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주권’ 주창하는 정치권···당원 뜻에 맡기고 ‘당내 민주주의’로 정당화하는 것이 온당한가[점선면]

유경선 기자 2026. 9. 2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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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이 싸움의 도구가 될 때, 주권은 누구의 편인가

독자님은 오늘 레터 제목을 보고 뭔가 어색하다고 느끼지 않으셨나요?

주권은 누구만의 편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주권이라는 단어가 ‘당원’과 결합하며 기존과 다른 맥락에서 쓰여요. 당원주권이라는 말이 피아를 식별하고 상대를 배타하는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당원주권을 강조하는 우리 정당정치의 최근 흐름이 과연 궁극적으로 당원을 위한 것일까요? 우리 정치를 전진시킬 수 있을까요? 점선면이 정리해 봅니다.

지난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30회 국회 개회식. 박민규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앞다퉈 ‘당원주권’을 주창합니다.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의 큰 화두는 당원주권이었습니다.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는 당대표직에 재도전하며 당원주권을 강조했어요. 당대표 시절 ‘1인 1표제’를 도입한 장본인인 만큼 당을 사랑하는 당원이라면 자신을 지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도 당원주권을 말합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당원주권, 당원 권한 강화를 주요 과제로 제시했어요. 장 대표와 정청래 전 대표가 말한 당원중심정당은 서로 닮았습니다. 당의 주요 직책자를 뽑거나, 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등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당원의 뜻을 더 중시하겠다는 겁니다.

한국 정치 주축인 두 당이 나란히 당원주권을 전면에 내세운 이후 열성 당원들의 행동에 더욱 거침이 없어집니다. 당원의 지지를 받는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가 문자폭탄, 팩스공격, 협박 같은 일을 겪는 국회의원들이 민주당에서도 국민의힘에서도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당원을 중심으로 정당을 운영하다 보면 아무래도 시간과 열정을 쏟는 강성 당원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됩니다. 강성이라 함은 어떠한 당위를 강하게 주장하고 타협을 거부하는 성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러다 보면 곧잘 투쟁적 태세를 취하게 됩니다. 투쟁에 몰입한, 양보 못 할 것들이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정치의 공간은 쪼그라들고요. 상대를 적대하는 의견이 우세해지니까요.

경향신문이 국회의원들의 성향을 분석한 결과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 간 이념의 차이보다 당파성 차이가 2배 정도 더 크게 나타났거든요. 실제 이념이나 정책 지향이 다른 정도에 비해 상대방을 훨씬 더 적대적으로 인식한다는 뜻입니다. 이념적 차이는 토론이 되지만 당파성 차이, 바꿔 말하면 정서적 적대는 좋고 싫음의 문제라 토론도 불가능합니다.

일러스트=김상민 기자

당원의 정치 참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결정을 당원의 뜻에 맡기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민주정당’이나 ‘당내 민주주의’ 같은 말로 정당화하는 것이 온당한지의 문제예요.

국회의원은 정당인이기 이전에 국민의 대표로 뽑힌 정치인입니다. 선출됐다는 데 책임을 지고 정치해야 합니다. 당원의 뜻을 기다렸다가 결재만 받으면 되는 자리가 아닌 것이죠. 당원은 의사를 표현할 뿐 정치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지지는 않습니다. 당원주권 강화는 정치인의 책임 방기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정당은 당원만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정당법 제2조는 정당을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라고 정의해요. 정당을 정의하는 말에 ‘당원’ 대신 ‘국민’이 주요하게 쓰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중당적 보유를 금지한 정당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헌법소원을 기각하는 과정에서 “정당이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들과 소통하며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즉각적으로 정당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고 있다”며 “향후에는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이 정당의 정치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과 범위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정당은 당비만으로 운영되지 않고 국고보조금을 받아요. 당원이 정당의 모든 걸 쥐고 흔들 수 없다는 게 분명히 설명됩니다. 당원의 의사만 반영하겠다는 기조는 정치 참여의 기회를 선점하고 구매해야 하는 것으로 협소화하기도 합니다. 당원이 되고 당비를 내야만 행사할 수 있는 배타적인 권리가 되는 것이죠.

정당은 당원의 정치 참여가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열성 혹은 강성 당원들이 중앙정치 문제에만 골몰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인데요. 이 에너지가 지역 기반 정치로 흐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당원들이 지역위원회(민주당), 당원협의회(국민의힘) 등 각 당의 지역 조직에 소속되어 활동하게 하는 거예요.

전당대회는 정책을 겨루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민당은 정기 전당대회에서 당의 정책노선을 치열하게 토론해서 결정한다고 해요. 당원들의 토론이 전당대회를 이끄는 겁니다. 당원이 당의 지역 조직에 참여하는 구조가 되면 하부에서 자생한 의제가 자연스럽게 중앙에 등장할 수 있겠죠.

당원주권이 계속 지금의 방식대로만 강조된다면 우리 정치는 점점 강경 노선으로 이끌리고, 종국에는 질 낮은 정치로 당원의 권익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겁니다. 정치권이 주권이라는 말을 배타적이고 투쟁적인 개념으로 더 이상 오염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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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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