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한국이 세계 8강이라니"…'황금손' 주원홍 회장, 감격 안고 나고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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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테니스가 세계 8강에 오른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은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정구 경기가 열린 이곳에서 주 회장은 유승민 대한체육회 회장, 이상현 한국 선수단장(대한자전거연맹 회장) 등과 함께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을 응원했습니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부단장을 맡은 주 회장은 이날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우슈와 정구에 이어 야구 대만전까지 찾아가는 빠듯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1900년 시작된 세계 최고 권위의 남자 국가대항전에서 한국 테니스가 처음 밟는 무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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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용일·이형택·정현·권순우와 이어진 ‘행운의 동행’…주변에선 “수덕 좋다”며 ‘주수덕’
- “4강 욕심보다 주니어 육성 기폭제 돼야” AG 테니스 목표는 “권순우 금메달”

한국 테니스가 세계 8강에 오른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은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21일 일본 나고야 히가시야마코엔 테니스센터.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정구 경기가 열린 이곳에서 주 회장은 유승민 대한체육회 회장, 이상현 한국 선수단장(대한자전거연맹 회장) 등과 함께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을 응원했습니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부단장을 맡은 주 회장은 이날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우슈와 정구에 이어 야구 대만전까지 찾아가는 빠듯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선수단과 함께 컨테이너형 선수촌에 머물며 종목을 가리지 않고 한국 선수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바쁜 협회 일정에도 유 회장의 권유를 받아들여 부단장직을 맡은 이유도 "한국 선수단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어서"였습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그의 시선은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장에 꽂혀 있었습니다.
한국은 지난 주말 인도를 꺾고 사상 처음 데이비스컵 8강인 파이널8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1900년 시작된 세계 최고 권위의 남자 국가대항전에서 한국 테니스가 처음 밟는 무대입니다.
"기적 같은 일입니다. 제가 선수도 해보고, 지도자도 했고, 이제 협회 회장까지 맡고 있지만 이만한 경사가 또 있었나 싶어요."
주 회장은 여전히 '세계 8강'이라는 말이 실감 나지 않는 듯했습니다.
올해 파이널8에는 한국과 함께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영국, 캐나다, 체코, 오스트리아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세계 테니스의 전통 강호들이 즐비합니다.
"그런 나라들 사이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됩니까. 우리가 세계 8강이에요. 엄청난 일을 해낸 겁니다."
그러면서도 이번 쾌거를 한국 테니스의 실력만으로 포장하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행운도 많이 따랐습니다. 큰일을 하려면 운도 있어야 해요. 하늘이 도왔다고 해야죠."

실제로 한국은 파이널8을 향하는 최근 세 관문을 모두 홈에서 넘었습니다. 지난해 9월 춘천에서 카자흐스탄을 꺾은 데 이어 올해 2월 부산에서 아르헨티나를 잡았고, 이번에는 서울에서 인도를 눌렀습니다. 세 경기 연속 안방에서 치른 것도 한국에는 적지 않은 힘이 됐습니다.
상대팀 사정도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핵심 선수들이 부상이나 일정 등의 이유로 빠지는 경우가 있었고, 한국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주 회장은 "우리 선수들이 잘한 것이 가장 크지만, 세 경기 연속 홈에서 한 것도 그렇고 상대 에이스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빠진 것도 있었다"며 "이런 행운까지 잘 잡아냈기 때문에 세계 8강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 회장 주변에서는 오래전부터 그를 '주수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덕이 좋다', 즉 함께하는 선수들에게 유난히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는 뜻에서 붙은 별명입니다. 주 회장이 선수나 지도자의 곁에 있을 때마다 한국 테니스의 굵직한 장면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당시 주 회장은 삼성물산 감독이었습니다. 제자 윤용일은 남자 단식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 2관왕에 올랐고, 이형택 역시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병역 혜택을 받은 이형택은 이후 세계 무대로 본격적으로 나아갔습니다. 2000년 US오픈에서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16강에 올랐고, 이후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잇달아 꺾으며 2003년 한국 남자 선수 최초의 ATP 투어 단식 우승까지 일궜습니다.
16년 뒤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 회장이 대한테니스협회장을 맡고 있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정현은 임용규와 짝을 이뤄 남자복식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병역 혜택을 받은 정현은 이후 해외 투어에 전념했고 2018년 호주오픈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메이저대회 단식 4강까지 올랐습니다.
권순우와의 인연도 있습니다. 군 복무 중이던 권순우가 상무 소속으로 해외대회 출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금이 전달됐고, 권순우는 국제무대 경험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번 인도전에서 다시 한국의 데이비스컵 사상 첫 파이널8 진출을 이끄는 주역이 됐습니다.
윤용일에서 이형택, 정현을 거쳐 권순우까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한국 테니스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주 회장의 이름이 함께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주 회장은 수덕이 좋다"며 '주수덕'이라 부릅니다. 요즘 표현으로 치면 한국 테니스의 '황금손'인 셈입니다.
하지만 주 회장은 이번 행운을 파이널8 진출이라는 한 번의 성과로 끝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8강 갔으니까 이제 4강 가자고 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 이번 일을 한국 테니스가 다시 관심을 받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린 선수들이 테니스를 시작하고, 주니어들에게 더 투자하고, 메이저대회에 나가는 한국 선수가 한 명이라도 더 많아지는 게 중요합니다."
이번 인도전 승리의 중심에 섰던 정현과 권순우가 그에게는 좋은 사례입니다. 정현은 호주오픈 4강까지 올라봤고 권순우는 ATP 투어에서 두 차례 정상에 섰습니다.
"정현은 호주오픈 4강까지 가봤고 순우는 투어에서 우승해본 선수입니다. 큰 무대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싸워본 경험이 있는 거죠. 이번처럼 국가의 운명이 걸린 경기에서 결국 그런 경험이 나옵니다."
그래서 주 회장이 강조하는 다음 투자의 대상은 선수만이 아닙니다.
"선수를 키우려면 무엇보다 우수한 지도자를 먼저 잘 길러야 합니다."
그는 특히 국가대표팀 감독의 전임지도자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실업팀이나 학교팀을 맡은 지도자가 국가대표 감독을 겸하면 소속 팀과 대표팀 가운데 어느 한쪽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표팀 감독이면 대표 선수만 보는 게 아닙니다. 평소 후보 선수들을 계속 보고 해외 선수도 분석하고 세계 테니스 흐름도 봐야 합니다. 자기 팀을 맡고 있으면서 이걸 다 하는 건 쉽지 않아요."
주 회장은 테니스계 일각에서 국가대표 지도자 자리를 두고 심지어 '불로소득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는 현실도 언급했습니다.
"그런 소리까지 나온다면 제도적으로 한번 들여다봐야 합니다. 국가대표 감독이 명예만 갖는 자리가 아니라 정말 대표팀에 전념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협회 내부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반기고 있습니다. 김일순 대한테니스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근 경기력 향상과 선수 육성 문제를 놓고 직언을 내놓는 것에 대해서도 "필요할 때는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 의견들이 나와야 발전한다"고 말했습니다.
협회의 재정 기반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주요 스폰서 계약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선수 육성에 보다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기반도 갖춰지고 있다는 게 주 회장의 설명입니다.
"이번 데이비스컵 8강이 기업들에도 한국 테니스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지원이 늘어나면 결국 어린 선수와 지도자를 키우는 데 써야 합니다."
주 회장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향합니다. 그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 선수단을 챙기는 틈틈이 주니어 유망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육성 방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정구 경기가 끝나면 같은 나고야에서 테니스 경기가 시작됩니다. 데이비스컵 파이널8의 주역 권순우도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코트에 나섭니다.
아시안게임 테니스 목표를 묻자 주 회장의 대답은 짧았습니다.
"우리는 권순우 금메달입니다."
데이비스컵에서 세계 8강을 이끈 상승세를 아시안게임까지 이어가겠다는 기대가 담긴 한마디였습니다. 하지만 주 회장이 더 멀리 바라보는 것은 한 번의 금메달보다 그다음 세대입니다.
"이번 8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합니다. 좋은 선수를 더 많이 키워서 메이저대회에 한국 선수 이름이 계속 보여야 합니다. 이번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됩니다."
데이비스컵 세계 8강이라는 사상 최대 경사의 감격을 뒤로하고 곧바로 나고야에서 한국 선수단 지원에 나선 '황금손' 주원홍. 이제 그가 바라는 것은 또 한 번의 우연한 행운이 아니라 행운 없이도 세계와 싸울 수 있는 한국 테니스의 시스템입니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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