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빈 더봄] 부표
안전선을 걷어낸 날, 그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바닷물이 닿는 순간, 몸의 기억이 깨어났다
바다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해수욕장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고, 비닐봉지 하나가 부풀었다 꺼졌다 하며 날아다녔다. 짝을 잃은 슬리퍼 한 짝이 모래사장에 널브러져 있었다. 파도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해수욕장 입구에 걸린 폐장 안내 현수막이 바람을 받을 때마다 기둥을 쳤다.
탱. 탱. 탱.

이제 안전선을 걷을 차례였다. 현수는 샌들을 벗어 망루 아래 밀어두고 바다로 걸어갔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빨간 부표들이 파도를 따라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는 밧줄을 잡고 힘껏 당겼다. 물을 먹은 밧줄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가 알던 줄은 이것보다 가늘었다. 쥐는 것이 아니라 스치는 것이었다. 손에 닿으면 코스를 벗어났다는 뜻이었다.
셔츠와 반바지가 순식간에 젖어 버렸다. 몇 번을 더 잡아당기자 첫 번째 부표가 모래 위로 끌려왔다.
드르륵.
그는 다음 부표까지의 거리를 눈으로 가늠했다. 헤엄쳐 가면 얼마나 걸릴지가 먼저 떠올랐다.
두 번째 부표, 세 번째 부표. 바닷물을 잔뜩 머금은 것들이 차례로 모래 위로 올라왔다. 부표 사이에는 미역 조각이 걸려 있었고, 낚싯줄 같은 것이 한군데 엉켜 있었다. 그는 쪼그려 앉아 매듭을 풀었다.
날이 흐린데도 바다 쪽에서 빛이 반사됐다. 그는 손을 멈췄다.
실내 수영장의 천장이 떠올랐다. 레인 끝 벽을 짚고 숨을 고를 때마다 형광등 불빛이 물 위에서 길게 흔들렸다. 그는 그 불빛 아래에서 자랐다.
수영장을 떠난 뒤로 한 번도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들어갈 일이 없었다고, 그는 스스로에게 설명했다.
밧줄의 매듭이 겨우 풀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빗방울이 떨어질 것처럼 하늘이 낮았다.
해변 끝까지 걸어가 마지막 부표를 끌어냈다. 바닷속에 길게 늘어져 있던 밧줄이 전부 모래 위로 올라왔다. 바다에 선이 없어졌다.
현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목에 걸린 호루라기를 만졌다.
긴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 출발대에 올랐다. 관중석의 웅성거림이 차츰 잦아들었다. 출발 신호가 울린 뒤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물 밖으로 나오면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전광판에는 기록이 떠 있었다. 0.2초만 줄이면 된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파도가 왔다가 그의 발 앞에서 물러났다. 그는 무심코 파도가 오는 간격을 재다가 이내 그만두고 한 걸음 더 물속으로 들어갔다. 파도가 발을 적시자 발가락이 먼저 꼼지락거렸다. 가슴이 뛰었다.
현수는 셔츠를 벗어 모래사장에 던지고는 호루라기를 다시 목에 걸었다. 바닷물이 발목을 덮었다. 생각보다 물이 차가웠다.
현수는 물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갔다. 무릎까지 물이 올라왔다. 파도에 몸이 조금씩 밀렸다. 그럴 때마다 몸속에 남아 있던 물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그는 발가락에 힘을 주었다가 천천히 풀었다.
파도가 허리께를 쳤다.
그가 숨을 들이마시자 몸이 저절로 앞으로 숙여졌다.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자 오른팔이 앞으로 뻗어 나가 물을 당겼다. 숨은 금세 박자를 찾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숨을 쉴 때마다 회색 하늘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얼마쯤 나아가다가 그는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고는 천천히 몸을 뒤로 눕혔다. 어깨와 목의 힘을 풀자 물이 등을 받쳤다. 귀가 물속에 잠겼다. 파도 소리가 멀어졌다.
회색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천장 같은 건 없었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모래사장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걷어낸 안전선이 물가를 따라 길게 누워 있었다.
탱. 탱. 탱.
호루라기가 가슴 위에 떠 있었다. 현수는 그것을 입에 물고 조심스럽게 불었다. 짧은 바람 소리만 새어 나왔다. 그는 잠시 멈췄다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다시 힘껏 불었다. 이번에는 길고 선명한 소리가 났다.
물결이 지나갈 때마다 현수의 몸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여성경제신문 서빈 극작가·영화감독·미니픽션작가
michellesu@daum.net

서빈 작가·연출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상을 전공했다. KBS, EBS, SBS 등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다큐멘터리적 시선을 길렀고, 현재는 공연 극본과 연출, 영화 작업을 넘나드는 창작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 뮤지컬 <길동무 북두칠성>, <날으는 모자> 등의 극본과 가사를 썼고, <컴백홈>, <일등급 인간> 등을 연출했다. 단편 다큐멘터리 <안, 보이다 In, Visible>을 연출해 국내외 영화제에 공식 선정·초청되었으며,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으로 짧은 서사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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