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연공서열형 임금과 정년연장

정년 65세 연장 법안이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정작 이에 대한 생산적인 논쟁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정년연장은 얼핏 보면 누구나 언젠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편적인 제도처럼 느껴질 수 있다. 누구나 나이를 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고용 동향은 청년 고용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 15~29세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4만3000명 줄어 46개월째 감소했고, 청년 고용률은 28개월 연속 하락했으며 이들의 경제활동참가율도 46.6%로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중장년층에게는 직장에서 나가는 시점을 늦추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시장에 들어가는 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는 셈이다.
정년연장이 청년 고용을 줄일 수 있다는 우려는 이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에 가파른 인공지능(AI) 기술 변화라는 변수를 더해 볼 필요가 있다. 자동화는 1970년대 이후 공장 노동을 중심으로 진행됐고, 단순 반복이나 위험한 작업을 기계가 대신하면서 사람을 다른 업무에 투입할 여지도 넓혀 왔다. 최근의 자동화는 성격이 다르다. AI 기술은 문서 요약, 자료 정리, 초안 작성 등 사무실에서 사람이 맡아온 인지 노동까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특히 이런 일들은 신입사원이 조직에 들어와 일을 배우며 맡아오던 업무다. 엔트로픽(Anthropic)의 최고경영자(CEO)는 AI가 향후 1~5년 안에 초급 사무직 일자리의 절반까지 대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기술 변화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맞물린다는 점이 문제다. 특히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1차 노동시장에서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가 여전히 강하다. 근속연수가 늘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구조에서 정년 연장은 단순히 고용기간을 몇 년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장년 근로자의 고용기간까지 함께 연장하는 효과를 갖는다. 정원이나 인건비 총액이 쉽게 늘지 않는 기업이라면 그만큼 신규채용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 여기에 AI가 초급 사무직 수요까지 줄인다면 청년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의 입직 문은 더욱 좁아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한요셉(2019)의 분석은 이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2016년 60세 정년 의무화 이후 민간 사업체에서는 정년연장 수혜자가 한 명 늘어날 때 청년 고용이 평균 0.2명 감소했고, 1000명 이상 대규모 사업체에서는 감소폭이 한 명에 가까웠다. 정원과 인건비가 경직된 내부노동시장일수록 기존 근로자의 고용 연장이 신규채용 감소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일본의 제도는 참고할 만하다. 일본 역시 기업에 65세까지 고용기회를 보장하도록 요구하지만 기존 고용계약을 그대로 65세까지 연장하도록 강제하지는 않는다. 기업은 정년을 연장하거나 폐지할 수도 있고, 60세에 정년퇴직시킨 뒤 재고용할 수도 있다. 재고용 과정에서는 직무와 근로시간, 임금을 다시 정할 수 있다. 고령자의 계속 고용을 보장하되 연공서열형 임금까지 그대로 연장하지 않는 방식이다.
물론 정년 연장의 필요성도 있다. 연금 수급 전 소득 공백은 현실이고, 더 오래 일하고 싶다는 요구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65세라는 숫자 자체가 아니라,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그대로 둔 채 법정 정년만 연장하는 것이다. 이 경우 그 비용이 신규채용 감소라는 형태로 청년에게 돌아갈 수 있다.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을 따로 떼어 논의하기 어려운 이유다.
정년은 몇 살까지 일할 것인가의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누가 이미 안에 있고, 누가 아직 문 앞에 서 있는가이다.
오지윤 <세종대학교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