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비행학교 유일한 조선 여학생… 이듬해에 ‘3등 비행사 면허’[송종훈의 백년前 이번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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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9월 24일 동아일보에는 대구에서 열리는 모험 비행 대회에 참가하는 일본 나고야 비행학교에 재학 중인 4명의 여류 비행가 가운데 유일한 조선인 여성에 대한 기사가 실린다.
"대구 토목 건축 조합 주최 모험 비행 대회가 오는 26일, 27일 양일간에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최된다. 비행사는 일본 나고야(名古屋)비행학교 교장 이하 6명의 비행사와 동교에 재학 중에 있는 여류 비행가 4명이라는 바, 여류 비행가 중에는 조선 여자 한 명이 있어 대회가 열리는 날부터 눈길을 끌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방년 19세가 된 경성 누상동 75번지 이순규 씨의 둘째 따님 이정희 양이다. 이 양이 방금 두류(逗留·체류)하고 있는 나고야로 찾아가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비행기에 뜻을 두기는 숙명여학교 보통과 5학년에 다니던 어느 겨울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공중에서 '프로페라' 소리가 요란스럽게 날아가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나도 한번 저렇게 날아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났었어요. 남자가 손이 둘이면 여자도 마찬가지 손이 둘인 이상 여자라고 해서 안 될 리가 없으리라 하고 그때부터 비행기와 살고 비행기로써 최후를 마치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 이듬해 동아일보사 주최 안창남 씨 고국 방문 대비행을 보고 걷잡지 못할 만큼 비행기에 대한 마음이 맹렬해 부모에게 양해를 구하고 선생에게 말을 하였으나, 될 수 없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2∼3년 더 다니다가 숙명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가서 그만두고 어떻게 하든지 비행학교에 들어가려고 궁리해 보았어요. 그러나 부모의 양해도 양해거니와 첫째 집안이 군색(窘塞)하니 학자금이 변통이 되어야지요. 혼자 애만 태우고 있는 가운데 어느 자동차 회사에 한 달쯤 있다가, 지난 7월 10일에 경성에서 모험 비행회를 연다고 하기에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숙명고등보통학교 교장을 찾아보고는 비행학교 학업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니까 다행히 교장 선생께서 자기가 학비를 대겠다 하여 공부를 하는 중입니다. 나중에 어떻게 될는지 남의 힘을 입어 공부하는 처지.' 이 양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살금 고개를 숙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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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9월 24일 동아일보에는 대구에서 열리는 모험 비행 대회에 참가하는 일본 나고야 비행학교에 재학 중인 4명의 여류 비행가 가운데 유일한 조선인 여성에 대한 기사가 실린다. 당시 신문은 비행사를 꿈꾸며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던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대구 토목 건축 조합 주최 모험 비행 대회가 오는 26일, 27일 양일간에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최된다. 비행사는 일본 나고야(名古屋)비행학교 교장 이하 6명의 비행사와 동교에 재학 중에 있는 여류 비행가 4명이라는 바, 여류 비행가 중에는 조선 여자 한 명이 있어 대회가 열리는 날부터 눈길을 끌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방년 19세가 된 경성 누상동 75번지 이순규 씨의 둘째 따님 이정희 양이다. 이 양이 방금 두류(逗留·체류)하고 있는 나고야로 찾아가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비행기에 뜻을 두기는 숙명여학교 보통과 5학년에 다니던 어느 겨울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공중에서 ‘프로페라’ 소리가 요란스럽게 날아가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나도 한번 저렇게 날아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났었어요. 남자가 손이 둘이면 여자도 마찬가지 손이 둘인 이상 여자라고 해서 안 될 리가 없으리라 하고 그때부터 비행기와 살고 비행기로써 최후를 마치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 이듬해 동아일보사 주최 안창남 씨 고국 방문 대비행을 보고 걷잡지 못할 만큼 비행기에 대한 마음이 맹렬해 부모에게 양해를 구하고 선생에게 말을 하였으나, 될 수 없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2∼3년 더 다니다가 숙명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가서 그만두고 어떻게 하든지 비행학교에 들어가려고 궁리해 보았어요. 그러나 부모의 양해도 양해거니와 첫째 집안이 군색(窘塞)하니 학자금이 변통이 되어야지요. 혼자 애만 태우고 있는 가운데 어느 자동차 회사에 한 달쯤 있다가, 지난 7월 10일에 경성에서 모험 비행회를 연다고 하기에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숙명고등보통학교 교장을 찾아보고는 비행학교 학업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니까 다행히 교장 선생께서 자기가 학비를 대겠다 하여 공부를 하는 중입니다. 나중에 어떻게 될는지 남의 힘을 입어 공부하는 처지….’ 이 양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살금 고개를 숙이더라.”
그는 간절히 소망하던 비행사가 되었을까? 그 소식은 1927년 12월 13일 조선일보를 통해 들려온다. “금년 겨울에 3등 비행사의 면허를 받고 조선 비행 구락부의 서기로 있는 이정희 양은 내년 2월에 실행할 고국 방문 비행에 대한 준비를 하기 위하여 수일 전에 귀국하여 경성 누하동 자택에 유숙 중이다. 파란만장한 생활 가운데 기어이 성공의 월계관을 얻고 돌아온 이 양은 12일 오후에 본사를 내방하여 3등 비행사의 몸이 되어 처음으로 귀국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 번 목적한 바를 단행하고야 말겠다 조선을 떠나던 작년 이때와 그래도 성공이라고 아니 할 수 없는 3등 비행사의 면허를 받고 돌아온 지금의 저의 마음을 비교하면 물론 기쁘다 하겠지마는, 한 가지 무거운 책임감이 있는 것을 깨닫습니다. 앞으로 저는 장차 항공계에 나서려는 조선 여성들을 위하여 분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그 첫째 조건인 줄 압니다. 저는 내년 2월까지 조선에 있어 여러 가지 준비를 해 가지고 고국 방문 비행을 해 볼까 합니다.’”
19세기발전소 대표
※ 위 글은 당시 지면 내용을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옮기되, 일부 문장은 옛 투를 살려서 100년 전 한국인들과의 소통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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