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그룹 ‘왕좌’ 흔드는 장녀의 역습…안갯속 빠진 2세 후계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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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그룹의 경영권 승계 구도가 다시 한번 짙은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의 장녀인 김주원 DB그룹 부회장이 그룹 지주사 격인 DB Inc. 지분을 처음으로 매입하면서다. 사실상 후계자로 낙점됐던 장남 김남호 DB그룹 명예회장이 지난해 돌연 경영 일선에서 후퇴한 가운데, 김 부회장이 그룹 내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대하면서 향후 남매간 지분 경쟁이 본격화할지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DB그룹 측은 김 부회장의 지분 취득을 두고 "대주주로서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정상적인 주식 매입"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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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전면서 물러난 장남 vs 보폭 넓히는 장녀…후계 구도 가를 김준기의 선택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DB그룹의 경영권 승계 구도가 다시 한번 짙은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의 장녀인 김주원 DB그룹 부회장이 그룹 지주사 격인 DB Inc. 지분을 처음으로 매입하면서다. 사실상 후계자로 낙점됐던 장남 김남호 DB그룹 명예회장이 지난해 돌연 경영 일선에서 후퇴한 가운데, 김 부회장이 그룹 내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대하면서 향후 남매간 지분 경쟁이 본격화할지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경영 이어 지분 매입까지…보폭 넓히는 장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김 부회장은 현재 DB Inc. 주식 650만 주(지분율 3.23%)를 매입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번 거래는 기관투자가 등이 보유한 주식을 장 개시 전후에 대량으로 인수하는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추진되며, 거래 기간은 올해 9월28일부터 10월27일까지다.
거래금액은 약 96억원 규모에 달한다. 김 부회장은 주식 매입 자금 전액을 외부 차입 없이 근로소득과 금융소득 등 자체 현금으로 부담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부친인 김 창업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증여받고 2021년 모친 고(故) 김정희 여사로부터 지분을 상속받은 이후, 김 부회장이 직접 시장에서 DB Inc. 지분을 사들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매수 절차가 마무리되면 DB그룹 오너 일가의 지분 지형도에는 상당한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기존 DB Inc. 주식 1986만1669주(9.87%)를 보유 중이던 김 부회장의 지분율은 단숨에 13.1%(2636만1669주)로 뛰어오른다. 이에 따라 현재 DB Inc. 최대주주인 남동생 김 명예회장(16.83%)과의 지분율 격차는 기존 6.96%포인트에서 3.73%포인트로 대폭 좁혀지며, 경영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가시권에 들어서게 된다.
1973년생인 김 부회장은 서울예고와 연세대에서 음악을 전공한 뒤 결혼 후 주로 미국에 체류하며 오랫동안 그룹 경영과는 거리를 둬왔다. 그런 그가 경영 전면에 뛰어든 것은 2021년 DB하이텍 미주법인 사장으로 선임되면서부터다. 이듬해인 2022년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그룹의 해외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김 부회장 부임 이후 DB그룹의 해외 진출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그룹의 핵심 캐시카우인 DB손해보험은 2024년 베트남 손해보험사 2곳을 인수한 데 이어, 올해 5월에는 미국 특화보험사 포테그라를 약 2조3000억원에 사들였다. 이는 국내 보험사가 미국 현지 보험사 경영권을 인수한 첫 사례다.
재계에서는 뒤늦게 경영에 뛰어든 김 부회장이 단기간에 실세로 부상한 배경으로 부친인 김 창업회장의 각별한 신임을 꼽는다. 2017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김 창업회장이 미국에 머물던 시기, 김 부회장이 지근거리에서 부친을 보좌하며 두터운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모친 김정희 여사 별세 당시 김 여사의 DB Inc. 지분(1.1%)이 남편 김 창업회장(0.41%)과 장녀 김 부회장(0.68%)에게만 상속된 사실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는다.
장녀의 화려한 부상은 남동생인 김 명예회장의 2선 후퇴와 맞물려 더욱 극명하게 대비된다. 1975년생인 김 명예회장은 2020년 7월, 40대의 젊은 나이에 그룹 회장직에 오르며 2세 경영의 막을 올렸다. 부친의 퇴진에 따라 자연스레 장남이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만 50세로 한창 기업을 이끌어야 할 시기에 돌연 명예회장으로 추대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공석이 된 회장 자리는 김 창업회장의 대학 동문이자 오랜 최측근인 이수광 전 DB손해보험 사장이 채웠다. 당시 사 측은 "경영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검증된 전문경영인을 전진 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안팎에서 무성한 뒷말이 나왔다.

내년 3월 정기 주총이 최대 분수령
재계에서는 김 명예회장 퇴진의 결정적 원인으로 '부자(父子) 갈등'을 지목했다. 2021년 김 명예회장이 부친의 동의 없이 알짜 계열사인 DB하이텍 매각을 추진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2022년 말 김 창업회장이 DB Inc. 지분을 11.61%에서 15.91%로 오히려 확대한 것은 승계 시 지분을 줄이는 일반적인 행보와 대조되며 불화설에 불을 지폈다.
올해 3월, 끊이지 않는 경영권 분쟁설에 대해 김 명예회장은 "회사 경영과 관련해 부친과 이견이 있었던 적은 있지만, 창업자이신 부친께 맞설 생각을 한 적은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이례적인 입장문을 냈다. 갈등설을 일부 인정한 동시에, 그룹 내 김 창업회장의 장악력이 여전히 절대적임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DB그룹 측은 김 부회장의 지분 취득을 두고 "대주주로서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정상적인 주식 매입"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본다.
현재 DB Inc. 오너 일가 지분은 김 명예회장(16.83%), 김 창업회장(15.91%), 김 부회장(13.1%)으로 팽팽하게 나뉘어 있다. 여기서 김 창업회장이 장녀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상황은 뒤집힌다. 그룹 핵심인 DB손해보험 역시 김 명예회장이 9.01%를 쥐고 있지만, 김 창업회장(6.43%)과 김 부회장(3.40%), 그리고 창업회장 측 우호 지분인 김준기문화재단(5.40%)을 합치면 15%를 넘어서며 장남을 압도하게 된다.
재계는 내년 정기 주주총회를 경영권 향방을 가를 최대 분수령으로 주시하고 있다. 김 명예회장의 DB Inc. 사내이사 임기가 내년 3월로 만료되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재 경영 자문에 머무르고 있는 김 명예회장이 이사회에서마저 배제되고 김 부회장이 지분 확보에 속도를 낸다면, 후계의 추는 장녀 쪽으로 급격히 기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3월 김 명예회장은 부자 갈등설을 일축하는 입장문을 내며 "DB는 창업자를 중심으로 한 안정적인 경영권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기업이며,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이 번갈아가며 그룹 회장직을 맡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차기 회장직을 맡을 대주주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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