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금융권 덮친 ‘관치의 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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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여름이 지나갔는데 곧바로 겨울을 맞이한 기분이다."
1등에 안주하지 않고 AI 전환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도할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회장 선임 과정이 막바지로 치닫던 8월, 국세청이 KB국민은행에 대해 전격적인 특별(비정기)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도 변수였다.
문제는 KB가 쏘아올린 공이 금융권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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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이제 막 여름이 지나갔는데 곧바로 겨울을 맞이한 기분이다."
여의도 금융가에 전에 없던 삭풍이 불고 있다. 예상을 깬 KB금융 차기 회장 인선 결과가 '세대 교체'를 넘어 거대한 인사 태풍으로 번질 조짐이다. 사상 첫 연간 영업이익 6조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금융지주 최초로 시가총액 50조원 시대를 연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이 첫 연임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결과가 만들어낸 긴장감이다.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양 회장 대신 이재근 부문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낙점하며 내세운 명분은 '과감한 변화와 세대 교체'다. 1등에 안주하지 않고 AI 전환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도할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결정은 역대 금융권 회장 교체 사례와 비교해도 극히 이례적이다. 과거 어윤대·윤종규 전 KB금융지주 회장이나 조용병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사례처럼 '스스로 물러나는' 용퇴 형식이 아니라, 연임 의사를 뚜렷이 밝히고 끝까지 완주한 현직 회장이 최종 심사에서 탈락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역대급 실적'을 거두고 이렇다 할 사법 리스크도 없었던 양 회장 자신 역시 연임 무산 가능성을 거의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8월말 국회를 찾아 정무위원회 소속 핵심 의원들과 비공개 회동을 하며 인사를 나눴다. 22대 국회 후반기 정무위 구성에 따른 통상적인 방문이었다고는 하나, 향후 자신의 연임과 얽힌 국정감사 등 굵직한 현안을 염두에 둔 행보였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정치권에선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 방안 등과 관련해 양 회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이제는 옛말이 됐다.
결국 시장의 예상을 뒤엎은 이변의 이면에는 금융 당국과 정치권의 전방위적인 '지배 구조 개편 압박'이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로 이번 인사 전후로 당국이 뿜어낸 압박의 강도는 매서웠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권을 "부패한 이너서클"이라 직격했고,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지주 회장들의 '이사진 참호 구축'을 연일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특히 금융 당국이 올해 내내 군불을 땐 '금융지주 지배 구조 개편안'은 사실상 KB금융의 이번 인선을 정조준한 조치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회장 선임 과정이 막바지로 치닫던 8월, 국세청이 KB국민은행에 대해 전격적인 특별(비정기)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도 변수였다.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대규모 요원을 투입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사회에 가해진 압박 수위는 상당했을 것이다.
결국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회추위는 회장 교체라는 선택을 하며 자신들이 거수기가 아니라는 '이사진의 독립성'을 증명해 냈다. 하지만 시장은 이를 온전한 자율적 쇄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관치(官治)의 서슬 퍼런 칼날을 피하기 위해 쇄신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한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불과하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
문제는 KB가 쏘아올린 공이 금융권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KB금융지주 회장 인선이 마무리된 지 불과 사흘 만인 9월15일, 이 금감원장은 작심한 듯 금융지주 자회사 CEO 승계 절차의 폐쇄성을 맹비난하며 감독 강화를 천명했다. 당장 올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둔 5대 금융그룹 계열사 54명의 수장이 영향권에 들어간 분위기다.
새로운 피를 수혈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쇄신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동력이 기업 내부의 치열한 전략적 고민이 아니라, 당국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한 조치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KB가 내디딘 세대 교체의 발걸음이 한국 금융의 진정한 혁신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신(新)관치금융의 그림자를 재확인하는 이정표로 남을지 시장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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