테 엄청 홍보했고 실제로 보러 온 사람도 꽤 있었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다들 뭔가를 느꼈는지 나한테 엄청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가족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대토론을 벌였어요. 어느 장면을 두고 ‘그건 왜 영화에 들어갔을까’부터 ‘들어갔어야 했다, 아니다 뺐어야 했다’ 등 각자 느낀 것과 생각하는 걸 얘기하는데, 그걸 보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런 이야기의 장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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