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엔 페라리 ‘부릉’ 운하엔 오수 ‘콸콸’···전쟁 특수 누리는 가이아나, ‘자원의 저주’ 빠지나

최경윤 기자 2026. 9. 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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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9일(현지시간) 가이아나 수도 조지타운 도심에서 한 여성이 거리를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란 전쟁으로 세계가 고유가에 시름하는 사이 남미 산유국 가이아나는 뜻밖의 ‘전쟁 특수’를 누리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멀리 떨어진 원유 공급처를 찾는 수요가 늘면서 원유 수출액이 급증하고 30%가 넘는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혜택이 소수 기득권층에 집중되고 공공 인프라 개선 등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최근 가이아나 수도 조지타운 거리에서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등 고급 스포츠카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수입산 와규를 판매하는 스테이크 전문점이 들어서고, 호화로운 결혼식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인구 약 84만명의 가이아나는 1인당 원유보유량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국가로, 원유 생산 개시 약 7년 만에 호황기를 맞았다. 지난 2월 미·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캐나다·브라질 등 미주 지역은 중동산 원유의 대체 공급처로 부상했다. 시장조사업체 S&P 글로벌 에너지에 따르면 최근 미주 지역에서는 세계 원유량의 약 37%가 생산되고 있는데, 이는 10년 전과 비교해 약 10% 증가한 수치다.

가이아나는 올해 원유 수출로 연초 예상치의 2배가 넘는 약 65억달러(약 9조원)의 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올 상반기에만 정부 추산 약 33%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로 꼽힌다. 세계은행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약 3만2000달러(약 4400만원)인 가이아나를 ‘고소득’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우루과이와 칠레를 포함한 모든 중남미 국가보다 높은 GDP다.

현지 경제학자 리처드 램바란은 “가이아나가 갑자기 체급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며 일일 원유 생산량이 현재 약 90만배럴에서 2030년까지 170만배럴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5월9일(현지시간) 촬영된 가이아나 브리드엔후프에 있는 석유·가스 기반시설인 브리드엔후프 쇼어베이스 인근 주택가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유례없는 호황의 이면에서 불균등한 분배가 낳은 그늘도 짙어지고 있다. 정화되지 않은 오수는 여전히 조지타운의 운하로 흘러들고, 총기 강도 등 치안 불안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등 빠르게 개발이 진행되는 반면 대다수 시민은 여전히 홍수와 화재에 취약한 오래된 목조 주택에서 살아가고 있다.

올해 초에는 산유국임에도 시민들이 연료 부족 사태를 겪는 아이러니도 발생했다. 원유 생산 시설은 있지만 정유 시설은 부족해 석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탓이다. NYT는 소수 엘리트층만 재산을 늘리고 있다면서 시민들은 인플레이션과 부패, 주택 부족, 열악한 공공 서비스 등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7월 약 100명이 숨진 국영 여객선 전복 사고는 시민들의 반발을 부추겼다. 화물 과적 등 안전 규정 준수 문제가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비판 여론이 제기됐다. 참사 이후 열린 추모 시위에서 시민들은 “우리는 대부분의 가이아나인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경제 호황에 대해 듣는 데 지쳤다”며 희생자들은 정부가 막대한 원유 수입을 벌어들이는 와중에 여전히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던 사람들이었다고 지적했다.

베네수엘라와의 오랜 영토 분쟁도 석유 호황을 둘러싼 불안 요소다. 가이아나와 베네수엘라는 19세기부터 가이아나명 에세퀴보(베네수엘라명 과야나 에세키바) 지역을 둘러싼 영토 분쟁을 벌여왔다. 가이아나 국토 면적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이 지역은 2015년 미국 최대 석유 기업 엑손모빌이 인근 해역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한 뒤 양국 갈등의 핵심 쟁점으로 다시 떠올랐다.

미국은 앞서 베네수엘라가 가이아나 또는 현지에서 유전을 개발하는 자국 기업 엑손모빌을 공격할 경우 보복하겠다고 경고해왔다. 하지만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축출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영토 분쟁 해결을 주요 외교 과제로 내세운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정부와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된 에세퀴보 영토 분쟁은 내년 초 최종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5월9일(현지시간) 가이아나 수도 조지타운 킹스턴 지역에 미국 석유 기업 엑손모빌의 옥외 광고판이 설치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경윤 기자 ck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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