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김조한의 우정에는 ‘마지막’이 없다[유재영의 전국깐부자랑]

유재영 기자 2026. 9. 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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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의 은어(속어)죠.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어쩌면 이것이 김조한의 '깐부자랑'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알던 모든 사람을 만나고, 모든 관계를 붙잡고, 모든 자리에 함께 있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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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노래도 친구도 오래될수록 새롭게… ‘빈티지’ 김조한

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의 은어(속어)죠. 제아무리 모두 갖춘 인생이라도 건전하게 교감하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가수 김조한이 솔리드 앨범 1∼3집과 자신의 솔로 앨범을 들고 웃고 있다. 그는 오래된 노래도 지금의 목소리로 다시 들어 봐 달라고 했다. 오래된 음악도, 오래된 친구도 새롭게 바라보는 것. 김조한이 말하는 빈티지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한국 리듬앤블루스(R&B)의 황태자’로 통하는 가수 김조한을 만났다. 원래 계획이 없었다. 그와 오래 친한 음악 기획자가 자신의 지인 중에서 손에 꼽는 의리파라며 꼭 만나보라고 다리를 놨다.

그는 40, 50대가 20대 때 열광한 3인조 R&B 그룹 ‘솔리드’ 보컬이었다. 미국 흑인 가수들이 부르는 R&B가 신비스러울 때였다. 토종 가수들이 범접하기 힘든 장르. 그런데 재미교포 ‘형’이 나타나 ‘본토 R&B’를 기가막히게 불러 댔다. 노래와 리듬을 갖고 놀았다. 지금도 넋 놓고 듣게 되는 몇 안 되는 가수다. 무대에서는 무진장 땀을 흘려 가며 열정적으로 집중한다. 건성으로 노래한 적을 본 적 없다. 그래서 궁금했다. 무대 밖 인생도 그럴지.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는 일에도 그만큼 열심일까.

과거형이 되지 않는 오래된 인연

“이거 완전 ‘오리지날’이네요.”

보자마자 김조한의 예상치 못한 옛날식, 아재식, 토종식 영어 발음에 큰 웃음이 터졌다. ‘날’ 발음이 귀에 제대로 박힌다. 기자가 솔리드 1, 2집 카세트테이프와 김조한 솔로 앨범 CD를 꺼내 놓자 진지하게 표준어 발음을 비틀어 어색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돌려 놓는다.

며칠 전 방송하면서 무리했는지 소화도 안 되고 컨디션도 안 좋단다. 그럼에도 기자가 주문해 놓은 탕수육 몇 점을 손으로 집어 맛있게 먹는다. 검지와 엄지에 묻은 탕수육 소스까지 쪽쪽 빨면서 앞사람에게도 친철하게 권한다. 곁들여 나온 샐러드까지 소스에 비벼 주면서 포크를 내민다. 얼마 전 찍었다는 자신의 딸 사진을 보여준다.

―키가 커 보인다.

“아니에요. 제가 사진을 늘려서 키웠어요.”

하는 말에 솔직함과 배려가 있다. 아직도 한국말이 서투를 수 있어 혹시 대화 흐름이 끊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다. 온갖 제스처를 써 가며 자신의 일상 얘기를 먼저 꺼낸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속으로 확신이 들었다.

‘이 교포 형님, 너무 매력 있다.’

노래를 갖고 노는 김조한이지만 무대에서는 한 번도 건성으로 하지 않았다. 매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노래한다. KBS 유튜브 캡처

우정에 대한 인터뷰인 만큼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군지 물었다. 한 사람의 이름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절친한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곁을 지켜 온 사람이 꽤 많았다. 김조한에게 중요한 건 얼마나 자주 만나느냐가 아니었다. 함께한 좋은 시간을 기억하는 것, 오래 보지 못해도 그 인연을 함부로 지나가게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누구와 ‘헤어질 결심’은 웬만하면 안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오래 못 봤다고 옛 사람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각자 다른 곳에서 자기 인생을 살다가 다시 만나면 그때부터 ‘우리 얘기’가 또 시작되는 거잖아요. 옛날에 함께 좋았던 기억이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살아 있다면 그 인연을 굳이 ‘과거형’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김조한의 ‘깐부’는 그래서 한 사람, 단수가 아니라 ‘좋은 사람들’이라는 복수로 꼽아야 할 것 같다. 평생 인연을 꼽자면 가수 성시경과 박정현이다. 솔리드 멤버 이준 정재윤도 말할 것 없다. 방송과 유튜브에서 맹활약 중인 성시경은 더 바빠졌고, 박정현도 결혼 이후 만나는 횟수가 줄었다. 이준 정재윤은 미국에서 바쁘게 산다.

“옛날에는 그냥 전화해서 ‘뭐 해?’ 그러면 만났죠. 지금은 다들 자기 생활이 있잖아요. 일이 있고 가족이 있고. 이해해야죠. 꼭 자주 봐야 친구인가요?”

김조한은 각자의 시간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해도 서운해하지 않고 달라진 삶의 간격을 자연스럽게 인정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다는 거예요.”

김조한이 평생 인연으로 꼽은 가수 성시경(위 사진)과 박정현. 오래 못 봤다고 ‘옛사람’이 되지 않는 ‘좋은 사람들’이다. 김조한 제공

떠나보낸 뒤 더 선명해진 사람

2남 3녀 막내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살던 그는 집 근처 교회에서 힙합 음악을 좋아하던 이준 정재윤을 만났다. 두 친구와 한국에 무작정 노래를 하러 왔다. 1993년이었다.

“10만 원 들고 왔어요. 한국말이 서툴러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돈도 없이 연습한다고 숙소에만 갇혀 있으니 매일 바보가 되는 느낌이었어요.”

두 친구가 곁에 있었지만 낯선 한국에서 ‘우리’를 알아주는 사람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집 활동으로 방송 딱 두 번하고 다시 미국에 돌아가야 하기 전, 사람을 얻는 일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를 알았다.

세월이 흐른 뒤에는 사람을 잃는 일이 얼마나 아픈지도 혹독하게 배웠다. 김조한은 짧은 기간에 가족들을 잇달아 떠나보냈다. 당뇨를 앓던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큰 교통사고 후 치매를 앓던 아버지도 그 이듬해 별세했다. 곧이어 처남까지 잃었다. 불과 몇 년 사이였다.

젊은 날에는 낯선 땅에서 사람이 그리웠고, 나이가 들어 한국에서 살만하니 영원히 곁에 있을 것 같던 사람과의 이별을 겪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는 그의 말이 단순한 인사치레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솔리드가 1995년 2집 ‘이 밤의 끝을 잡고’ ‘천생연분’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면서 그의 곁에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사람을 얻은 만큼 실망한 일도 있었다. 인간관계를 덜어낼까 고민한 적도 적지 않았다. 사람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더 긍정적으로 바꿔놓은 계기가 있었다.

“몇 년 전 교회에 나가면서 용서를 알게 됐어요. 내가 사람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했던 건 아닐까 싶었죠. 마음을 비우고 먼저 용서하니까 사람을 보는 ‘안경’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랬더니 선물이 엉뚱한 데서 왔어요.”

―그게 무엇일까.

“어떤 사람과의 사이에서 힘든 일이 생길 수도 있죠. 그런데 용서를 떠올리면 그 사람을 만났다는 것에 더 감사하게 되더라고요. 사람이 내 곁에 남아 줬다는 안도감이 감사함으로 바뀌더라고요.”

서로의 상처, 사람에 대한 미움을 오래 붙들기보다 함께한, 어떻게든 좋은 시간만 기억하려 했다. 오랜 인연을 쉽게 과거형으로 만들지 않는 그의 마음이 확실하게 읽혔다.

‘올드’ 아닌 ‘빈티지’… 늘 새롭게 만날 솔리드

그의 이런 우정관이 솔리드를 계속 살아 숨 쉬게 한다. 그들 사이에, 아니 김조한만큼은 ‘솔리드 해체’라는 인식이 없다. 이준 정재윤과는 젊은 날을 함께 보냈지만 이후 오랫동안 서로 다른 삶을 살았다. 이준은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정재윤도 여러 곳을 오가며 다양하게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멀리 있다고, 연락이 뜸하다고 ‘옛 친구’가 된 건 아니다.

함께 무대에 서지 않아도 세 사람의 관계는 끝나지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살다가 다시 만날 때가 오면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이어가면 되는 관계였다. 김조한에게 솔리드는 잠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던 오랜 친구들 이름이다. 그래서였을까. 2018년 세 사람은 그룹 활동을 멈춘 지 21년 만에 다시 솔리드로 만났다.

“같이했던 좋은 기억이 있으니까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죠. 그렇다고 예전 것을 그대로 꺼내 놓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다시 만났으면 새로운 걸 보여줘야죠.”

‘이 밤의 끝을 잡고’ ‘천생연분’으로 1990년대 중반을 풍미하던 솔리드. 셋이 함께한 이 시간은 추억이 됐지만 세 사람의 인연에는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다. 동아일보 DB
영원한 솔리드. 김조한 정재윤 이준(왼쪽부터). 김조한 제공

오랜 시간을 건너 2018년 다시 만나 무대를 하는 솔리드(위 사진). 그들의 인연은 ‘천생연분’이다. JTBC 유튜브 캡처

김조한에게 물리적 재결합은 큰 의미가 없었다. ‘지금의’ 세 사람이 ‘무엇을’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오랜 친구라고 무조건 맞춰 주는 건 우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재결합 활동 과정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하면 먼저 나서서 정리하고 바로잡았어요.”

―‘오래된’ 솔리드는 앞으로 김조한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까.

“추억 속 ‘올드’가 아니라 여전히 새로움을 꺼낼 수 있는 ‘빈티지’로 있어야죠.”

이 생각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 준 계기가 있다. 사진이다.

“일만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찍어 봤어요.”

그랬더니 하루의 흐름이 느려졌다. 그냥 지나치던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장만한 카메라만 20대가 넘는다. 오래된 카메라를 10만∼30만 원에 구해 하나씩 번갈아 세상을 찍고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같은 풍경, 같은 사람도 렌즈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김조한이 직접 카메라에 담은 풍경과 사람들(위에서부터). 사진을 시작한 뒤 익숙했던 세상과 사람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에 빠졌다. 맨 아래 사진은 그가 하나둘 모은 카메라들 일부. 김조한 제공

한 번은 기르던 고양이를 무심코 찍었다. 시간이 흘러 사진을 다시 봤는데 신기했다. 잊고 있던 그날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늘 봐서 익숙했던 고양이까지 새롭게 보였다. 사진 속 표정 하나를 들여다보는 사이 함께한 시간까지 선명해졌다.

사람을 찍을 때는 더 그랬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인데도 사진 속에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 나타났다. 늘 웃는다고 생각한 사람에게서 낯선 표정이 잡혔다. 눈에 잘 띄는 평범한 얼굴이라고 여긴 사람에게서 뜻밖의 매력을 발견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오래된 친구이니까 잘 안다고 생각하고 가족이니까 더 잘 안다고 생각했다.

“익숙하다는 것과 잘 안다는 건 확연히 달랐어요. 이거다 싶었어요. 그 생각을 하고부터 가까운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사진을 찍어 줘요. 직접 종이로 출력해서 줘요. 기념일이라면 사인해서 선물해요. 그리고 자신을 새롭게, 다른 각도에서 봐 보라고 말해 줘요.”

렌즈 너머 다시 발견한 사람과 노래

좋은 순간을 남겨 주고 싶어서 찍었는데 카메라를 오래 들고 다녀 보니 사진 찍는 건 사람을 ‘남기는’ 일에서 사람을 ‘다시 보는’ 일이었다. 김조한은 요즘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사람 얼굴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다. 카메라는 사람만 새롭게 보여준 게 아니었다. 평생 해 온 음악에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얼굴’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평생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까지 낯설게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음악을 다시 듣고 부르게 한 셈이다.

―1990년대의 솔리드가 그대로 복원될 일은 없겠다.

“맞아요. 세 사람이 ‘지금의’ 솔리드를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사람도 음악도 과거 속에 박제해 두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어쩌면 이것이 김조한의 ‘깐부자랑’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느 한 사람을 ‘내 최고의 친구’라고 고르는 대신 인생 어느 순간을 좋게 만들어 준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 오래 만나지 못했다고 지우지 않는 것.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여전하네”라고만 하지 않고 “내가 몰랐던 이런 모습도 있었네”라고 바라보는 것이다.

나이가 먹을수록 쓸 수 있는 시간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알던 모든 사람을 만나고, 모든 관계를 붙잡고, 모든 자리에 함께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김조한은 사람에게 집중하는 에너지를 잘 관리하려 한다. 그에게 에너지는 ‘총알’이다.

“사람과 관계를 이어 가는 ‘총알’을 그동안 많이 썼어요. 그래서 이젠 ‘킬샷’을 하고 싶어요.”

‘킬샷’은 사람을 선별한다는 건 아니라고 한다. 관계를 이어 가는 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제대로 잘하겠다는 얘기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자신도 모르던 얼굴을 보여준다. 김조한도 그랬다. 여러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며 자신 역시 그들의 관계 속에서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됐다.

문득 장자 ‘제물론’에 나오는 그림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림자는 홀로 생기지 않는다. 빛과 사물과 땅이 만날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빛이 비추는 방향과 사물이 놓인 자리가 달라지면 그림자 모습도 달라진다.

가수 김조한이 늦은 밤 골목길 가로등 아래 섰다. 빛에 따라 그림자 모습이 달라지듯,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사람도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김조한은 사람을 오래 바라보면서 상대에게서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고 산다. 어느 순간 알게 됐다. 자신도 그 사람을 만나기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렇게 서로의 인생에 조금씩 흔적을 남기고, 이전에는 없던 나를 만들어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김조한이 ‘오래된 인연’을 소중하게 붙들고 있는 것 같다. 오래됐다는 건 그만큼 서로의 인생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뜻일 테니까.

그의 노래 ‘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야’를 흥얼거려 본다. 김조한의 우정에는 쉽게 ‘마지막’이 오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히트곡 ‘천생연분’도 새삼 다르게 들린다. 오늘은 사랑보다 우정 쪽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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