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습니까?” 피해자가 직접 심문하는 재판은 어떨까 [플랫][내 사건에, 내 자리를]

김서영 기자 2026. 9. 2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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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목숨을 빼앗았습니까?”

피해자 어머니가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직접 던진 질문이다. 2014년 9월 일본 고베시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실종돼 사망한 채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피고인은 피해자를 집으로 유인해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6년 열린 첫 공판에서부터 피해자의 유족인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피해자참가인 자격으로 재판에 참가했다. 피해자참가인에게는 피고인을 직접 신문할 권리가 있다. 피해자 어머니의 신문에 피고인은 “성욕을 충족하기 위해서였다”고 답했다. 피해자 어머니는 이밖에도 “왜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나”, “사과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등을 물었다. 검사를 통하지 않고 피해자 측이 직접 피고인에게 범행이유를 따진 것이다. 이 사건은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고 상급심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피해자 어머니는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재판에 참가한 이유에 대해 “진실을 알고, 피고인이 정당한 죗값을 치르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피해자참가제도가 없는 한국에서는 이처럼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재판에서 직접 질문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형사사법절차에서 피해자 권리를 보장할 방안을 더 일찍 고민했던 국가들은 관련 제도를 만들어 피해자의 절차 참가를 보장하고 있다. 피고인(피의자)의 방어권과 피해자의 권리가 ‘회복과 정의’란 큰 우산 아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다른 나라의 법과 제도 역시 현실 속 한계를 갖고 있지만 적어도 ‘피고인 방어권 대 피해자’란 이분법에서 벗어나 피해자를 절차 속으로 들였다는 의의가 있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과 만난 피해자·법조인·활동가들은 ‘형사 피해자들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당장 10여년 전과 비교해봐도 각종 피해자 커뮤니티와 단체가 늘어났다. 피해자가 변호사를 찾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정당한 자리를 인정받고자 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이제 외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내 사건에 내 자리를 갖는 것, 그것은 피해자를 ‘불쌍한 사람’이 아닌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인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절차 속으로 들어온 피해자
그래픽 | 이아름 기자

여러 측면에서 한국과 법체계가 유사하다고 평가되는 일본은 2008년 피해자참가제도를 도입했다. 참가를 허가받은 피해당사자 혹은 그 유가족은 피해자참가인 자격을 갖게 되며, 소송행위에 관한 의견진술권, 증인 및 피고인 질문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피해자참가제도는 살인죄·상해죄·성범죄·인신매매·교통사고를 포함한 과실치사상죄 등을 대상범죄로 한다. 참가를 신청한 피해자 약 99% 허가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피해자참가제도를 처음으로 적용한 공판이 2009년 1월23일 도쿄지법에서 열렸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남성의 아내와 형이 피해자참가인으로 법정에 출석했고,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다음과 같은 소회를 남겼다. “피고인을 직접 접하며 분노가 커졌지만, 우리들이 참가하지 않았다면 재판관에게 우리의 생각을 전달할 수 없었다. 직접 마음을 말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이들은 ‘검사에게 대신 질문하도록 하면 충분하지 않은가’란 질문에는 “제3자가 대신 말해줘도 피해자의 마음은 피고인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누군가가 대신 말해주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피해자만의 참여 욕구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이 제도는 어느 정도 실효성을 발휘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2025년판 범죄백서’에 담긴 범죄별 피해자참가제도 현황을 보면, 2024년 1심에서 성범죄에 해당하는 비동의추행, 비동의성교 등의 합은 32%였다. 살인, 상해, 강도치사상을 합한 26.9%보다 높았다. 친부의 성폭력을 실명으로 고발한 것으로 잘 알려진 피해자 후쿠야마 리호 역시 피해자참가제도를 통해 재판의 당사자로 참가했다.

일본 사례는 기존 당사자주의의 틀 안에서 피해자가 일정 수준의 참여권을 갖는 구조를 보여준다. 한국 정부가2011년 피해자참가제도 도입 등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을 때 주요 모델이 됐던 것도 일본의 피해자참가제도였다. 당시 논의는 탄력을 받지 못했고 정부안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으나, 최근까지도 피해자 참가 방안을 논하는 자리에선 일본 사례가 흔히 거론된다.

이밖에 형사 피해자에게 폭넓은 권한을 인정하는 대표적인 나라로는 독일이 꼽힌다. 독일의 부대공소제도는 성폭력·인신매매·스토킹·살인미수 등의 피해자에게 부대공소인으로서 공판절차에 참가할 지위와 권한을 준다. 범죄 피해로 사망한 자의 유족에게도 부대공소권이 인정된다. 부대공소인은 원칙적으로 검사와 같은 범위 내에서 절차에 참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일출석권, 기록열람권 등을 비롯해 질문권, 이의제기권, 증거신청권, 상소권 등을 행사한다. 피해자가 원하더라도 검사가 항소·상고하지 않으면 상급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기회가 없어지는 한국 상황과 다르다.

부대공소제도는 독일에서 100년 이상에 걸쳐 보완을 거듭해왔다. 제도가 적용되는 범죄군과 부대공소인 권한의 범위도 조금씩 바뀌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는 성범죄·강력범죄 등 피해가 중대한 범죄의 피해자에게 참가 기회를 넓히는 쪽으로 발전했다. 독일은 또 경미한 범죄의 피해자는 검사 없이 독자적으로 형사소추할 수 있도록 사인소추제도를 두고 있다.

성범죄 피해자 지키는 ‘방패’
그래픽 | 이아름 기자

해외 여러 국가에는 취약한 성범죄 피해자가 수사·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당하는 일을 방지하고, 가해자가 성폭력 통념에 근거한 주장을 펼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제도도 마련돼 있다. 피의자(피고인)가 자신의 방어권을 명분으로 피해자를 모욕하고 흔드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러한 장치들은 흔히 ‘레이프 실드 로(Rape Shield Law·강간피해자보호법)’로 불린다.

대표적으로 캐나다 형법은 피해자가 과거 다른 성적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번에도 동의했을 가능성이 높다’거나 ‘신빙성이 낮다’고 추론하는 것을 금지한다(제276조). 피고인이 피해자의 성적 이력을 증거로 사용하려면 별도의 비공개 심리를 거쳐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으려면 해당 공판 쟁점과의 관련성, 구체성 등을 갖춰야 하며 편견의 위험성보다 현저히 큰 증거로서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법원은 피고인의 방어권·차별적 편견을 배제할 필요성·피해자의 존엄성과 사생활에 미칠 불이익 등을 고려해 판단을 내린다.

미국도 연방증거규칙을 통해 성범죄 피해자의 과거 성관계 사실 또는 성적 취향은 원칙적으로 증거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예외 요건은 부당한 편견의 위험보다 증거가치가 큰 경우, 피고인이 아닌 제3자의 흔적임을 증명하기 위한 경우 등으로, 역시 비공개 심리에서 허용돼야만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이때 성범죄 피해자에게도 의견청취 등의 기회를 주도록 돼있다.

이런 제도 하에선 피해자가 증인신문에서 ‘평소 (성관계할 때) ○○자세를 좋아했다면서요?’, ‘예전에 ○○에서 한 성관계 좋아했다는데 기억 나나요?’ 등과 같은 피고인 변호인의 질문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일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②‘반박조차 할 수 없는, 방청석의 피해자’). 피고인 측이 ‘피해자 유발론’을 비롯해 성폭력 통념에 근거한 질문을 설계하는 것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다.

전체 사법절차에 걸친 피해자 보호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도 많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피해자권리법을 통해 범죄 피해자의 권리 8개를 규정한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가해자의 보석과 가석방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견을 듣기도 한다. 출소한 가해자의 위험성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존재가 피해자임을 고려한 것이다. 프랑스는 전국 지방법원에 피해자지원국을 두고 피해자를 ‘원스톱’으로 조력한다.

피해자를 보는 ‘눈’을 바꿔라

피해자를 절차 안으로 들이는 일은 정교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피해자에게 여러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자칫 피해자에게 과중한 역할을 떠넘기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 참가를 위한 제도를 설계한다면 어떤 범죄군에 적용할 것인지, 어느 정도의 권한을 줄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국가마다 제도가 마련된 배경과 법체계가 다른 탓에 외국 사례를 한국에 일방적으로 이식하기도 힘들다.

최근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에 따른 피해자 보호 공백 문제가 잇따라 제기되며 여러 후속 입법과 보완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국회 성평등가족위원회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검사에게 전건 송치하는 내용의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7대 범죄에 대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에 보완수사·재수사권을 부여하도록 하는 중수청법 개정안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의 형사재판 참가권에 대해 포괄적으로 숙의한 결과물이라기보다는 보완수사권 폐지의 파장을 보완하려는 단발적 입법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관련 기관이 피해자를 보는 관점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제도와 실무가 따로 노는 현실 속에서 제도 개선만으론 피해자 권리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명화 법무법인 이채 변호사는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피해자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의식을 함양하는 것이 중요하다. 열람등사권을 예로 들면, 관련 법이 개정된다 하더라도 수사기관의 내부 규칙이 정비되지 않는다면 (현장에선) 별로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지원 법률사무소 법과치유 변호사도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점이 검찰과 법원에 형성돼 있다. 이대로라면 피해자 권리를 법제화한다 하더라도 (관련 기관의) 교육과 훈련이 실질화되지 않는 한 변화가 어렵다”고 짚었다.

관점을 바꾸려다 보면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간다. 사법절차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피고인이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보호받는다면 피해자는 무엇으로 보호받아야 하는가. ‘열 명의 범죄자를 놓치는 것이 한 명의 무고한 자가 고통받는 것보다 낫다’는 법언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절차 속 ‘보이지 않는 존재’로 밀려난 피해자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선 한번쯤 돌아봐야 하는 질문들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법절차가 피의자(피고인)를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 그에 맞게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재판의 주요 목적 중 하나”라며 “실체적 진실 발견에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건 그러한 의미에서 정당성을 갖는다”고 밝혔다. 그는 “억울한 피고인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피해자에게 아무런 권한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진 못 한다”고 말했다.

오지원 변호사는 “피해자를 참가시킨다고 해서 무고한 피고인이 나오는 것이 아니며, (해외 사례에서 보듯) 사법제도가 무너지지도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는 기울기가 어긋나있다 보니 그것을 바로잡는 게 마치 균형을 깨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균형을 잡아야 할 기회”라고 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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