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 만에 털고, 녹이면 끝”…유럽 박물관 ‘귀금속 절도’가 폭력적으로 변한 이유

2026. 9. 22.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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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된 켈트족 금목걸이가 사라지는 데 4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7월 24일(현지시간) 프랑스 동부 소도시 샤티용쉬르센의 지역 박물관에 남성 2명이 가발을 쓰고 들어와 진열장을 깨고 ‘빅스 귀부인의 토크’를 들고 도망쳤다. 무게 480g짜리 순금 목걸이다. 앞서 7월 5일에는 알자스 윙겐쉬르모데르의 랄리크 박물관에서 복면 3명이 해머와 슬레지해머로 진열장 6개를 부수고 11분 만에 보석 27점, 450만유로어치를 가져갔다.

지난 7월 6일(현지시간) 프랑스 동부 윙겐쉬르모데르의 랄리크 박물관 앞을 보안요원들이 지나가고 있다. 전날 이 박물관에 복면을 쓴 3인조가 침입해 11분 만에 보석 27점을 털어 달아났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연합 경찰기구 유로폴은 8월 하순 낸 보고서 ‘달라지는 수법, 달라지는 표적’에서 박물관 절도가 갈수록 거칠어진다고 경고했다. 프랑스 하원 조사위원회도 5월 보고서에서 박물관 절도가 “건수가 아니라 폭력성이 늘었다”고 진단했다.

온전히 훔칠 필요가 없다

유로폴이 든 사례는 대부분 금과 보석이다. 지난해 1월 네덜란드 아선의 드렌츠 박물관에 든 일당은 폭발물로 문을 뚫고 2500년 된 다키아 금 투구와 팔찌를 훔쳐 갔다. 지난해 10월 파리 루브르에 침입한 일당은 창문을 깨고 경비원과 관람객을 위협한 뒤 진열장을 부숴 8800만유로어치 보석을 가져갔다. 유로폴은 귀금속은 녹이면 수사기관이 쫓을 흔적이 남지 않아 처분하기 쉽고, 장신구에 박힌 보석은 떼어 내 따로 팔면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월 네덜란드 드렌츠 박물관에서 도난당했다가 돌아온 고대 다키아 왕국의 금 투구와 팔찌가 지난 4월 21일(현지시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국립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기원전 450년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EPA연합뉴스

녹일 물건이라면 흠집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전문 기술도 필요 없다. 보고서는 새로 등장한 범인들이 소셜미디어와 메신저로 현지에서 그때그때 모집되며 슬레지해머와 도끼, 폭약을 쓴다고 했다. 지난해 9월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 금 원석 약 6㎏을 훔친 혐의로 체포된 여성은 녹인 금 약 1㎏을 갖고 있었다. 금값은 지난해 60% 넘게 올랐다. 영국의 도난미술품 데이터베이스 아트로스레지스터의 디렉터 제임스 래트클리프는 “위험과 보상을 따져 보면 지난 1년 새 보상은 거의 두 배가 됐는데 위험은 그대로다. 계산은 간단하다”고 말했다.

유로폴은 범인들이 박물관 보안을 보석상보다 허술하다고 여긴다고 봤다. 보고서가 인용한 유럽범죄예방네트워크는 박물관 보안을 늘 “균형 잡기”라고 표현했다. 박물관은 누구나 들어와 문화유산을 가까이서 보게 하려고 여는 곳이다. 네트워크는 예산이 허락하더라도 이런 성격 때문에 박물관이 보안 수단을 모두 갖출 수는 없다고 봤다. 유리를 두껍게 하고 출입을 막을수록 관람은 어려워진다. 빅스의 토크도 관람객이 드나드는 시간에 사라졌다.

녹이면 끝

네덜란드 미술범죄 추적가 아르튀르 브란트는 절도의 표적이 그림에서 금으로 옮겨간 지 10년이 넘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훔친 명화는 악명이 높아 되팔 수도 없지만, 금은 형태를 녹이는 즉시 출처가 은폐된다”며 “지금은 유럽 거의 모든 도시에서 금을 곧바로 돈으로 바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에 박물관 절도가 금에 집중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미술매체 하이퍼앨러직은 최근 표적이 된 시립·지방 박물관들이 루브르 같은 국립 기관보다 훨씬 적은 자원으로 값진 소장품을 지킨다고 짚었다. 7월 초 프랑스 남서부 몽탕의 시립 고고학센터에서는 12만유로 상당의 갈로로마 시대 금화가 털렸다. 미술 전문지 르주르날데자르의 장크리스토프 카스틀랭 편집장은 올여름 유럽 박물관 절도 10건 가운데 8건이 녹이기 쉬운 보석·주화 등을 노렸다고 집계했다.

이런 곳일수록 돈이 없다. 프랑스 하원 보고서를 보면 국가 공인 박물관 1218곳의 85%를 시와 도가 운영한다. 보고서는 이들 지역 박물관을 “재정이 부족하다”고 평가했고, 2024년 조사에 응한 616곳 가운데 CCTV를 갖춘 곳은 54%에 그쳤다. 프랑스 정부가 올해 마련한 보안 기금 3000만유로를 대상 시설 3127곳에 똑같이 나누면 1곳당 채 1만유로가 안 된다. 랄리크 박물관은 도난 뒤 9월 초까지 문을 닫은 채 보안 보강에 쓸 20만유로를 구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의 도나 예이츠 교수는 “박물관 대부분은 갈수록 돈이 모자란다. 박물관 예산을 아는 사람이 거론할 수 있는 보안 대책은 공상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돌아오는 그림, 사라지는 금

그림 절도가 멎은 것은 아니다. 9월 초 프랑스 카뉴쉬르메르의 르누아르 박물관에서 르누아르 그림 2점이 3분도 안 돼 사라졌다. 그래도 그림은 그림으로 남는다. 래트클리프 디렉터는 인터넷과 디지털 사진 덕에 도난 미술품이 시장에 나오면 곧바로 가려진다고 했다. 2020년 네덜란드 싱어라런 박물관에서 도난당한 반 고흐 그림은 미술범죄 추적가 브란트가 음지의 소장자와 협상해 3년 만에 되찾았다. 드렌츠 투구도 지난 4월 피고인 일부와 합의한 끝에 돌아왔다.

지난해 10월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당한 외제니 황후의 진주 티아라. 범인들이 달아나다 떨어뜨린 왕관과 달리 티아라를 비롯한 나머지 보석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루브르 박물관 제공·로이터연합뉴스

금붙이는 녹는 순간 유물이기를 멈춘다. 지난해 9월 이집트 카이로 이집트박물관에서 사라진 3000년 된 팔찌는 녹아 없어졌다. 루브르 사건으로 11명이 체포됐지만 보석은 범인들이 달아나다 떨어뜨린 외제니 황후 왕관을 빼면 돌아오지 않았다. 빅스의 토크도, 몽탕의 금화도 행방을 모른다. 금값 폭등이 부른 박물관 절도 잔혹사 속에서, 지킬 힘이 없는 작은 박물관의 유물부터 차례로 녹아내리고 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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