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면접인데 ‘정장 지양’은 웬 말?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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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첫 정장을 샀다. 어른이 됐으니 정장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올 10월부터 시행하는 이 공고에 따르면 면접 시 정장 착용은 지양한다.
"정권도 바뀌었는데 공무원 문화도 이제 좀 젊게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세대답게 편안하게 입고 면접 보라고 하면 더 좋아하지 않겠어요?" 그걸 듣던 내 세대 아래 직원들은 처장 심기는 거스를 수 없으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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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이 ‘어른의 옷’으로 여겨지던 기억
국가공무원 면접 복장 지침 뜬금없어
‘뭘 입을까’ 고민 없다가 다시 생길 판

대학 시절 첫 정장을 샀다. 어른이 됐으니 정장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나에게 어른의 옷은 정장이었다. 회사라는 걸 다니는 어른들은 다 정장을 입었다.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정장을 입던 시절이다. 비즈니스 캐주얼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다. 대학생이 됐다고 반드시 정장이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언젠가는 졸업을 한다. 언젠가는 면접이라는 걸 보게 되어 있다. 대학생이 됐으니 미리 사둬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 시절 정장은 꽤 돈이 나가는 옷이었다. 요즘에야 유니클로나 무신사 세일에 할인 쿠폰까지 더하면 10만원도 안 되는 돈에 한벌 뽑을 수 있다. 그때는 정장을 사려면 백화점에 가야 했다. 문제는 정장 구두였다. 나는 그 전까지 정장 구두라는 걸 신어본 적이 없었다. 대충 까맣고 굽이 높은 걸 사면 될 것 같았다. 나는 키가 165㎝라 굽은 높아야 했다. 거짓말이다. 164㎝다. 원래 1㎝는 반올림하는 법이다. 한국에는 180㎝ 남자는 많아도 179㎝ 남자는 거의 없다.
백화점에 들어가자마자 ‘무크’가 보였다. 제화 회사 엘칸토가 엑스세대를 겨냥해 내놓은 구두 브랜드다. 광고가 멋졌다. 흑백 화면에 누가 봐도 엑스세대인, 머리에 무스를 바른 남자들이 구두를 신고 춤을 췄다. 매장도 좀 달랐다. 엘칸토 입사한 직원 중 가장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들만으로 뽑은 것 같았다. 태도도 달랐다. 다른 매장 직원들은 어머니 눈을 보며 “사모님, 구두 좀 보고 가세요”라며 영업을 했다. 무크 직원들은 내 눈을 봤다. “너 이거 살 수 있겠어?”라는 태도로 봤다.
그게 영업 전략이었던 것 같다. 다른 브랜드와는 다르다는 자신감을 직원들 태도로 드러내는 전략 말이다. 그 앞에서 당신이 취할 태도는 두가지다. 쫄거나, 호쾌하거나. 나는 “당연히 이딴 거 살 수 있지”라는 태도로 무크 매대로 들어갔다. 구두들이 무스 바른 머리처럼 번들번들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여기는 딱히 좋아 보이지도 않는데 비싸네.” 그 말을 들으니 더 사고 싶었다. 그게 엑스세대를 노린 당대 회사들 전략이었다. 멋진 광고와 심드렁한 태도와 비싼 가격을 무기로 한국 역사상 가장 실속 없고 번들거리는 거 좋아했던 세대를 노렸던 전략 말이다. 나는 당연히 넘어갔다.

그날 산 정장과 정장 구두는 딱히 입고 신을 일도 없었다. 구두는 코가 지나치게 길고 뾰족해서 키 작은 나에게는 도통 어울리지도 않았다.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요정이나 광대들이 아마 그런 꼴이었을 것이다. 이후로도 정장 구두를 신을 일은 거의 없었다. 부모님들이 간절히 원하는 ‘회사’라는 곳에는 들어갈 일이 없었던 탓이다. 첫 입사는 영화잡지였는데, 이 글을 쓰는 한겨레신문 건물에 있었다. 정장 입은 사람은 영업직 사원들뿐이었다. 대신 개량한복을 입은 양반들이 많았다. 개량적인 회사인 모양이었다.
인사혁신처가 얼마 전 ‘국가공무원 면접시험 복장 안내 공고’를 올렸다. 올 10월부터 시행하는 이 공고에 따르면 면접 시 정장 착용은 지양한다. 넥타이와 정장 구두는 금지한다. 그럼 어떻게 입어야 하냐고? ‘역량 발휘에 지장을 주지 않는 간편한 옷차림’이다. 나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인사혁신처는 인공지능으로 대충 만든 예시 사진도 첨부했다. 유니클로 매장에 있는 가을 신제품 팸플릿 같았다.
인사혁신처는 “응시자들 부담을 줄이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면접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간편한 옷차림을 거듭 강조한다”고 거듭 강조하기까지 했다. 특별한 이유가 또 있나 싶었는데 이런 구절도 있었다. “대부분 응시자는 정장 차림으로 면접에 응시하고 있어 면접 분위기가 부자연스럽고, 구두 발자국 소음 등으로 시험 운영에 지장을 주고 있다.”
정장과 면접 분위기는 사실 별 상관이 없다. 구두 발자국도 소음이라고까지 할 건 없다. 게다가 면접 자리는 고민 필요 없는 정장이 제일 편하다. 몸에 맞고 깔끔하기만 하면 된다. 정장이 무슨 상류층 의복이던 시절도 아니다. 무신사 할인에 쿠폰까지 더하면 5만원에 뽑을 수도 있다.
나는 이런 공고를 고민한 양반들의 회의를 상상 중이다. “정권도 바뀌었는데 공무원 문화도 이제 좀 젊게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세대답게 편안하게 입고 면접 보라고 하면 더 좋아하지 않겠어요?” 그걸 듣던 내 세대 아래 직원들은 처장 심기는 거스를 수 없으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예 금지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위 양반들은 말했을 것이다. “그럼 금지라 하지 말고 지양이라고 쓰세요.” 정부 공고문의 지양이라는 단어는 곧 금지라는 의미다. 지양은 말 잘 듣는 놈과 안 듣는 놈을 구분하기 위한 단어다.
당신이 패션 유튜버라면 기막힌 콘텐츠가 하나 있다. 공무원 면접 시 사복 스타일이다. 깔끔하고 저렴한 정장만 입어서는 이제 공무원이 될 수 없다. 본인 역량 발휘에 지장을 주지 않고 면접위원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간편한 옷차림을 해야 한다. 그게 뭐냐고? 나도 모르겠다. 이제 공무원 면접에는 하나의 더 복잡하고 높은 허들이 탄생했다. 모두가 유튜브로 달려갈 것이다. ‘공무원 면접에서 입어서는 안 되는 아이템’ 같은 제목의 영상을 누를 것이다. 모두가 유니클로로 달려갈 것이다. 예시에 있는 아이템을 한자리에서 싸게 다 구입할 수 있는 최적의 브랜드다.
가끔 나는 그냥 정장을 입고 싶다. 나이 드니 옷 고르기가 점점 더 귀찮다. 옛날에 입던 걸 입으면 영포티라 욕만 먹는다. 나는 영피프티지만 어쨌든 같이 욕을 먹는다. 돌이켜보면 교복 입던 시절이 제일 편했다. 공부만 하라고 매질하던 시대에는 아침에 뭘 입어야 할지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교복은 ‘교복 자율화 시대’ 어르신들 생각처럼 획일적이지도 않다. 멋 부릴 놈은 다 부린다. 품을 줄이거나 액세서리를 더하거나. 이 정부는 제복을 참 싫어하는 것 같다. 교복은 아이들 제복이고 정장은 어른들 제복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젊은 정부라며 1990년대생 장관을 임명했다 폭탄 맞은 정부다운 생각이다. 이런 불평이나 하느니 얼른 유튜브 동영상이나 하나 만들어야겠다. 빨리 움직여야 돈을 번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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