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의 역사] 109 신문왕의 선택

강시일 기자 2026. 9. 21. 11: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왕관의 무게는 머리보다 가슴을 먼저 짓눌렀다. 아버지 문무왕의 뒤를 이은 신문왕 앞에는 통일의 영광보다 서늘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갈라졌다 하나 되는 대나무, 속을 비워야 소리를 내는 피리는 신문왕에게 새로운 다스림을 묻는다.

이 길에는 바다의 용이 돼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뜻과 아버지를 기리는 신문왕의 마음이 겹쳐 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문왕, 반란의 수괴 장인어른의 목을 베고, 아버지와 천신이 된 김유신으로부터 만파식적과 옥대를 받아 나라를 다스리다
경주시 배동의 신문왕릉. 강시일 기자

왕관의 무게는 머리보다 가슴을 먼저 짓눌렀다. 아버지 문무왕의 뒤를 이은 신문왕 앞에는 통일의 영광보다 서늘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인 김흠돌의 반란을 꺾고 왕비마저 떠나보낸 왕은 나라를 지켰으나, 궁궐을 채운 두려움까지 거둘 수는 없었다. 칼끝으로 되찾은 고요를 평화라 부를 수 있을까.

그 물음을 품고 왕의 발걸음이 동해로 향한다. 오늘날 모차골에서 수렛재를 넘어 기림사로 이어지는 왕의 길에는 그 여정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과 전승이 남아 있다. 숲 그늘에 잠시 숨을 고르면, 권좌에서는 드러내지 못했을 한 인간의 고독도 헤아려진다.

바다에서는 청룡과 천신의 선물이 왕을 기다린다. 갈라졌다 하나 되는 대나무, 속을 비워야 소리를 내는 피리는 신문왕에게 새로운 다스림을 묻는다. 반란을 제압하던 손으로 피리를 쥔 왕. 신문왕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권력을 지키는 결단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신문왕릉의 정남쪽에 문(門) 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호석이 있다. 강시일 기자

◆신화전설 1: 반란 제압

아버지의 상복을 벗기도 전에 장인의 이름이 역모 문서에 올랐다. 신문왕은 펼쳐진 종이보다 그것을 누르고 있는 제 손을 오래 바라보았다. 어제까지 그 손을 잡고 새 임금의 앞날을 축원했던 사람이 김흠돌이었다. 먹은 이미 말랐는데 손바닥에서는 자꾸 축축한 땀이 배어났다.

밀고를 들은 날 밤, 왕은 왕비의 처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창호에 비친 그림자가 옷감을 접고 있었다. 태자 시절, 늦도록 글을 읽는 남편에게 덮어주던 겉옷도 저 손끝에서 나왔다. 왕이 문턱을 넘으면 아내의 얼굴을 보게 될 터였다. 그 얼굴을 보고도 내일 같은 명령을 내릴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했다. 그는 끝내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그동안 궁궐의 경비를 바꾸자는 건의가 거듭 올라왔다. 선왕의 장례로 지친 군사들을 쉬게 하자는 이유였다. 왕은 사람을 교체하는 대신 근무 시간을 나눴다. 그러자 같은 이름들이 다른 문을 통해 다시 추천됐다. 흥원과 진공의 집을 오가는 심부름꾼도 부쩍 늘었다. 따로 놓으면 사소했던 일들이 한데 모이자 궁궐을 에워싼 올가미가 됐다.
신문왕이 호국룡이 된 아버지의 릉을 바라보는 곳에 지었다는 이견대. 강시일 기자

정명은 먼저 성안의 군량 창고와 무기고를 지키게 했다. 왕을 구하겠다며 군사를 움직이는 자도 왕의 명령이 없으면 들이지 말도록 했다. 적이 궁문에 도착한 뒤 싸움을 시작해서는 늦었다. 반란군이 믿는 길과 사람을 미리 끊어놓아야 했다. 명령을 받아든 장수들이 물러간 뒤에도 왕은 등불을 끄지 않았다.

거사에 나선 무리가 골목을 빠져나왔을 때, 약속된 곳에는 지원군이 없었다. 횃불을 세 번 흔들어도 성벽 위에서는 답이 오지 않았다. 대신 어둠 속에서 활시위 당기는 소리가 났다. 앞줄이 주춤하는 사이 뒤쪽 퇴로가 닫혔다. 궁문을 열어줄 것으로 믿었던 군관은 이미 결박돼 있었다. 칼을 뽑은 자와 버린 자가 뒤엉켰고, 짧은 비명이 담장을 넘었다.

붙잡혀 온 김흠돌은 처음에는 왕을 똑바로 바라봤다. 전쟁터에서 얻은 흉터가 등불에 드러났다. 정명은 그 흉터를 알고 있었다. 어린 날에는 나라를 지킨 증표라고 생각했다. 지금 그 몸이 나라의 목을 조르려 했다. 장인이 무릎을 굽히자 갑옷 조각들이 부딪쳤다. 왕은 그 소리가 멎기를 기다린 뒤 처벌을 명했다.
최근 새롭게 신라시대 이견대의 위치라는 주장이 제기된 언덕. 강시일 기자

김흠돌과 반란에 가담한 자들이 처형되고, 궁궐에는 다시 정해진 시각에 북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사람들의 얼굴까지 제자리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신하들은 왕의 눈길이 닿기 전에 머리를 숙였다. 보고를 올리는 목소리는 지나치게 공손해졌다. 정명은 그 침묵 속에 충성뿐 아니라 두려움도 섞여 있음을 느꼈다.

왕비가 떠나던 날에는 비가 내렸다. 수레 안쪽으로 옷자락이 사라질 때까지 왕은 기둥 뒤에 서 있었다.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왕은 붙잡지 않았다. 궁문이 닫힌 뒤에야 기둥을 짚었던 손을 풀었다. 손톱 밑에 오래된 나무의 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날 밤, 정명은 동쪽으로 창을 열었다. 아버지가 묻힌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반란을 꺾었으니 나라가 편안해졌다는 말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칼을 거둔 자리마다 두려움이 자라고 있었다. 왕은 불 꺼진 백성의 집들을 바라보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이제 저 집들의 문을 다시 열게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신문왕이 용과 천신으로부터 받은 옥대에 붙은 조각을 물에 담그자 용이 되어 승천해 용연폭포라 불리는 곳. 강시일 기자

◆흔적: 왕의 길 모차골

경주 동쪽 산길에 들어서면 왕의 이름보다 먼저 숲이 길손을 맞는다. 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흙길, 비탈에 드러난 돌과 뿌리, 골짜기를 따라 굽어드는 산자락이 걸음의 속도를 늦춘다. 황용동 모차골에서 문무대왕면 기림사 쪽으로 이어지는 '왕의 길'은 신문왕의 동해 행차 전승을 따라 걷는 탐방길이다. 궁궐의 권력 다툼과 바다의 만파식적 이야기를 산길 위에서 연결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길에는 바다의 용이 돼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뜻과 아버지를 기리는 신문왕의 마음이 겹쳐 있다. 다만 오늘의 탐방로 전체를 신문왕이 밟았던 노선 그대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왕의 행차와 관련된 이야기, 지역에 남은 지명, 실제 산길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이곳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모차골은 그 여정의 한쪽 들머리다. 현장 안내판은 이름을 '왕의 행차를 모시는 골'이라는 뜻으로 소개한다. 마차가 다니던 골짜기에서 이름이 비롯됐다는 풀이도 전한다. 어느 한쪽을 확정된 어원으로 내세우기보다 왕과 수레의 기억이 지명에 담겨 전해졌다고 이해할 만하다. 이름부터 행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지만, 지금 길 위를 채우는 것은 숲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다.

안내도의 동선을 모차골 쪽에서 따라가면 수렛재와 세수방을 거쳐 불령봉표, 용연폭포, 기림사로 이어진다. 수렛재는 왕의 어가가 쉬어갔다는 고개로, 세수방은 왕이 행차 도중 쉬며 손을 씻었다는 곳으로 설명돼 있다. 모두 잠깐 멈추는 행위와 관련된 이름이다. 높은 자리에 앉은 왕도 고개를 넘을 때는 쉬어야 했다는 상상이 길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탐방로는 한 가지 표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비교적 넓은 흙길이 있는가 하면, 나무뿌리와 돌이 드러난 구간도 있다. 머리 위로 가지가 맞물린 곳에서는 숲 그늘이 길을 덮는다. 촬영된 현장 이정표에는 모차골까지 4.3㎞라는 표시도 보인다. 이는 이정표가 선 지점에서의 거리이므로 전체 코스 길이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출발 위치에 따라 걷는 거리와 되돌아갈 동선도 달라진다.

길에서 만나는 불령봉표는 신라의 행차 설화와 시대가 다른 흔적이다. 현장 안내는 조선 순조 때 입산을 금하는 왕명을 새긴 표석으로 소개한다. 신문왕의 행차를 증명하는 돌로 볼 수는 없다. 왕의 길에는 신라를 기억하는 이야기와 조선시대 산림 관리의 자취가 함께 남아 있는 셈이다. 같은 산을 두고도 시대마다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가 달랐음을 보여준다.

기림사 쪽 용연폭포에 이르면 길의 이야기는 다시 만파식적으로 이어진다. 신문왕이 바다에서 받은 옥대의 장식 하나를 물에 넣었더니 용으로 변해 솟아오르고, 그 자리에 못이 생겼다는 전승이 내려온다. 용연이라는 이름을 설명하는 설화다. 눈앞의 물과 바위는 실제 풍경이고, 용의 승천은 그 풍경에 신비를 부여한 옛사람들의 이야기다.

길가에는 대왕암을 소개하는 역사 안내판과 독중개를 설명하는 생태 안내판도 서 있다. 동해의 호국 설화를 읽다가 산골짜기 생물의 삶으로 시선을 옮기게 하는 구성이다. 공원지킴터와 차량 진입금지 안내도 확인된다. 왕의 흔적을 찾는 답사길이면서 오늘의 숲을 보전하고 이용하는 탐방 공간이라는 점이 함께 드러난다.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의 은혜에 감사드리기 위해 지었다는 감은사지 삼층석탑 저녁 풍경. 강시일 기자

◆신화전설 2: 청룡과 천신의 선물

날이 밝자 바다에 산이 떠 있다는 전갈이 왔다. 파도를 따라 움직이는 작은 산 위에 대나무가 자라는데, 두 줄기로 갈라졌다가 다시 하나가 된다고 했다. 일관은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과 천신으로 돌아간 김유신이 보물을 보내려는 징조라고 풀이했다. 왕은 칼을 차고 바다로 향했다.

이견대 앞바다에서 산을 바라보는 동안 먹구름이 몰려왔다. 갈라진 대나무가 서로 몸을 부딪치자 벼락 같은 소리가 났다. 파도가 해안을 때리고 바람이 나무를 흔들었다. 신하들은 돌아갈 것을 청했지만 왕은 감은사에 머물렀다. 밤마다 반란을 진압하던 날의 소리가 들렸다. 활시위가 울고, 갑옷이 부딪치고, 왕비를 실은 수레가 궁문을 나갔다.

이레 만에 바다가 잠잠해졌다. 왕은 배를 타고 떠 있는 산으로 건너갔다. 젖은 바위를 디디는 순간 수면 아래서 푸른빛이 솟았다. 청룡이었다. 긴 몸이 물결을 감아 올렸으나 왕의 옷자락에는 물 한 방울 튀지 않았다. 용이 내민 것은 검은 옥으로 만든 허리띠였다. 그 위에 새겨진 작은 용들이 잠든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청룡의 뒤로 구름이 갈라지며 흰빛이 내려왔다. 그 안에 갑옷을 입은 노장이 서 있었다. 김유신이었다. 장군의 손에는 무기가 없었다. 주름진 손바닥이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를 가리켰다. 바다에서는 낮은 울음이 들려왔다. 정명은 그 울음 속에서 오래 그리워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만나기 위해 지나갔던 길이라 하여 왕의 길로 불리는 행차 안내도. 강시일 기자

왕은 대나무를 살폈다. 갈라진 두 줄기는 서로 다른 쪽으로 흔들리면서도 뿌리를 놓지 않았다. 한 줄기를 붙잡자 다른 줄기가 세차게 떨었다. 두 줄기를 억지로 당기려는 순간 손바닥이 날카로운 껍질에 베였다. 핏방울이 맺혔다. 청룡은 움직이지 않았다. 왕이 손의 힘을 풀고 기다리자 바람이 잦아들었고, 두 줄기가 천천히 맞닿았다.

김유신이 빈 두 손을 마주쳤다. 맑은 소리가 바위와 수면을 건너갔다. 왕은 다시 대나무를 보았다. 서로 꺾어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서 있던 두 몸이 만나 울림을 만들고 있었다. 문득 서라벌의 숨죽인 신하들이 떠올랐다. 반대하는 목소리가 사라진 것을 나라가 하나 된 증거로 여겼던 자신의 얼굴도 보였다.

왕은 칼을 뽑았다. 청룡의 눈에 은빛 날이 비쳤다. 잠시 멈췄던 칼끝이 대나무 밑동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사람을 겨누지 않았다. 잘라낸 대나무를 품에 안자 노장의 모습이 옅어졌다. 배가 물가를 떠날 무렵 산은 안개에 잠겼다. 뒤돌아본 바다에는 푸른 비늘 하나 보이지 않았다.

궁으로 돌아온 왕은 장인에게 피리를 만들게 했다. 그러나 완성된 피리에 힘껏 숨을 불어넣어도 거친 바람 소리만 났다. 장인은 손가락으로 구멍을 하나씩 짚어 보였다. 어떤 구멍은 막고 어떤 구멍은 열어야 했다. 왕은 밤을 넘겨 다시 불었다. 명령을 내릴 때처럼 숨을 밀어붙이지 않고, 길게 고른 뒤 조심스럽게 흘려보냈다.

첫 음이 열린 창을 넘어갔다. 뜰을 쓸던 늙은 궁인이 빗자루를 멈췄다. 처마 밑의 새가 고개를 기울였다. 왕은 다음 음을 서두르지 않았다. 먼바다에서 파도가 낮아지고 메마른 들판에는 비 냄새가 번졌다. 사람들은 훗날 온갖 풍파를 쉬게 하는 피리라 하여 만파식적이라 불렀다. 정명은 피리를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아침 조회에 들일 신하들이 뜰에 들어서고 있었다. 오늘은 그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볼 생각이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이 글은 문화콘텐츠 육성을 위해 스토리텔링 한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Copyright © 대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