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 지성을 낳은 땅, 사색하며 걷는 '선비의 길' [지도 위를 걷다 안동 퇴계예던길]

신용석 기획위원 2026. 9. 22.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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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退溪 이황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안동의 퇴계예던길 얘기를 듣고, 퇴계와 선비 두 단어를 연관시켜 보았다.

이곳은 퇴계예던길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이고, 소설이나 영화로 치면 클라이맥스 지점이니, 안동시에서 '조망 관리'를 해주기 바란다.

'안동선비순례길'과 '퇴계예던길'을 혼용하고 있었고, 같은 장소에 있는 여러 이정표 중 거리가 다른 경우가 많았다.

2코스 종점인 퇴계종택退溪宗宅으로 가기 위해 도산을 넘어가는 퇴계명상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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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퇴계예던길 4코스(9km)와 2코스(13km)
고산정과 가송협. 강 건너의 고산정을 바라보면 절로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름다운佳 소나무松가 많은 이 협峽곡을 가송협이라 부른다. 퇴계예던길 최고의 비경인데, 기후변화로 수량이 줄어들어 옛 풍경이 사라지지 않을지 걱정이다.

퇴계退溪 이황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안동의 퇴계예던길 얘기를 듣고, 퇴계와 선비 두 단어를 연관시켜 보았다. 퇴계는 누구인가? 1,000원 지폐에 그려질 정도의 위인인데, 업적이 생각나지 않았다. 선비라는 단어를 검색하니 '권력과 재물을 탐하지 않고, 의리와 원칙을 중시하면서 학문을 닦는 사람'이다. '중국에 군자君子가 있고 일본에 사무라이가 있다면, 조선에는 선비가 있다'는 글도 떠올랐다. AI에 한국의 대표 선비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퇴계 이황'이라고 답했다. 즉 퇴계는 조선 최고의 지성인이자 스승의 표상이다.

안동에서 태어난 퇴계는 34세 때 처음 관직을 맡은 후, 노년까지 한양과 고향을 오가며 오늘날 서울대학교 총장, 여러 장·차관, 대통령 고문 등을 지냈다. 그가 한양과 고향을 수차례 오고 간 이유는 이런저런 핑계로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의 아름다운 산수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향의 개울로 물러났다는 뜻인 퇴계退溪를 자신의 호로 삼았다.

그가 권력을 마다하고 늘 돌아가고자 했던 고향의 산수는 어떤 곳일까? 그곳은 안동의 북쪽 낙동강 상류다. 멀리 청량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그 아래 봉긋봉긋한 봉우리들 사이로 강물이 굽이치며, 강을 따라 조붓한 오솔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강물이 햇살에 반짝이거나, 안개가 서리거나 노을이 내려앉아 한 폭의 동양화가 연출되는 곳이다. 퇴계가 친구를 기다리다가 "나 먼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라고 읊지 않을 수 없었던 곳! 그곳으로 간다.

산은 첩첩하고, 강은 구불거리고. 건지산에 오르며 바라본 산과 강. 맨끝 산줄기의 왼쪽에 청량산 정상 장인봉(870m), 오른쪽에 두 봉우리를 연결하는 하늘다리가 가느다란 선처럼 보인다. 산 아래에 퇴계의 스승이자 숙부가 거처했던 청량정사가 있다.

안동 퇴계예던길 4코스 단천교~고산정 9km

'산에 가는 것은 독서를 하는 것과 같다'는 명언이 나온 곳

예던길이란 말이 생소하다. 본래 '걷는 길'이란 뜻의 '녀던길'이었는데, '예전에 걷던 길'이라는 의미를 더하여 '예던길'이라 부른다. 퇴계예던길은 퇴계가 그의 스승이 있는 청량산을 향해 걷던 길, 그리고 제자들과 자연을 벗하고 학문을 논하며 걷던 길이다. 퇴계 사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와 인품을 되새기며 이 길을 걸었다.

강과 산의 풍경이 얼마나 좋았던지 아름다운 절경에 매료된 퇴계는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을 지어 그곳을 예찬했다. 그중에서도 제11곡은 교과서에 수록되어 우리 귀에 익다. 어려운 한자를 쉽게 풀어 쓰면 다음과 같다.

'저 산은 어찌하여 영원히 푸르르고 / 저 강은 어찌하여 밤낮으로 흐르는가 / 우리도 저 산처럼 저 강처럼 영원히 푸르리라.'

안동시는 '퇴계의 길'과 주변의 명소를 엮어 9개 코스의 길을 냈다. 그중에서 퇴계의 발자취가 가장 많고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 퇴계예던길 4코스다.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단천교가 시작 지점이다. 지금은 퇴계가 도포자락을 날리며 걷던 때의 풍경은 아니다. 아스팔트 도로와 둔탁한 교량과 여러 안내판들이 무질서하게 섞여 있다. 교량 입구에서 왼쪽으로 가면 4코스 퇴계예던길이고, 교량을 건너면 5코스 왕모산성길(12km)의 중간지점이다.

4코스를 따라 시멘트 길을 걷다 보니, 초입에 있는 '녀던교' 돌비석을 풀들이 가리고 있다. 글자에 붙은 풀줄기를 떼어내고, 풀섶을 옆으로 젖혀 비석을 드러나게 했는데, 그때 벌레들이 쏘아댄 손가락이 일주일 이상 가려웠다. 시멘트 길이 무료했지만, 길 끝에는 퇴계가 예찬한 기막힌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충만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30분쯤 걸어 도착한, 길 언덕 위의 정자에서도, 그 위의 청량산전망대에서도 '고대했던' 풍경을 나무들이 거의 가리고 있다. 그나마 정자의 난간 위에 올라 까치발을 하고 퇴계가 바라보았을 먼 경관을 바라다본다. 멀리 청량산의 부드러운 스카이라인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그 아래로 중간 산들이 첩첩하게 어긋나 내려오면서, 산줄기 굽이굽이 사이로 낙동강 물줄기가 구불구불 흐르고 있다.

가까운 풍경은 모두 나무숲에 가렸다. 가려진 그곳에 여울이 있을까, 물소리만 "쏴아 쏴아~" 들려 애를 태운다. 이 지점이 퇴계가 풍경에 취해서 친구를 기다리지 못하고 "나 먼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라며 읊었던 바로 그곳일 것이다.

'산봉우리 봉긋봉긋, 물소리 졸졸 / 새벽빛 걷히며 붉은 해 솟아오르네 / 강가에서 기다렸지만 그대는 오지 않아 / 나 먼저 고삐 잡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

녀던길 비석과 퇴계. 퇴계예던길의 시점에 '녀던길' 비석이 있고, 조금 더 가면 창고형 건물의 벽에 퇴계로 보이는 선비가 걷는 그림이 있다. 사진 오른쪽에 멀리 건너가야 할 건지산이 보인다.

이곳은 퇴계예던길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이고, 소설이나 영화로 치면 클라이맥스 지점이니, 안동시에서 '조망 관리'를 해주기 바란다.

퇴계가 걷던 길은 여기서 강변으로 내려서는 길이었는데, 사유지라 막혀 있어, 왼쪽의 건지산(559m)으로 올라가 우회해야 한다. 멀리서 걸어온 여행자에게는 부담스러운 산길이다. 초입은 급경사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길을 가린 수풀을 헤치고 올라선다. 이따금 길 흔적이 여러 곳이라 주변의 드문드문한 리본을 잘 살피며 올라서야 한다.

칡덩굴이 바다를 이룬 곳에서 덩굴이 자꾸 발목을 잡는다. 발을 높이 쳐들어야 하는데, 바닥이 보이지 않아 뱀을 밟지 않을지 염려스럽고, 멧돼지가 놀다 간 자리에서는 겁이 나 주변을 둘러본다. 1km쯤 올라서면 경사는 부드러워진다. 그러나저러나 저 아래는 낙동강인데 조망이 없다. 퇴계가 다녔던 길도 아니고, 조망도 없는 4km 산길을 걸으려니, 본래의 길을 막은 분도, 길을 열지 못한 당국도 원망스러웠다.

건지산 정상 직전의 삼거리에서 길은 임도 수준의 넓은 길로 바뀌어 쉽게 내려선다. 계속 학소대 방향의 이정표가 나온다. 학소대鶴巢臺는 학이 사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이정표가 시키는 대로 학소대에 올라섰으나 학소대의 꼭대기일 뿐 학소대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하산길 흔적이 뚜렷해 내려서려다가 절벽의 경사와 낡은 로프를 보고, 오던 길을 되돌아 산줄기를 따라 내려섰다.

왼쪽 벽력암과 오른쪽 학소대. 청천벽력 같은 벼락이 쳐서 수직으로 깎여 나간 절벽이란 의미의 벽력암. 그 아래 깊은 물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가워 '한속담寒粟潭'이라 부른다. 학소대는 학의 둥지가 있었다는 절벽.

시멘트 임도를 만나고, 오른쪽의 짧은 오르막을 올라, 숲 틈으로 드디어 낙동강 풍경을 알현한다. 우람한 산줄기의 아랫도리로 커다란 커브를 도는 강물 주변에 누렇거나 초록빛 밭들이 햇볕을 쬐고 있고, 드문드문한 집들이 미니어처처럼 박혀 있다. 내 고향은 아니지만, 모두에게 고향의 강처럼 느껴질 풍경이다. 노랫말처럼 '눈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 지금도 흘러가는 가슴속의 강'이다.

드디어 강으로 내려와 강물을 만진다. 뜨듯하다. 강물은 커다랗고 뭉툭한 벽력암을 지나, 높고 깎아지른 학소대 절벽을 휘돌아, 길쭉한 강줄기인 미천장담彌川長潭에서 잠시 속도를 늦춘 뒤, 여울에서 하얗게 포말을 튀기며 철철철~ 내려간다. 퇴계는 이곳에서 시를 남겼다.

'이곳은 어릴 때 고기를 낚으며 놀던 곳 / 그 뒤 삼십 년 세월이 어지럽게 지나갔네 / 다시 돌아와 나는 이 강산을 알아보지만 / 이 산과 강도 늙은 나를 알아볼 것인가!'

강과 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농암종택에 들른다. 퇴계가 지극히 존경하며 따랐던 농암 이현보의 집이다. 농암聾巖은 '귀머거리 바위'라는 뜻이다. 세상의 더러운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연과 벗하며 살겠다는 뜻이다. 멀리 학소대를 배경으로 지은 긍구당肯構堂 별당을 바라보니, 낙동강을 오가며 이곳에 들른 퇴계가 농암 선생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덕담을 듣는 장면이 눈에 선하다. 농암종택의 여러 고택은 숙소로 제공되고 있다. 하룻밤 묵으며 별이 쏟아지는 '퇴계의 밤'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제 4코스 마지막 비경인 고산정을 향해 1.2km 도로를 터벅터벅 걷는다. 둥글게 휘어진 길을 한 굽이 돌면, 잠수교 너머, 저 멀리 강 건너에 신선같이 앉아 있는 정자 하나가 보인다. 고산정孤山亭이다. 퇴계의 제자인 금난수가 지은 정자로, 퇴계를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찾아 시를 읊고 학문을 논했다. 겸손하고 조용했던 퇴계의 분위기처럼, 이 정자도 풍경의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에 스며든 분위기다.

건지산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 이 풍경을 대하자마자 '눈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 지금도 흘러가는 가슴속의 강'이라는 노랫말이 생각났다.

고산정 건너편 솔밭의 그늘에 앉아 푸른 산과 맑은 강, 가지를 축축 늘어뜨린 장송과 노란 모래밭, 그리고 고독하기 이를 데 없는 정자가 어우러진 풍광을 바라본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는 그윽하고 사색적인 풍경이다. 시절에 따라,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 말 그대로 바람風같은 경景치다.

강의 양쪽에 두 개의 절벽이 있다. 절벽의 생김새는 같다. 즉 강물이 산을 끊어 협곡을 만든 것이다. 끊어져 떨어진 산을 외로운 산 '고산孤山'이라 부르고, 건너편에서 고산을 바라보는 고산정을 지은 것이다. 협곡 주변에 낙락장송 같은 멋진 소나무들이 많아 이곳을 가송협佳松峽이라 부른다. 이곳은 몇 년 전에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로 유명해졌고, 최근에 국가유산청은 고산정 일대를 명승으로 지정했다.

백두대간에서 발원해 태백과 봉화를 거쳐 이곳에 다다른 강물은 굽이를 돌며 한숨 쉬고 지나간다. 물소리를 숨기고, 잔잔하게 조용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오늘의 강물은 수량이 너무 적다. 가송리 주민인 금찬수(62)씨에게 물어보니, "예전에는 래프팅을 할 만큼 물이 많았는데, 근래에는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말랐니더,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습니더"라고 말했다. 기후변화가 풍경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퇴계예던길의 공식적인 종점은 청량산 2봉인 축융봉(861m)이지만, 그곳에 퇴계의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르내리는 길도 막막해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고산정에서 길 마감을 한다.

그러나저러나 퇴계예던길을 고산정에서 마무리하는 것은 참으로 아쉽다. 퇴계가 그의 산이라고 자랑했던 청량산과 그의 스승이 있던 청량정사가 지척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을 가려고 나섰다가 강가에도, 35번 국도에도 한 치의 길이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생명이 위험하다. 청량산은 봉화 땅이다. 봉화와 안동이 협력해서, 퇴계가 마지막 힘을 내어 걷던 길, 불과 3km 거리를 연결해 주기 바란다. 퇴계에게도 여행자들에게도 큰 기쁨을 주기 바란다.

이 글의 마무리로 '유산사독서遊山似讀書'만큼 훌륭한 인용문은 없을 것이다. '산에 가는 것을 학문과 인격을 닦는 데 필수적인 일'로 여겼던 당시의 선비들에게 퇴계는 이렇게 읊었다.

'산에 가는 것은 독서와 같다. / 산도 공부도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 구름이 휘몰아치는 것을 보아야 오묘한 이치를 깨닫게 되고 / 깊은 곳에 도달해 보아야 문제의 시초를 알게 된다 / 그러니 높은 곳에 도달하도록 힘쓰라 / 늙어서 포기하지 말고.'

산행길잡이

단천교에서 1.5km 지점에 정자가 있고, 이곳에 '해충기피제 자동분사기'가 있는데, 반드시 약제를 충분히 몸에 살포하는 것이 좋다. 그만큼 벌레가 많다. 건지산 오르막은 처음 1km가 다소 가파르고, 길 흔적이 풀섶에 가려 주변의 리본을 잘 보아가며 진행해야 한다. 이후에는 크게 헷갈릴 지점이 없다. 단 학소대 정상에서 낙동강으로 바로 내려서는 절벽길은 매우 위험해 보이므로 이용하지 않는 것을 권한다.

교통

4코스 시점인 단천교까지 안동터미널에서 하루 3회의 시내버스(급행3)가, 고산정 인근의 버스정류장에서 안동(교보생명 건너)으로 가는 시내버스(512번)가 하루 5회 운행한다, 고산정에서 3.5km 떨어진 청량산도립공원 입구에서 봉화까지 시내버스가 하루 4회 운행한다. 단천교에서 약 7km 떨어진 도산면 온혜리에서 택시(856-1031, 010-3522-1031)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숙소(지역번호 054)

맹개마을에 펜션 소목화당(010-7604-0065)이 있고, 농암종택(0507-1391-1652)에서 한옥 스테이를 운영한다. 고산정 인근에 롯지호텔 디여라(010-4411-4385), 가송민박(843-4319)이 있다. 고산정에서 3.5km 떨어진 청량산도립공원 입구에 청량산모텔(674-2267), 참마트 민박(010-8709-2719), 쉼터민박(673-2694)이 있고, 청량산수원캠핑장(674-3381~2)에 카라반, 글램핑, 오토캠핑 등 다양한 야영숙소가 마련되어 있다.

청포도 식당의 산채비빔밥과 더덕구이.  주인이 직접 채취하거나 재배한 제철 채소류로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고 담백하게 만든다. 가성비 높은 건강식이다.

맛집(지역번호 054)

농암종택과 고산정 사이에 있는 종가소반(0507-1369-6381 한우국밥), 청량산도립공원 입구에 있는 청포도식당(010-4549-0108 산나물비빔밥, 더덕구이), 까치소리식당(673-9777 한식, 간고등어)이 유명하다.

도산서원. 부드럽게 굽이치는 낙동강과 봉긋봉긋한 도산의 산들. 도산의 품에 안기듯 들어선 도산서원. 서원의 강 건너편에는 퇴계의 제사를 지내고 과거시험을 치렀던 시사단試士壇. 강에는 풍경이 가득하고 서원에는 책이 가득하다. 그림 이호신 화백.

도산서원길(월천서당~도산서원~퇴계종택) 11km + 퇴계 묘소 1.7km

바깥에는 풍경 가득, 방 안에는 책이 가득

퇴계예던길 전체 9개 코스에서 퇴계의 삶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 2코스 도산서원길이다. 퇴계의 공부방, 강의실, 종가집 저택이 있고, 3코스 초입에 그의 묘소가 있다. 2코스 시점은 월천서당이다. 대중교통이 없어, 1코스 예끼마을에서 7km를 걸어 도착하니, 외딴 독서실에 온 듯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이다. 앞의 안동호도, 가운데 월천서당도, 자그마한 뒷산도 이따금 새 소리만 들릴 뿐 적요하기 그지없다.

호숫가의 작은 언덕에 자리한 월천서당은 퇴계의 제자인 조목이 지은 공부방이다. 오른쪽 귀퉁이에 걸린 현판(月川書堂)은 퇴계의 글씨다. 조목도 퇴계를 닮아, 벼슬을 짧게 하고 낙향해 퇴계를 모시고 공부와 교육으로 여생을 보냈다. 소박하고 단정하게 지은 서당은 햇빛에 눈이 부셔 표정이 환하다.

서당 앞에서 수문장 역할을 하는 은행나무 고목의 연세가 475년 되었으니, 퇴계의 중년 때에 심은 나무다. 나무 밑으로 그려진 동그란 그늘에 앉아, 바로 이 자리에서 50세의 퇴계가 낙동강을 바라보는 장면을 그려본다. 풍경에 취해 공부가 되었겠는가! 그는 아마 강가로 나가 서책을 깔고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지 않았을까. 환한 달빛月川 아래서 밤늦도록.

다음의 퇴계 흔적은 도산서원이다. 그런데 월천서당에서 도산서원까지는 9km의 장거리다. 3시간 넘게 기나긴 데크와 시멘트 길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무료한 길이다. 퇴계의 흔적도 없이, 나무들에 가려 풍경도 없이 꾸역꾸역 걷는 길이다. 중간중간 전망대를 설치하거나, 호숫가로 길을 내 '풍경과 함께 가는 길'로 개선되기를 바란다.

월천서당. 달빛이 흐르는 밤에 마루에 앉아 학문을 논하는 선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바람이 솔솔 불어 공부하기 좋은 언덕이다. 475년 된 은행나무 고목이 서당을 지키고 있다.

이 길의 무료함을 달래 주는 동물들이 있으니 바로 벌레와 뱀이다. 종아리가 따끔해서 깜짝 놀라 만져 보니 무슨 곤충이 쏘았는지 작은 구멍이 나 금방 부어올랐다. 데크에 올라와 일광욕을 하는 유혈목이를 본 후에는 길에 깔린 칡 줄기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했다. 내 땀 냄새가 향긋한지 벌레들이 왱왱거리며 계속 따라왔다. 선비처럼 점잖게 걷지 못하고, 팔을 마구 흔들며 휘적휘적 걸었다.

길 중간에 나무가 쓰러져 나뭇가지들이 데크를 덮었다. 우회할 수 없는 지형이다. 배낭을 벗어 손으로 밀면서, 엎드린 자세로 포복을 했다. 어느 숲속에서는 무성한 풀섶으로 길 흔적이 사라져 한참을 두리번거려야 했다. 이정표에도 문제가 많았다. '안동선비순례길'과 '퇴계예던길'을 혼용하고 있었고, 같은 장소에 있는 여러 이정표 중 거리가 다른 경우가 많았다. '퇴계공원'이라는 불분명한 지명을 쓴 이정표가 계속 나왔다. 이 길은 '관리'가 필요하다.

드디어 아스팔트가 나오고, 건너편에 안동호반자연휴양림이 있다. 이곳에 매점은 없고, 주차장의 간이화장실은 사용할 수 있다. 다시 한참을 걸어 분천리 노인정에 들어가 할머니들께 냉수 리필을 받고 길을 이어간다. 시멘트 길과 아스팔트 길을 40분쯤 걸어 드디어 도산서원 입구에 도착한다.

도산서원은 도산陶山에 있는 '사립 선비학교'다. 도산은 본래 서원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산인데, 지금은 도산면 전체를 이르는 지명이 되었다. 서원의 입구 오른쪽은 낙동강이다. 평소에는 기다란 강이고, 홍수가 나면 호수가 된다. 그래서 강 주변은 넓고 평편한 범람원汎濫原이다.

왕버들의 용틀임. 400~600년생으로 알려진 왕버들의 몸통이 용처럼 휘어져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발길 순서대로 하면 도산의 1경은 시사단試士壇이고, 2경은 왕버들이며, 3경이 서원이다. 시사단은 임금이 퇴계를 추모하기 위해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이후 과거 시험장으로 활용되었다. 안동댐으로 주변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그곳에 축대를 쌓고 정자를 올려놓았다. 강 건너에 단정하게 앉아 있는 시사단이 강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뒤로 드넓은 초록 초지와 전답이 펼쳐져 있는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다.

서원의 마당에서 낙동강 방향으로 왕버들 거목 두 그루가 반은 서 있고, 반은 누워 있다. 하늘로 치솟다가 힘에 겨워 옆으로 누운 듯, 용처럼 몸을 비틀며 다시 도약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에서 노익장의 힘이 느껴진다.

도산서원 건물로 들어선다. 전체적으로, 비탈의 통로 좌우에 엇비슷한 대칭으로, 단출한 한옥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앞에는 강, 뒤에는 산으로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다. 15동의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퇴계가 직접 지어 거처했던 도산서당과 제자들의 기숙사였던 농운정사다.

시사단 풍경. 강과 사람, 산과 들판이 어우러진 동양화. 홍수가 나면 오른쪽 시사대의 축대까지 물이 찬다.

도산서당은 너무 좁다. 부엌 2평, 온돌방 3평, 마루 3.5평에 불과하다. 오늘날 원룸의 면적과 비슷하다. 퇴계가 그 비좁은 공간에서 조선은 물론 중국, 일본의 유교문화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친 위대한 사상을 펼쳤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좁지만 위대한' 방 구석구석을 둘러보게 된다. 마루가 너무 좁아서, 마루 아래 좁은 마당에 수십 명이 앉아서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다. 낮은 담장을 중간에 끊어서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 지혜에 머리를 끄덕여 본다. 그리고 바깥마당에 심어진 매화를 본다.

퇴계는 '매화의 남자'다. 퇴계는 100수가 넘는 매화시를 남겼고, 세상을 뜨던 날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혹독한 겨울에 꽃을 피워 은은한 향을 내는 매화는, 사화士禍로 얼룩진 세태를 이겨내고 깊은 학문의 경지에 이른 퇴계와 닮았다. 퇴계의 서원을 나오면서 그의 시 한 수를 읊어본다.

'이렇듯 마음 가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 눈길 닿는 것마다 운치를 즐기다가 / 문득 집으로 돌아오면 / 고요한 방 안에 쌓인 책이 가득하다.' - 이황 <도산기>

2코스 종점인 퇴계종택退溪宗宅으로 가기 위해 도산을 넘어가는 퇴계명상길을 걷는다. 산비탈에 낸 시멘트 임도라 명상할 만한 분위기는 없다. 고개를 넘어 선비문화수련원을 지나면 곧 퇴계종택이다. 퇴계의 자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는 종갓집으로, 저택의 일부를 일반인에게 숙소로 내어주고 있다.

저택에 들어서니 퇴계의 14대 손이라는 분이 반기며 차 한잔하라고 권한다. 달콤 시큼한 매실차를 마시며 그분에게 여쭈었다.

퇴계의 묘. 위대한 인물의 묘로는 너무 조촐하다. 작은 비석에 이렇게 쓰여 있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 도산으로 물러나(퇴도 退陶), 오랫동안 숨어 지낸(만은 晩隱), 진성 이씨의 묘(진성이공 지묘 眞成李公 之墓).

"퇴계 선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떤 분인가요?"

그는 답했다.

"한마디로 경敬이지요. 마음을 굳게 다스려 착하게 살면서 도덕을 실천한 분입니다."

퇴계종택을 나와 도로 건너편에 오두막 규모의 작은 집 3개를 바라본다. 퇴계가 벼슬을 마치고 귀향해 50세 때 처음 지은 계상서당溪上書堂, 즉 개울 위에 지은 공부방과 거처를 복원한 곳이다. 이곳이 너무 좁아 산 너머에 '조금 넓혀' 지은 것이 도산서당이다. 이곳에 당시 23세였던 율곡이 찾아와 58세였던 퇴계와 학문을 논했는데, 마침 큰 비가 와서 개울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사흘이나 머물렀다고 한다. 학문적·정치적으로 뚜렷한 견해 차이가 있었음에도 인간적으론 서로 존경했던 두 사람과 같은 리더를, 오늘날 왜 보기 힘든가!를 개울에 대고 탄식했다.

2코스 순례를 마쳤지만, 마지막 포인트로 퇴계의 묘소로 간다. 퇴계종택에서 도로를 걸어 1.7km 위치에 있다. 3코스 이름이 이육사 시인을 기려 '청포도 길'인데, 초입에 퇴계의 묘가 있다. 따라서 퇴계의 묘를 2코스의 종점으로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퇴계의 묘 입구에 그의 며느리 봉화금씨 묘가 있다. 평소에 존경했던 시아버지를 죽어서도 모시겠다고 유언해서 이 자리에 묻혔다고 한다. 그곳에서 100m 오르막 끝에 퇴계의 묘가 있다.

지폐에 나올 만큼 위대한 인물의 묘로는 조촐한 규모이지만, 청빈한 선비를 자처했던 분의 묘로는 작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본래 퇴계는 자신의 묘에 어떤 장식도 하지 말라고 유언했으나, 조정에서 최소한의 예의라며 몇 개의 석물을 세웠다. 그중 하나에 기대승이 쓴 글이 있다. 퇴계보다 27살 어린 그는 퇴계와 8년이나 학술논쟁을 벌여, 결국 퇴계의 양보를 얻어낸 바 있다.

"선생의 학문은 너무도 깊고 해박했지만,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듯 겸손했으며, 날마다 새롭게 공부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퇴계의 묘에서 내려와, 도로를 건너, 왼쪽으로 산 하나를 넘으면, 이육사문학관이 있고, 앞에는 너른 벌판이 있다. 이육사는 퇴계의 14대 손이다. 나는 그곳에서 두 개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이육사李陸史라는 이름이 일제강점기 때 그의 수감번호인 264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의 대표 시 '광야'가 넓은 들판廣野이 아니라 밝은 들판曠野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암흑을 벗어나 햇빛이 환하게 비치는 앞날을 그리며 이렇게 간절하게 소망했던 것이다.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영웅)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교통(지역번호 054)

2코스의 시점인 월천서당에 가려면 1코스의 예끼마을에서 7km를 걸어가든지, 차량으로 농촌도로를 5.4km 달려 도착해야 한다. 2코스의 핵심 명소인 도산서원으로 안동터미널에서 하루 6~7회의 시내버스(급행3)가 운행한다. 버스편이 많은 인근의 도산면 온혜리에서 택시(856-1031, 010-3522-1031)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숙소(지역번호 054)

2코스 중간에 안동호반자연휴양림(855-3371), 1코스에 예끼마을 민박(010-5494-6094)이 있다. 한옥 숙소로 예끼마을의 선성현문화단지(840-3478), 2코스 종점에 퇴계종택(866-1074), 3코스에 수졸당(010-6265-0264)과 목재고택(010-8422-8848)이 있다.

예끼마을 골목.

예끼마을(지역번호 054)

퇴계예던길의 전체 거점 역할을 하는 1코스의 예끼마을은 '예술에 끼가 있는 마을'이다. 안동댐으로 고향이 수몰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골목길마다 독특한 벽화로 꾸미고 감성이 있는 갤러리와 카페가 있다. 이름난 맛집으로 민속식당(856-0102 고등어정식, 청국장), 예끼국시가(859-8253 국수), 선성미정(841-0201 간고등어, 안동찜닭)이 있다.

선성수상길.

선성수상길

예끼마을에서 안동호 물 위로 낸 데크 길이다. 선성은 이곳의 예전 지명이고, 수상길은 '물 위의 길'이라는 뜻이다. 길이 1km, 폭 2.7m의 부교라 물 높이에 따라 물결 위에서 찰랑대는 다리다. 안동호의 넓은 수면에 햇빛이 비쳐 윤슬을 만들 때의 풍경이 최고다. 이 길의 중간에 작은 풍금과 책상이 놓여 있는 '예안초등학교 쉼터'가 있다. 바로 그 자리의 물 밑에 학교가 있었다니, 물 밑을 깊게 들여다보게 된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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