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흠뻑 젖은 숲 향기를 맡아보렴 [트레일러너 아빠의 산중 편지 ⑦]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안녕? 아들! 산과 들, 계곡을 달린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야.
그런 숲속을 누비며 달리다 보면, 꼭 한 마리의 야생 동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최근에 올랐던 가리산 하이킹을 기억해? 오르막을 오르며 힘들어했지만, 정상 가까이 도착했을 때 능선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잠깐이었지만 쏟아져 내렸던 비, 그리고 달리기 좋은 길에서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말이야. 아빠에게 여름비 내리는 숲속은 꼭 그날 가리산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줘.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녕? 아들! 산과 들, 계곡을 달린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야. 마치 해적들이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과 같지. 자연을 달리며 그 속에서 마주하는 생명들은 나에게 보물과 같은 존재들이야. 그 생명들은 나와 자연을 하나로 이어주는 존재들이지. 아빠가 이번달 산에서 달리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들려줄게.

지난 8월 너무 더웠지? 이렇게 더운 날 아빠는 어떻게 달리기를 하냐고 물었잖아. 물론 더운 날씨에 달리기를 하는 건 힘든 일이야. 그래도 나는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달리는 순간을 좋아해. 그리고 사실, 여름이라고 항상 덥지만은 않거든. 가끔 비도 내리고, 새벽엔 생각보다 시원한 바람이 불 때도 있어. 그런 순간들을 즐기며 달리기를 이어가지.
7월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던 것 같아. 며칠 동안 계속 비가 오기도 했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도 많았지. 다른 친구들은 비 오는 날을 싫어할지 몰라도 나는 좋아해. 왜냐하면 특별한 달리기를 할 수 있거든. 가끔 하늘을 보고 있으면 뭉게구름이 점점 짙어지는 게 보여. 곧 비가 온다는 신호야. 그러면 얼른 달리기 하러 나갈 준비를 하지. 아무도 없는 숲속으로 말이야.
비가 오는 날 달리다 보면 온몸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숲에서 나는 향기를 느낄 수 있어. 그리고 홀로 고요히 달릴 수 있는 숲은 특별한 장소로 변해. 특히 빗방울이 이마와 팔에 부딪히는 그 순간이 좋아. 그런 숲속을 누비며 달리다 보면, 꼭 한 마리의 야생 동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중요한 것 또 하나! 하늘에서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면 숲속의 향기는 이내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더 깊어져. 떨어진 빗방울이 숲이 품고 있던 식물의 냄새를 공기 중으로 퍼뜨리거든. 처음에는 흙먼지 냄새가 나기도 하고, 조금 지나면 아주 오랫동안 숲이 품고 있던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한 향기가 나. 나는 숲에서 그런 향이 날 때가 제일 좋더라고.
최근에 올랐던 가리산 하이킹을 기억해? 오르막을 오르며 힘들어했지만, 정상 가까이 도착했을 때 능선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잠깐이었지만 쏟아져 내렸던 비, 그리고 달리기 좋은 길에서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말이야. 아빠에게 여름비 내리는 숲속은 꼭 그날 가리산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줘.
함께 산에 오르면서 본 구불구불하게 자란 소나무 기억해? 모양이 독특했잖아! 두꺼운 껍질, 삐뚤빼뚤한 몸통, 뾰족한 솔잎까지. 누가 봐도 '아, 이게 소나무구나' 하고 알아볼 수 있지. 소나무가 구불구불하게 자라는 이유는 생장 속도가 느려서, 다른 나무들을 피해 햇볕을 받으려고 그런 거래. 또 자라면서 솔잎과 껍질을 땅으로 떨어뜨린대. 그것이 흙의 성질을 바꾼다고 하더라고. 흙이 산성 성분으로 바뀌면 그 토양에서는 다른 식물들이 성장하기 어렵대. 그래서 소나무는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살아. 그런 걸 '군락'이라고 불러.
소나무 군락 속을 걸어보면 독특한 향이 나면서 편안한 느낌을 받게 될 거야. 삐죽삐죽하게 생긴 잎을 가진 나무를 침엽수라고 하는데, 침엽수에서 특유의 '소나무 냄새'가 나. 그 소나무 냄새를 계속 맡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대. 우리 콧속으로 소나무의 냄새 화합물이 들어오면, 그게 핏속으로 스며들면서 몸에 좋은 영향을 주거든.
아들, 소나무의 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소나무 꽃이 피지 않는 계절에도 우리는 소나무 향을 맡을 수 있잖아. 대부분의 식물은 향기 세포가 꽃에 모여 있지만, 소나무는 바늘잎, 잎에 난 털, 나무껍질, 심지어 일부 나무의 줄기에도 향기 세포가 있대. 다음에 산에 가면 꼭 나무껍질과 잎을 비벼서 향을 맡아 보자.
더운 여름, 아빠와 함께 가리산에 올라줘서 고마워. 오래도록 그 기억이 아들의 머릿속에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해.
언젠가는 너도 자연 속을 달리며 수많은 생명을 마주하는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어. 직접 모험을 떠나지 않으면 보물은 절대 찾을 수 없거든.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과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느껴야만 만날 수 있어. 내가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너도 너만의 보물을 찾으러 모험을 떠나길 바라.
*소나무과 나무는 피톤치드라 불리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방출한다. 피톤치드는 나무가 병원균이나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하는 물질로, 피넨과 리모넨등의 테르펜류가 주요 성분이다. 연구에 따르면 피톤치드는 심혈관 기능 개선, 면역력 강화, 염증 지표 감소, 정서 및 태도 개선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흡기를 통해 피톤치드를 들이마시면 혈중 피넨 농도가 증가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는데, 이는 숲의 공기가 폐를 거쳐 혈류로까지 전달됨을 의미한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