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와 민란의 땅' 제주에서 배운 삶의 지혜로 전시장을 메우다

인현우 2026. 9. 22. 04:3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이달 17일 제주 제주시 제주도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돌문화공원, 제주 원도심 내 세 장소에서 열리고 있는 제5회 제주비엔날레는 '유배' '돌문화' '신화'라는 세 가지 소주제를 두고 '제주성'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한 전시다. 참여 작가들은 제주의 일상에 깊게 연결된 신화를 동시대 예술과 연결하려 시도했다.

제주 조천읍 선흘그림작업장에서 활동하는 '그림할망'들의 자화상이 객석에 앉아 제주의 오랜 기억과 동시대를 잇는 연대의 광경을 연출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돌문화공원·원도심 등 제5회 제주비엔날레 현장 가보니
국가무형유산 제주큰굿 보유자인 서순실 심방이 17일 제주 제주시 제주도립미술관의 설치미술작가 이진경의 작품 '나는 그 초록인가' 전시장 안에서 신을 불러내는 '초감제'를 진행하고 있다. 전시장 내에는 제주의 역사에 남은 유배와 민란, 침묵과 억울함의 서사를 적은 글과 드로잉, 페인팅, 유목 오브제 등이 전시돼 있다. 제주=인현우 기자

이달 17일 제주 제주시 제주도립미술관. 총 1만8,000에 이르는 제주의 신들을 부르는 굿판이 벌어졌다. 북과 징, 설쇠(작은 놋대접을 체 위에 엎어놓고 치는 악기)가 울릴 때 국가무형유산 '제주큰굿' 보유자 서순실 심방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요령(방울)을 흔들며 춤을 췄다. 서 심방은 모인 영혼들을 향해 "다시 살으라"고 염원했다.

굿이 열린 곳엔 광해군과 추사 김정희, 천주교 신자 정난주 등 제주 유배자, 이재수 등 민란의 주동자, 4·3 사건의 희생자까지, 설치미술 작가 이진경이 특유의 손글씨 '이진경체'로 담담히 적어내린 한탄스러운 사연이 빼곡했다. 그 사이로 갈치나 문어 같은 물고기 그림이 어우러졌다. 비극의 서사를 넘어 오늘날에도 생명의 가능성을 이어간다는 뜻이다.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돌문화공원, 제주 원도심 내 세 장소에서 열리고 있는 제5회 제주비엔날레는 '유배' '돌문화' '신화'라는 세 가지 소주제를 두고 '제주성'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한 전시다. 참여 작가들은 제주의 일상에 깊게 연결된 신화를 동시대 예술과 연결하려 시도했다.

제주시 제주아트플랫폼 내 극장에 설치된 우크라이나 작가 자나 카디로바의 '퍼포먼스 Ⅵ'는 극장 객석에 제주 할망과 삼춘, 도민들이 그린 초상화를 모아 앉히고 관람객이 무대 위에서 이를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다. 제주 선흘그림작업장에서 활동해 온 '할망 작가' 강희선의 '할망이 뭉게추룩'(앞줄 왼쪽 3번째)과 허계생의 '눈이 여섯개 달린 할망'(셋째 줄 오른쪽) 등이 눈길을 끈다. 제주도립미술관 제공
제주비엔날레가 열리는 제주도립미술관 로비에 설치된 연미의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햇살이 비추면 햇살을 받고'는 제주의 강인한 생명력을 뜻하는 토종 푸른콩을 주머니에 넣고 그 위에 도민들의 소원을 적어 쌓아올린 작품이다. 함께 놓인 밥상은 제주 할머니들이 오랜 세월 실제 사용한 밥상으로, "어떤 힘으로 살아왔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적었다. 제주=인현우 기자

쟁쟁한 현대미술 작가들 사이로 경험과 지혜를 품은 '할망'의 참여는 특히 마음을 울린다. 우크라이나 작가 자나 카디로바는 각 지역에서 수집한 초상화를 객석에 앉히고 관람객이 객석을 바라보게 하는 '퍼포먼스' 프로젝트의 여섯 번째 판을 이번 제주비엔날레에서 벌였다. 제주 조천읍 선흘그림작업장에서 활동하는 '그림할망'들의 자화상이 객석에 앉아 제주의 오랜 기억과 동시대를 잇는 연대의 광경을 연출했다.

제주 출신 설치미술 작가 연미는 제주의 생명력을 뜻하는 푸른 콩주머니에 도민들이 소원을 쓰게 하고, 도립미술관 로비에 놓인 해녀 할망의 식탁 위에 쌓아올렸다. 할망들은 "한 세월 어떤 힘으로 살아오셨나"라는 작가의 질문에 한 마디씩 식탁에 적었다. "서로서로 의지하며" "남들 덕에 살았다" "살다 보니 살아져" "힘들다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예술감독을 맡은 이종후 제주도립미술관장은 "제주로 들어오는 북방의 문명은 필연적이나, 제주는 이를 급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변용해 왔다"면서 "제주만의 공동체적 생활방식과 '살면 살아진다'는 가르침은 위기에 놓인 인류 문명의 미래 존재방식에 의미 있는 가치를 던져준다"고 말했다. 제주비엔날레 전시는 11월 15일까지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진행되는 충남 공주시 구 공주양조장 전시장 앞에 설치된 알파르 피터의 '게이트'.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제공
경기도자비엔날레에 전시된 김창호의 도자 작품 '생성'. 경기도자비엔날레 제공
올해 창원조각비엔날레 출품작인 홍자영의 '여신이 지나간 탁자'. 창원조각비엔날레 제공

9월 전국 각지에선 특색 있는 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린다. 12일 개막해 11월 8일까지 열리는 제12회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그동안 주무대로 쓰이던 연미산자연미술공원 등 자연 속에서 전시하던 방향성을 바꿔, 충남 공주시 제민천 일대에 있는 옛 도심으로 자연미술 작품을 끌어들였다.

한국도자재단이 18일부터 11월 1일까지 전통적 도자기 생산지 경기 이천·여주·광주시에서 개최하는 경기도자비엔날레는 생활예술에 가까운 도자를 첨단 동시대 예술로 연결하겠다는 목적으로 일본·유럽·호주의 세라믹 예술가들을 초대해 전시와 학술포럼을 벌인다.

국내 유일 조각 전문 비엔날레를 표방하는 창원조각비엔날레는 30일부터 11월 15일까지 문을 연다. 올해 행사에서 첫 공동 예술감독제를 운영하는데, 한국의 조혜정과 중국의 장쥔에게 기획을 맡기고 본전시 '공명장'과 각 감독이 담당하는 특별기획전 2개로 전체 행사를 구성했다. 중국 예술감독을 통해 아시아와 세계 예술의 연결점을 자처하겠다는 뜻이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