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 차리는 법’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

추석입니다. 추석 하면 차례와 성묘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종교나 집안 전통에 따라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도 늘었지만, 여전히 명절을 앞두고 ‘차례상 차리는 법’을 검색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어동육서(魚東肉西), 좌포우혜(左脯右醯), 조율이시(棗栗梨枾), 홍동백서(紅東白西)…. 한 번쯤 들어봤을 말입니다. 물고기는 동쪽에, 고기는 서쪽에 놓고, 포는 왼쪽에, 식혜는 오른쪽에 둔다는 식입니다. 과일도 대추·밤·배·감의 순서가 있고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에 놓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상을 차리는 것을 진설(陳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복잡한 진설법은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정말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엄격한 예법일까요.
2014년 주간경향이 이 문제를 취재했을 때 가장 많이 거론된 문헌은 중국의 <주자가례>와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이었습니다. 제사 예법의 전범으로 알려진 책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 책들을 들여다보면 오늘날 익숙한 ‘어동육서’나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표현을 찾기 어렵습니다.
당시 경북대 퇴계연구원 객원연구원이던 이승연 연구원은 <주자가례>에 제례 그림이 전해지기는 하지만 주자가 직접 만든 그림으로 보기 어렵고, 조선에 들어온 뒤 여러 방식으로 고증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무엇을 왜 어느 방향에 놓아야 하는지 처음부터 일관된 논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격몽요결>도 비슷합니다. 제례를 설명한 제7장은 “제사는 마땅히 <주자가례>를 따라야 한다”는 취지로 시작합니다. 이이는 당시 집집마다 제사 방식이 다른 현실도 지적했습니다. 부록의 진설도를 보면 과일은 종류별 위치를 정하지 않고 ‘과(果)’라고만 표시돼 있습니다. 고기와 생선도 오늘날 알려진 공식처럼 엄격하게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이후 연구는 이런 설명을 더 구체적으로 뒷받침했습니다.
2017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나온 심일종의 연구는 실제 한국의 유교 제례에 올라가는 제수를 조사해 200여 종류를 확인했습니다. 음식은 지역의 생태환경과 생활문화에 따라 달랐습니다. 진설법에도 지역별 패턴이 있었습니다. ‘가가례(家家禮)’, 곧 집집마다 예법이 다르다는 말이 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실제 제례문화의 특징이었다는 것입니다.
김풍기 강원대 교수가 2021년 발표한 연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평산신씨 문중이 1803년 만든 제례 규칙을 분석했는데, 기본적으로 <주자가례>와 <격몽요결>을 따르면서도 음식의 종류와 진설은 훨씬 확대돼 있었습니다. 같은 강원도에서도 바닷가 가문과 내륙 가문의 제사 음식은 달랐습니다. 문중이 결속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제례 규칙을 만들고 문서화했다는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표준 차례상’은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2014년 인터뷰에서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된 1960년대 이후를 주목했습니다. 이전에는 같은 문중 사람들이 한 마을에 살면서 종가를 중심으로 차례를 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흩어지면서 각 가정이 독립적으로 차례를 지내게 됐습니다. 정작 젊은 세대는 제사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명절 때마다 ‘차례상 차리는 법’을 소개했습니다. 일부 가문에서 지키던 진설법이 마치 전국 공통의 예법처럼 퍼지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었습니다.
12년 뒤 이 설명을 뒷받침하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이철영 한국연구재단 연구자가 2024년 발표한 논문은 1999년까지 신문 등에 실린 관련 기사 135건을 분석했습니다. 연구자는 1970년대까지를 기존 ‘명절 상차림’이 전승되던 시기로 보고, 1980년대 이후에는 언론이 제수 준비법과 진설법, 음식 금기 등을 반복적으로 소개하면서 일종의 ‘명절차례 만들기’가 진행됐다고 분석했습니다. 차례와 기제사의 경계도 흐려지고, 획일화된 제사 모델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2014년 기사에서 제기했던 ‘언론이 차례상을 표준화했다’는 설명을 시기와 자료를 더 세밀하게 나눠 확인한 셈입니다.
흥미로운 변화는 전통 유교계를 대표하는 성균관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2022년 추석을 앞두고 ‘차례상 표준안’을 내놨습니다. 송편·나물·구이·김치·과일·술 등 6가지를 기본으로 하고, 육류·생선·떡을 더해도 전체 9가지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전을 반드시 부칠 필요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홍동백서’나 ‘조율이시’ 역시 예법을 다룬 옛 문헌에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음식의 위치와 종류는 가족이 합의해 정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2014년 취재 당시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책임연구원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안 연구원은 현재 한국국학진흥원 한문교육원 등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가 강조했던 것은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가짐입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주자가례>의 핵심은 제물을 얼마나 많이 차리느냐가 아니라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마음에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격몽요결>에서 이이 역시 형편이 어려우면 집안 사정에 맞추고, 몸이 아프면 몸의 형편을 헤아려 제사를 지내라고 했습니다.
제사 음식도 고정돼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격몽요결> 번역자인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이가 살던 시대에 지금과 같은 사과나 배를 반드시 제상에 올렸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시대에 따라 구할 수 있는 제철 음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추석 차례의 본래 성격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 교수는 추석 제례를 계절마다 새로 난 곡식과 과일, 생선 등을 조상에게 바치는 천신(薦新)의 성격에서 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지역에서 난 제철 음식이나 돌아가신 사람이 좋아했던 음식을 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제사를 장남이 전담해야 한다는 생각 역시 긴 역사를 가진 불변의 원칙은 아니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아들과 딸이 돌아가며 제사를 맡는 윤회봉사(輪回奉祀)가 널리 행해졌습니다. 17세기 이후 부계 중심의 가족제도와 장자상속이 강화되면서 제사도 장남 중심으로 재편됐습니다.
12년 전 취재에서 시작한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차례상 차리는 법’은 하나였을까요.
후속 연구까지 종합하면 답은 오히려 더 뚜렷해졌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제사 음식과 진설법은 지역과 문중, 집안마다 달랐습니다. 근대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고 각 가정이 독립적으로 차례를 지내게 되면서 ‘정답’에 대한 수요가 생겼습니다. 신문과 방송, 가정의례 안내서는 여기에 답했습니다. 몇몇 방식이 전국적인 표준처럼 굳어졌습니다.
그리고 2022년 성균관은 “홍동백서나 조율이시를 반드시 지킬 필요는 없다”고 다시 말했습니다.
정작 오래된 예법에 더 가까운 원칙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형편에 맞게 차리고, 조상을 기억하는 마음을 다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https://weekly.khan.co.kr/article/201409021710321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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