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시간 품은 가락, 애절하고도 격정적인 [경남 무형유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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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와 여행안내서, 미디어를 통해 자주 보게 되는 국가유산은 이미 상식처럼 익숙하다.
1920년대를 전후해서는 지역성을 넘어 연주자마다의 개성이 드러났다.
58세(1984년)에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독주 무대를 열면서 이름을 알린 가운데 76세(2002년) 때 현재의 경상남도 무형유산 '신관용류 가야금산조' 보유자로 인정됐다.
특히 1962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제도가 제정되면서 산조는 전승 계보로 향유되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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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우륵, 신라에 가야금·곡조 전해
통일신라·고려·조선 거쳐 정악 이어져
19세기 중반 등장한 ‘흩어진 가락’ 산조
하나의 악기로 연주, 유파마다 개성 부각
이영채·신관용·강순영 거쳐 강동열 계승
진주 뿌리내려 전승활동…“국악학과 생겼으면”

교과서와 여행안내서, 미디어를 통해 자주 보게 되는 국가유산은 이미 상식처럼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경상남도에만 모두 41건의 무형유산이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이름과 내용, 그것을 지켜온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지역 유산을 조명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고, 그때마다 '기록의 필요성'과 '계승의 위기'가 이야기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심은 쉽게 흩어진다. 이 기획은 단순히 지역 유산을 나열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지역의 시간과 감각 그리고 그것을 오늘까지 이어온 사람들의 현재를 차분히 따라가며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일이다.
지난 5일 의령군 부림면 우륵문화마당 일원에서 '2026 의령 신반한지우륵문화축제'가 열렸다. 의령 한지와 악성(樂聖·성인으로 이를 정도의 음악가) 우륵의 가야금 문화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행사였다. 군은 부림면(성열현)을 우륵 탄신지로 여기며 축제를 이어오고 있다.
우륵은 고구려 왕산악, 조선 박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추앙받지만, 출생과 성장 과정, 음악적 업적 등은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삼국사기>에 실린 단편적 기록에서 가야 가실왕의 요청으로 12곡을 작곡했다는 사실과 신라 진흥왕대(540~576)에 망명해 가야금과 곡조를 전수한 행적 등만이 전해진다.

악성 우륵, 신라에 가야금·곡조 전수…'낙이불류 애이불비'의 음악으로 재탄생
경상남도 무형유산 '신관용류 가야금산조'의 연원을 찾아가면 첫 번째로 우륵과 가야금을 만난다. 우륵은 가야금을 신라에 전했다. 이후 가야금이 궁중 음악(대악)으로 채택되면서 통일신라기까지 185곡이 작곡됐다.
신라는 가야 음악을 수용하고, 전통 음악을 계승하면서 '낙이불류 애이불비(樂而不流 哀而不悲)'의 음악을 탄생시켰다. 제자들이 개작한 곡을 들은 우륵이 눈물을 흘리며 "즐겁지만 지나치지 않고, 애처롭지만 슬프지 않으니 과연 올바른 음악"이라며 받아들인 모습에서 그 시원을 엿볼 수 있다.
가실왕은 가야 고유의 현악기와 중국 악기를 참고해 가야금을 완성했다. 가야금을 비롯한 전통 악기는 삼국시대를 전후해 우리나라에서 만든 악기와 중국·서역 등지에서 들어온 악기들이 혼합돼 성쇠를 거듭하며 이어져 왔다. 현재 전하고 있는 국악기는 약 60종이 있다.

형식 구애받지 않는 산조로 우리 민족 정서·감정 표현
신관용류 가야금산조의 뿌리를 따라가면 두 번째로 이영채 등 명인과 산조(散調)에 닿는다. 무속 음악인 시나위와 판소리 등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산조는 즉흥성을 품은 기악 독주곡으로, 연주자의 기량과 표현력이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가야금이 거문고·향비파와 함께 삼현(三絃)을 이뤘으며, 대금·중금·소금과 함께 삼현삼죽(三絃三竹)으로 불렸다. 이후 조선시대까지 정악(正樂)으로서 그 전통이 이어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궁중 음악을 담당한 이왕직아악부와 민간의 조선정악전습소에서 전승이 이뤄졌다.
여러 악기가 함께하는 정악과 달리 산조는 하나의 악기로 연주된다. '흩어진 가락'을 뜻하는 산조는 느린 장단(진양조)에서 빠른 장단(휘모리)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연주자마다의 가락이 펼쳐진다. 즉흥적으로 가락을 만들어가는 특성상 산조 발생기에는 허튼가락으로도 일컬어졌다. 장구 반주가 따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산조는 19세기 중반 가야금에서 처음 등장했지만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조선 후기 사회 변화 속 우리 민족의 미감이 가미돼 탄생했다고 볼 수 있으며, 한(恨)으로 대변되는 선조들의 정서와 감정을 품고 있다. 가야금에서 시작돼 이후 거문고·대금·해금·아쟁·피리 등으로 확장됐다.
가야금산조는 전남의 김창조(1865~1919)가 가락을 정리하면서 틀이 갖춰졌다. 전북에는 이영채(1879~1931)가 있었다. 전북 가야금산조(전북제) 창시자인 이영채는 김제에서 태어나 전북 일대에서 활동했으며, 풍류·산조·병창을 가리지 않고 뛰어났다.


스승의 가락을 더해 자신만의 색채 구축한 신관용 명인
신관용류 가야금산조의 세 번째 인물이 신관용과 강순영이다. 1세대 이영채와 같은 김제 출신의 신관용(본명 신관영·1912~1961)은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전북을 중심으로 활동한 2세대 명인이다. 그는 15세(이하 세는나이)인 1926년 이영채에게서 사사했다.
1920년대를 전후해서는 지역성을 넘어 연주자마다의 개성이 드러났다. 신관용도 스승의 가락을 더해 자신만의 색채를 구축했다. 이와 함께 중기 산조는 광복 전까지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 등이 연속되는 악곡으로 발달했다.
신관용은 27세(1938년)에 결혼했는데, 이 시기부터 아편에 빠져 가야금을 타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보름달이 뜨면 가야금을 연주했는데, 곡조를 들은 이들은 울음을 참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신관용은 호남창극단에 입단해 전국을 순회했다. 전북 전주·군산·남원, 진주 등지의 권번에서 가야금을 가르치거나 잔칫집에서 연주하는 등 떠돌이 생활을 했으며, 50세(1961년)에 작고했다.
신관용에게서 사사한 3세대 강순영(1927~2020)은 남원 출신으로, 15세(1941년) 때부터 산조를 비롯해 풍류와 병창을 배우며 신관용류를 습득했다. 20세(1946년)에 호남창극단 소속으로 공연을 시작했으며, 1950년대에 2년간 신관용에게서 재학습했다. 당시 신관용은 어제와 오늘의 가락이 다르고, 오전과 오후의 기교가 달랐다. 복잡할뿐더러 휘몰아치는 장단에 강순영을 비롯한 제자들이 따라 하기가 쉽지 않았다.

강순영 명인 이어 강동열 보유자 신관용류 맥 이어
지난 8월 22일 오후 진주시 전통예술회관 공연장에서 신관용류 가야금산조 공개 행사가 열렸다. 이날 강순영을 이은 강동열(1956~) 보유자가 박홍식 고수의 장구 반주에 맞춰 철 가야금으로 산조를 선보였으며, 이후 '진주교방굿거리춤' 공연과 가야금병창 등이 이어졌다.
후기 산조는 즉흥성보다는 형식성을 갖추게 됐으며, 도제식 교육에서 벗어나 악보로 학습되기 시작했다. 특히 1962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제도가 제정되면서 산조는 전승 계보로 향유되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산조 발생기의 허튼가락은 사라졌지만, 유파적 특성이 부각되면서 연주의 정교함은 강화됐다.
신관용류는 계면조(슬프고 애타는 느낌을 주는 음조)로 시작해 계면조로 마무리되는 짜임새를 갖췄으며, 전 악장이 진계면을 중심으로 이뤄져 애절하다. 이날 연주에서도 강 보유자는 농현(줄을 흔들어 음을 떨리게 하는 연주법)과 시김새(음을 꾸미는 연주 기법)로 신관용류 묘미를 전했다. 우륵에서 시작돼 이영채·신관용·강순영을 거쳐 강동열로 이어지는 가락은 느리게 시작해 빠르게 나아가는 장단 속에서 애절함과 격정을 전했다.
전북 진안 출신인 강 보유자는 부친 강태근과 고모 강순영 등 국악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신관용류 가야금산조와 병창에 녹아들었다. 그는 20대 초에 예인의 길로 들어서 부산국악협회에서 신관용류를 가르치는 등 전승활동을 펼쳤으며, 30세(1985년)에는 부산시민회관에서 첫 독주회인 '강동열 가야금산조와 병창 발표회'를 열었다.
30대 시절에는 서울에서 가야금산조와 병창의 거장 향사 박귀희(1921~1993) 명인에게 사사했으며,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교와 대학원을 나왔다. 40대를 앞두고 전주로 와서 신관용류를 가르치는 등 활동을 펼쳤다. 강순영의 부름에 48세(2003년) 때부터 전주와 진주를 오가며 신관용류 가야금산조를 전승했으며, 54세(2009년)에는 현재의 전승교육사로 인정되면서 경남에 정착했다. 강 보유자는 강순영의 뒤를 이어 68세(2023년)에 보유자로 인정됐다.
강 보유자는 공개 행사 외에도 무형유산 토요상설공연, 기획 공연 등으로 신관용류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매주 금·토요일에는 진주시 전통예술회관에서 신관용류 가야금산조보존회 회원들에게 전수교육을 한다. 전북 출신으로 경남에서 생활하는 동안 외지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맞닥뜨려야 했으며, 50대 나이로 타지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며 경남의 국악인으로서 신관용류를 전승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강 보유자는 "도내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국악학과가 없어 신관용류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전승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국악학과가 생겼으면 좋겠다"며 "진주시 전통예술회관에서 교육하고 있다. 가야금에 관심이 있다면 언제든 배울 수 있으니 문을 두드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류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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