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정당’ 양산하는 준연동형 비례제, 이쯤 되면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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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상 임상옥(1779~1855)은 계영배(戒盈杯)라는 이름의 술잔을 항상 곁에 뒀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수 정당을 거대 정당의 '2중대'로 전락시킨다는 점이다. 그런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이후론 진짜 2중대 정당이 양산됐다.
민의를 왜곡하고 '기생충 정당'을 양산하는 건 다름 아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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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율 1% 기본소득당, 비례위성정당 타고 두 차례 원내로
● 제1야당 배제한 선거법 강행 처리…예고된 위성정당 출현
● 소수 정당 살린다? 오히려 거대 당에 ‘목줄’ 잡힌 ‘2중대’ 양산
● 국고보조금 폐지 외치던 龍…연 11억 지키려 의원직 사수
● 기본소득당 반칙으로 생긴 페널티, 왜 이해해 줘야하나

술잔이든 그릇이든 정해진 크기만큼만 내용물을 채울 수 있다. 과한 욕심을 부렸다간 원래 갖고 있던 것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30대 여성 장관'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려다 실패했다. 그가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았다면, 자신과 기본소득당이 그토록 큰 비판에 직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지명 직후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례 두 번에 장관직까지 가져가려 한다는 데에 여론은 분노했다. 과거 발언이 '파묘'됐고, 기본소득당의 각종 꼼수도 드러났다.
지지율 1% 기본소득당, 비례위성정당 타고 두 차례 원내로
돈도 조직도 없는 진보정당에 내세울 만한 자산이 있다면 '도덕적 권위' 정도다. 기성 정치권을 향해 입바른 소리나마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입증할 수 있고, 국민의 지지도 호소할 수 있다. 최근 불거진 일련의 논란으로 용혜인 의원과 기본소득당은 그 자산을 모두 잃었다. 반칙을 일삼는 가족 정당으로 낙인찍혔으니 차기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의 연대도 불투명하다. 결과적으로 장관 지명 전보다 못한 상황이 됐다. 권력은 계영배에 따르는 술과 같다는 이치를 망각한 대가다.비례대표와 장관을 모두 하겠다는, 이른바 '황제 투잡'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용 의원은 "소수 정당의 어려움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고 했다. 기본소득당 국회의원은 용 의원이 유일하다. 그가 기존 관례대로 장관직 수행을 위해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나면 그 자리는 고재순 전 노무현재단 사무총장에게 승계된다. 고 전 사무총장은 민주당 인사다. 하나 있던 자리를 민주당에 넘겨주면 기본소득당은 원외정당으로 전락한다. 원외정당이 되면 원내정당에 지급하는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기본소득당이 받는 보조금은 연 11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기본소득' 같은 이 돈이 없다면 당 재정은 매우 악화할 것이다. 이들이 여론의 거센 비판에도 "겸직 선례를 만들겠다"며 버틴 이유다.
‘소수 정당의 특수한 사정'을 하소연하는 기본소득당에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소수 정당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라 편법과 반칙으로 의석을 얻은 위성정당의 특수한 사정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원외정당이었을 기본소득당이 비례위성정당이라는 반칙으로 국회에 입성해 생긴 페널티를 왜 국민이 이해해 줘야 하느냐는 주장이다.
정의당은 2020년 21대 총선과 2024년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주도의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았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처음 적용된 21대 총선에선 비례 의석을 5석이나마 건졌지만 22대 총선에선 단 한 석도 가져가지 못했다. 진보정당의 '대장주' 격이던 정의당이 원외로 밀려나는 사이, 정의당보다 존재감이 미미했던 기본소득당은 두 차례 원내에 진출했다. 반칙이 원칙에 앞섰다.
용 의원과 기본소득당의 공로가 없진 않다. 비례위성정당에 관한 논의를 다시금 수면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비례대표는 원래 제도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국민 선택을 직접 받지 않는 까닭에 자질이 부족해도 줄만 잘 서면 배지를 단다는 게 주된 이유다. 물론 정치 기반이 취약한 전문가의 국회 진출 통로로 기능하고 소선거구제에 따른 의석 불비례성을 보완한다는 이유로 찬성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의견이 분분한 비례대표제와 달리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이해관계자를 제외하곤 찬성하는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회 구성이 민의에 가까워지도록 비례성을 높인다는 취지였지만, 오히려 민의를 왜곡하는 게 현실이다. 기본소득당이 온 국민에게 욕 먹어가며 그걸 제대로 보여줬다. 살신성인도 이런 살신성인이 없다.
제1야당 배제한 선거법 강행 처리…예고된 위성정당 출현
비례위성정당을 낳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치적 야합의 산물이다. 시선을 2019년으로 옮겨보자. 당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검찰을 개혁한다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에 사활을 걸었다. 단독으로 이 법들을 통과시키기엔 의석이 부족했다. 요즘은 민주당 의석이 국회 절반을 훌쩍 넘지만, 2020년 총선 전까지는 120~130석 수준으로 과반에 한참 못 미쳤다. 국회는 민주당·자유한국당 등 거대 양당과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군소 정당이 분점하고 있었다. 민주당이 법안을 처리하려면 캐스팅보트를 쥔 이들의 협조가 필수였다.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당은 검찰개혁의 반대급부로 선거법 개정을 요구했다. 독일처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게 핵심이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을 배분한다. 정당 지지율이 높은데도 지역구 당선자가 적은 정당은 비례대표에서 부족분을 보충해 준다. 예컨대 한 정당이 국민으로부터 10%만큼의 지지를 얻었다고 치자. 이 정당에는 전체 300석 중 30석만큼의 몫이 돌아가야 정당하다. 그러나 선거구마다 한 명만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에서 제3정당은 단 한 석도 가져가지 못할 수 있다. 그걸 비례대표로 보상하면 국회는 민의를 좀 더 정확하게 반영하게 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소선거구제로 이득을 봐온 거대 정당에는 달가운 제도가 아니었다. 자유한국당은 처음부터 반대했고, 민주당 역시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민주당은 군소 정당들이 요구하던 안을 깎고 깎았다. 연동률을 절반만 적용하고 그나마도 비례 의석 일부에만 적용하는 '캡(상한)'을 씌웠다. 독자적 의결권이 없는 군소 정당들로선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누더기가 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탄생했다.
선거법은 일종의 경기 규칙이다. 규칙에 따라 승패가 엇갈린다면 그것을 결정하는 과정은 참가자들의 합의가 수반돼야 한다. 하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통과됐다. 제1야당 동의 없이 선거법이 강행 처리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합의된 적 없으니, 승복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새로운보수당 등과 합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개정하는 한편, 미래한국당이라는 이름의 비례대표 선거용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시 위성정당을 만들어 제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했다.
위성정당 탄생으로 가장 피해를 본 건 정의당이었다. 정의당은 군소정당이었지만 잘나갈 땐 지지율이 10%를 넘었다. 심상정·노회찬·진중권 같은 간판스타 덕분에 인지도가 높았고 조직도 탄탄했다. 그럼에도 매번 소선거구제의 벽에 부딪혔다. 이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결정되자 21대 총선에서 20석을 넘길 것이라 기대했다. 비례대표 1·2번, 11·12번에 청년을 배치하는 통 큰 결단을 내린 배경이다.
원내교섭단체가 된다면 진보정당사에 한 획을 그을 일이었다. 그 기대감에 당 안팎 명망가들도 비례대표 후보로 참여했다. 미래한국당이 등장했지만,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 파트너였던 만큼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을 거라 여겼다. 어쩌면 그 천진난만함이 정의당을 지금의 상황으로 내몰았는지도 모른다.
민주당은 더불어시민당이라는 이름의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었다. 거기에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이 참여했다. 정의당을 비롯해 녹색당·민중당·미래당 등 여타 진보정당들은 참여를 거부했다. 비례위성정당이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원칙을 지키는 데에는 값비싼 비용이 따랐다. 정의당은 예상한 것에 크게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다. 비례대표 5석, 지역구 1석이었다.
4년 뒤인 22대 총선에서도 정의당·녹색당은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았다. 반면 진보당과 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열린민주당이 임시 합당 형태로 만든 새진보연합은 참여했다. 민주당은 두 당에 당선 가능권에 세 자리씩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들 6명은 결국 모두 국회의원이 됐다. 정의당·녹색당의 선거 연합인 녹색정의당은 한 석도 가져가지 못했다.

소수 정당 살린다? 오히려 거대 당에 '목줄' 잡힌 '2중대' 양산
2019년 패스트트랙 정국은 한국 정치사에 큰 상흔을 남겼다. 여야 간 갈등이 전례 없이 격화됐고, 몸싸움이 난무했다. 급기야 '빠루'까지 등장했다.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았다. 그 난리를 겪으면서 강행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본래의 취지대로 민의를 '보다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장본인이 기본소득당이다.기본소득당의 정당 지지율은 1%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총선까지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 배분 시 3% 미만 득표한 정당은 배제하는 봉쇄 조항을 줬다. 국회에 진입하려면 최소 국민 3% 이상의 지지는 얻어야 한다는 취지다. 정상 상황이라면 기본소득당은 국회에 진입해선 안 되는 정당이었다. 그러나 제도의 허점을 틈타 민주당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했고, 두 번이나 원내에 진출했다. 소선거구제가 민의를 왜곡하는 게 아니라 이런 반칙과 꼼수가 민의를 왜곡하는 것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수 정당을 거대 정당의 '2중대'로 전락시킨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민주당과 결이 비슷한 진보정당을 2중대라고 비판하는 일은 왕왕 있었다. 그땐 그게 공격을 위한 정치 프레임에 그쳤다. 그런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이후론 진짜 2중대 정당이 양산됐다. 큰 정당에 잘 보여야 선거철 비례위성정당에 합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당·진보당 정치인들이 파란 옷을 입고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선거운동을 도운 장면이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평소 정의와 인권을 외치는 이들이 민주당에서 논란이 불거졌을 때 비판한 걸 본 적이 있는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는 거대 정당이 소수 정당을 속박하는 '목줄'로 작용한다 .
용혜인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직전인 2020년 2월 국고보조금 타는 정당을 '기생충'이라 비판하며 "정당 국고보조금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년이 지난 지금, 기본소득당은 그 국고보조금으로 배우자와 여러 활동가를 먹여 살리는 정당이 됐다. 그걸 '소수 정당의 특수한 사정'으로 포장하면서 말이다. 모든 건 제도에서 비롯된다. 민의를 왜곡하고 '기생충 정당'을 양산하는 건 다름 아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이쯤 되면 그만 바꿀 때가 됐다.
이동수 세대정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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