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러 총선 노린 '역대급 공습'에도 모스크바 도심은 평온

김동호 2026. 9. 20.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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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하원(국가두마) 의원 450명을 새로 뽑기 위한 사흘간의 총선 마지막 날인 20일(현지시간) 오전.

그러나 '특별군사작전' 기간 첫 총선을 치르게 된 러시아 당국이 우크라이나군 드론의 침입을 틀어막고 민감한 정보의 유통을 걸러내기 위해 시행하는 여러 통제 조치만큼은 분명히 느껴졌다.

수년째 러시아에서 일하는 한 교민은 "많은 러시아인이 그간 멀리 떨어진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벌어지는 '특별군사작전' 상황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지만, 몇 달 전부터 정유시설과 물류센터 피해에 따른 여파를 실감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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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관광지에 시민·관광객 북적…"방공망 좋아 걱정 없다"
교외 나가니 징집 광고, 문 닫은 주유소 등 분쟁 여파 실감
볼쇼이극장 앞의 러시아 시민들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중심지의 볼쇼이극장 앞 분수대에 오가는 시민들. 2026.9.20 dk@yna.co.kr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러시아 하원(국가두마) 의원 450명을 새로 뽑기 위한 사흘간의 총선 마지막 날인 20일(현지시간) 오전. 우크라이나가 밤사이 무인항공기(UAV·드론) 1천600여기를 동원해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겉보기에 모스크바 도심에서는 그 여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중심지 트베르스코이에 머무는 기자는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거나 드론이 방공망에 격추되는 폭음 같은 것을 전혀 듣지 못했다.

호텔 리셉션 직원 소피아는 "시내에는 방어용 장비가 잘 갖춰져 있고, 경보가 울리는 일도 전혀 없다"며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당신은 안전하니 걱정 안 해도 된다"며 미소를 지었다.

인근 볼쇼이극장 앞 광장에도 느긋한 공기가 흘렀다. 외국인 관광객과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이 느긋하게 볕을 쬐며 모처럼 맑은 날씨를 즐기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쉬던 한 한국인 중년 커플은 "행사 참석차 러시아에 방문했는데, 어젯밤에도 그렇고 위험하다는 느낌을 못 받았다"고 말했다.

버스킹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19일(현지시간) 밤 모스크바 도심에서 거리공연을 즐기는 시민들. 2026.9.20 dk@yna.co.kr

분수대 앞에서 인스타그램에 올릴 영상을 찍던 젊은 남성 데니스는 "아마 여기에서 반경 20㎞ 정도까지는 뭐가 날아오지 못한다고 봐도 된다"며 "당신도 긴장을 풀고 모스크바를 즐기길 바란다"고 답했다.

다만 데니스는 자신이 운영하는 부동산중개 사업체와 관련해 "상황이 좀 좋아지면 좋겠다"며 여운을 남겼다. 경제활동을 하면서 체감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 여파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호소로 들렸다.

기자가 러시아에 체류하는 동안 모스크바 도심에서는 전쟁과 관련한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핵전쟁에 대비한 방공호 용도로 땅속 깊숙이 지었다는 지하철은 배차간격이 짧아 편리한 데다 열차 안팎도 깨끗했다. 역사 안팎에서 버스킹하는 젊은이들이 레드핫칠리페퍼스, 셀린 디옹 등 서방 가수들의 노래를 연주했다.

젊은 군인들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19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시내를 열맞춰 걷는 군인들. 2026.9.20 dk@yna.co.kr

모스크바강 수변공원에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겼고, 성바실리대성당 앞 붉은광장은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적국 영공을 폐쇄시키겠다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엄포'가 러시아의 심장부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나 '특별군사작전' 기간 첫 총선을 치르게 된 러시아 당국이 우크라이나군 드론의 침입을 틀어막고 민감한 정보의 유통을 걸러내기 위해 시행하는 여러 통제 조치만큼은 분명히 느껴졌다.

지난 17일에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본부 건물이 있는 루뱐카광장 부근에서 휴대전화 인터넷이 끊기고 지도 앱 위치정보가 어긋나면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는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는데, 행인 3명이 기자에게 달라붙어 도움을 줬다.

한 여성이 와이파이 연결을 나눠주겠다며 꺼낸 아이폰 바탕화면에는 인터넷 접속을 우회하기 위한 가상사설망(VPN) 앱이 3개나 깔려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이게 러시아의 현실"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영업 멈춘 주유소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19일(현지시간) 모스크바시 북쪽 교외의 한 주유소. 전광판이 휘발윳값 표시를 멈췄다. 2026.9.20 dk@yna.co.kr

교외로 조금만 나가보니 또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

모스크바시 북쪽 메드베드코보역에서 모스크바주 보로디노 방면으로 향하던 버스 창밖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군입대를 홍보하는 대형 광고판이 스쳐 지나갔다. 모스크바 시내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선전물이다.

근처 주유소들은 3곳 중 2곳꼴로 가격을 알리는 전광판을 꺼두고 영업을 사실상 중단한 모습도 보였다. 지난달 휘발유 공급난이 심화하면서 주유소마다 자동차가 수백 대씩 줄을 섰던 상황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나 싶었다.

수년째 러시아에서 일하는 한 교민은 "많은 러시아인이 그간 멀리 떨어진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벌어지는 '특별군사작전' 상황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지만, 몇 달 전부터 정유시설과 물류센터 피해에 따른 여파를 실감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는 수년째 전쟁을 끄떡없이 수행할 수 있는 대국"이라면서도 "이런 민심이 이번 총선에 어떻게 반영될지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총선 사흘째인 이날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점령지 헤르손에 우크라이나군의 공습이 가해져 선거사무원 1명이 사망했지만, 전국 각지의 투표소가 정시에 문을 열었다고 발표했다.

엘라 팜필로바 선관위원장은 이날 오전까지 전국 등록 유권자의 투표율이 45%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참전 군인 출마'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19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지하철 메드베드코보역 앞 가판대에 참전 군인의 총선 출마 관련한 소식을 알리는 신문이 걸려 있다. 2026.9.20 dk@yna.co.kr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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