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노방초 경전 / 정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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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때로 거대한 사상보다 작은 사물을 통해 인간을 구원한다. 철학이 개념으로 삶의 의미를 묻는다면, 시는 한 포기 풀과 한 점의 빛, 금이 간 돌 틈에서 그 의미를 발견한다. 정양자(1955~, 부산 출생)의 노방초 경전은 삶을 포기하려던 화자가 갈라진 보도블록 사이에서 자라나는 풀을 목격한 뒤 생의 의지를 되찾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시에서 노방초는 단순한 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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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방초 경전
정양자
몸뚱아리 작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생을 놓아버릴 생각만 하던 내가/ 갈라진 보도블록 틈새에서/ 허공 밀고 올라오는 작고 여린 풀을 본다// 자주 내리지 않는 비여도 살아남은 저 끈기/ 끝끝내 몸 안 어디에 생의 에너지를 저장해 두었다가/ 마침내 꽃을 피우는 것일까// 어쩌다 횡포의 발에 짓밟힐 때에도/ 입 앙다물고 뜬 눈으로 올려다보는 눈/ 꺾인 뼈마디 끝끝내 일으켜 세우고야 마는/ 풀들의 발버둥은 애절하다// 한 번 내린 뿌리 옹골차게 여문 씨를 날리고서야/ 마감하는 풀꽃의 일생, 놀라워라// 힘들어하던 삶이 너로 인해 환해졌다
『대구의 시』(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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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때로 거대한 사상보다 작은 사물을 통해 인간을 구원한다. 철학이 개념으로 삶의 의미를 묻는다면, 시는 한 포기 풀과 한 점의 빛, 금이 간 돌 틈에서 그 의미를 발견한다. 정양자(1955~, 부산 출생)의 「노방초 경전」은 삶을 포기하려던 화자가 갈라진 보도블록 사이에서 자라나는 풀을 목격한 뒤 생의 의지를 되찾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시에서 노방초는 단순한 풀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을 견디는 생명의 몸이며, 말없이 삶의 의미를 가르치는 경전이다. 절망한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작은 스승이다. '노방초'는 길가에서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풀이다. "몸뚱아리 작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생을 놓아버릴 생각만 하던 내"게 노방초는 죽비를 때린다. 화자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은 거창한 위로나 종교적 계시가 아니다. "갈라진 보도블록 틈새에서/ 허공 밀고 올라오는 작고 여린 풀"이다.
보도블록의 갈라진 틈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죽음과 생명, 고통과 희망이 교차하는 경계이다. 시인은 풀이 흙을 뚫고 나온다고 하지 않고 '허공'을 밀고 올라온다고 했다. 풀은 땅의 가장 낮은 곳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빛을 향해 몸을 세운다. 화자는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풀의 힘에 놀란다. 그리고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꽃을 피워낸다. 인간의 삶도 똑같다. 절망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설 수 있다. "횡포의 발"은 실제 행인의 발인 동시에, 약자를 억압하는 사회적 폭력을 상징한다. "올려다보는 눈"은, 짓밟힌 이들의 강렬한 의인화이다. 이어지는 "꺾인 뼈마디 끝끝내 일으켜 세우고야 마는"이라는 구절은 풀의 줄기를 인간의 뼈에 대응시킨다. 여기서 시인이 발견한 것은 상처받지 않는 강인함이 아니라, 상처받고도 다시 일어서는 회복의 힘이다.
마지막 행은 노방초를 바라보는 화자의 내면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압축한다. 힘들어하던 삶이 '노방초'로 인해 환해졌다. 가장 낮은 생명이 오히려 인간을 일으켜 세우는 역설이 아름답다. 노방초는 길가에 버려진 잡초가 아니라, 상처 입은 생명이 매일 펼쳐 읽어야 할 가장 낮고도 깊은 경전인 셈이다.
김동원 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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