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유튜버 ‘올리버쌤’ 미국 재난 생존기… “생존하다보면 운좋아져, 남는 건 인간성”

김지수 작가 2026. 9. 1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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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요새를 지은 텍사스 땅은 아슬아슬한 모래밭이었다.

세계의 문제가 미국의 문제로 분출되는 격동기에, 메가 유튜버 '올리버쌤(올리버 그랜트)'이 우연찮게 재난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채널도 차곡차곡 커져 마침내 미국판 '영끌' 사채가 끝난 날, 낡은 이불과 컴퓨터 한 대만 있는 텅 빈 집에 앉아 올리버와 다운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잔디가 망가지면 동네 집값 떨어진다고 사회적 눈총을 받는 미국에서, 올리버와 다운은 나무와 식물을 심으며 버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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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버둥쳐도 집 살 수 없는 한국 떠나
기후도 의료도 고장난 ‘기회의 땅’에 닻을 내리다
말라붙은 텍사스에서 얼어붙은 미네소타로
유기견, 유기묘, 이삿짐 싣고 1600km 달려
자원 줄어들고 각박해도, 좋은 이웃 많아
생존하다보면 운 좋아져, 남는 건 인간성
‘아메리칸 서바이벌’의 저자 올리버 그랜트(올리버쌤)와 정다운(마님). 현대적 재난의 한가운데를 통과했다. 낙원은 무너졌지만 행복은 계속된다고 믿는다./사진=김흥구

그들이 요새를 지은 텍사스 땅은 아슬아슬한 모래밭이었다. 기록적인 폭염은 땅속의 생명줄인 지하수를 말려버렸고, 아이가 함께 자라길 바라며 심었던 체리 나무도 새까맣게 타버렸다. 한파 속에 전력망은 쉽게 끊어졌고, 배꼽에 고름이 흐르는 아이를 안고도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마침내 타들어 가는 텍사스의 폭염을 뒤로 한 채 이민 단속 무장 요원과 시위대가 뒤엉킨 미네소타의 폭풍 속으로, 그들은 뛰어들었다. 개와 고양이, 아이와 어른… 여덟 식구의 목숨을 작은 트레일러에 매달고 칠흑 같은 어둠 속 1600㎞를 달려. 올리버쌤 가족의 이주기 ‘아메리칸 서바이벌’ 이야기다.

미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인가? 코로나 이후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시스템은 ‘아메리칸드림’에서 ‘아메리칸 서바이벌’로 급격히 장르를 틀고 있다. 블랙홀이 된 의료 시스템, 극단적 기후 재난, 명분 없는 전쟁, 빅테크 하마들이 빨아먹는 물과 전기, 줄어든 자원, 인플레이션으로 각박해진 민심…

세계의 문제가 미국의 문제로 분출되는 격동기에, 메가 유튜버 ‘올리버쌤(올리버 그랜트)’이 우연찮게 재난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2018년 아내 정다운과 텍사스로 이주 후, 8년간 몸으로 겪은 이 고생담을 읽으며, 나는 동물과 아이, 청년과 노년으로 구성된 이 대가족의 ‘따뜻한 서바이벌’에 깊이 감화되었다.

몰아치는 재난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생존자가 되어야 하는가?

대홍수가 일어나 방주를 만들어야 한다면, 그 옛날 노아 가족이 택함받았듯 올리버 가족이 그 역할을 담당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은 아이에게 공간을 내어 주고, 아이는 더 작은 아이에게 음식을 양보하고, 노인은 죽기 전까지 웃으며 남은 자를 돌보고, 남편과 아내는 끝끝내 살만한 새집을 찾아 당도하는. 서로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 유랑의 지분을 나누어 갖고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험난하지만 밝은 이 이주 스토리는 이미 226만 구독자 유튜브 ‘올리버쌤’에 업로드되어 회당 평균 100만 조회수를 기록한 바 있다. 이토록 다정한 한 팀, ‘아메리칸 서바이벌’의 저자 올리버 그랜트와 정다운을 만났다.

올리버 그랜트(이하 올리버)는 한국에서 7년간 영어 교사로 일하다 아내 정다운을 만나 2016년 가을에 결혼했다. 2018년, 올리버의 부모님이 있는 미국 텍사스 방문 도중 아버지의 권유로 이주를 결정했다.

그들의 한국 생활은 어땠을까?

226만 유튜브 ‘올리버쌤’을 운영 중인 올리버. 대학에서 언어학과 스페인어를 전공한 3개 국어 능통자.

한국인 정다운은 광고 회사 세일즈파트에 취업했다가 26세에 영혼이 깎이는 번아웃을 경험했다. 모은 돈 300만원을 들고 무작정 떠난 아일랜드에서 생존의 자력을 회복했다. 더블린 공항 카페에 취업했고 유럽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비쥬(볼을 부비는 유럽식 인사법)했다. 몸에 밴 비쥬가 올리버와 그를 맺어주었다.

2015년 겨울 어느 날, 스킨십에 몸 사렸던 6년 차 ‘유교남’ 올리버는 친구들 모임에서 사랑스럽게 비쥬해주는 정다운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들은 첫눈에 서로의 생명력을 알아보았고, 2016년 가을에 결혼했다. 아파트도 신혼살림도 없이. 올리버가 살던 응암동 원룸이 그들의 신혼집이었다. 침대도 없었고 접으면 소파가 되는 싱글 매트리스만 덜렁 하나 있는.

결혼 후 그들은 올리버의 유튜브 작업을 함께 했다. 2015년 10만 구독자였던 영어 꿀팁 유튜브 ‘올리버쌤’은 수직 성장했고, EBS와도 계약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신혼을 즐길 짬도 없이 온몸을 갈아 넣으며 일했다.

“한국에서 저희는 월화수목금금금을 일했어요. 매트리스가 이부자리고 책상이었어요. 18시간을 일하느라 여유시간이 하나도 없었어요. 어느 순간, 한국에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집을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힘으론 보금자리에 닿을 수 없겠다는 자각이…”

29세가 되었을 때 그들의 각자 수입은 200만원이 채 못 되었고, 여전히 EBS 수입에 많은 걸 의존했다.

미국 본토 48개 주 중에 가장 넓은 텍사스주. 최근 텍사스주 하원의원 탈라리코가 ‘텍사스에서는 모든 것 더 크다’라는 연설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진짜 큰 텍사스는 이웃 사이에 벽을 쌓지 않습니다. 더 긴 식탁을 만듭니다.”

2018년 1월, 텍사스에 간 건 그저 부모님을 보기 위해서였다. 텍사스 토박이인 올리버의 아버지는 유능하고 성실한 목수였다. 아버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두 사람에게 땅과 설계도를 보여주었다.

“예쁘고 크고 이마트 부지만큼 넓은 땅이 평당 5백 원이었어요. 아버지가 저희를 유혹했어요. 함께 집을 짓자고, 몸을 갈아 넣으면 멋진 집을 지을 수 있다고요.” 평생 집을 가질 수 없을 거로 생각했던 그들 부부에게 그건 엄청난 유혹이었다.

올리버와 다운은 그길로 그동안 모은 전 재산 6천만 원에 사채 1억을 얻었다. 수입은 있어도 미국에 쌓은 신용이 없어 은행 대출이 막힌 그들에게, 아버지의 지인이 돈을 빌려주었다. 1년 안에 갚지 못하면 땅과 집을 다 몰수한다는 아찔한 조건으로.

“무서운 빚이었는데, 그 빚이 무섭지 않았어요. 집이라는 빛이 너무 밝고 커서.”

올리버와 다운이 서로를 마주 보며 활짝 웃었다.

“우리는 자신이 있었어요. 며칠 씩 안자고 일하던 코리안 서바이벌로 이미 단련되어 있었거든요.” “우리는 서로가 어떻게 일할지 알고 있었어요.” 신용이 없으면 월세도 얻기 어려운, 차갑고 냉정한 시스템으로 부부는 그렇게 발을 디뎠다.

그들은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핑크빛과 핏빛이 뒤섞인 각자도생의 ‘오징어게임’은 아니었으나, 아메리칸드림은 막연한 드림도 아니었다.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은 틀렸어요.” 올리버가 웃으며 말했다.

“드림은 잠만 자면 꿀 수 있지만, 진짜 드림은 잠을 자면 안 돼요. 커피 마시고 잠을 안 자야 아메리칸드림에 닿을 수 있어요. 저희 조상도 처음 미국에 도착해서 미친 듯이 달렸어요. 도착이 곧 고생이었어요.”

미국 도착 1년 만에, 낮에는 목재에 망치질을 하고 밤에는 책상 위에서 마우스질을 하며, 지붕과 정원이 있는 그들만의 요새를 세웠다. 채널도 차곡차곡 커져 마침내 미국판 ‘영끌’ 사채가 끝난 날, 낡은 이불과 컴퓨터 한 대만 있는 텅 빈 집에 앉아 올리버와 다운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14만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이자 네이버 웹툰 ‘마님네 미국 시골집 이야기’를 연재 중인 당찬 한국인 이민자 정다운./사진=김흥구

─코리안 서바이벌에서 아메리칸 서바이벌로 옮겨갔군요! 올리버와 다운에게 서바이벌은 뭐죠?

“삶 그 자체! 저희는 미리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어요. 5년 뒤, 10년 뒤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만큼 생존에 급급했지만 그 와중에도 하고 싶은 걸 추구했어요.”

생존에 급급했어도 하고 싶은 걸 추구했다는 말이 선명하게 꽂혔다.

─상황은 점점 나빠지는데도 아이들을 낳고, 버려진 동물들을 입양하는 걸 보면서 신기했어요.

“일단 고양이 ‘크림이’와 ‘숯’은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에요. 크림이는 매가 오빠를 잡아가서 혼자 남겨진 애를 입양했어요. 숯도 엄마를 잃고 울던 아이였어요. 저희 집이 숲에 있었는데, 숲에는 코요테, 퓨마, 뱀, 부엉이 등 무서운 동물들이 정말 많거든요. 부엉이에게 쫓기던 숯이 처음 보는 올리버 품에 뛰어든 거예요.

진돗개 공주는 한국의 도살장에서 구출된 아이예요. 코로나 때라 서울에서 LA 편 비행기밖에 없어서 저희가 또 24시간 캘리포니아로 운전해 가서 데리고 왔어요. 그게 진짜 서바이벌이었어요. 도살장에서 구출된 공주 오빠들도 저희가 영상을 올려서 미국에 다 입양이 됐거든요. 그 뒤에 공주랑 그 오빠들 만나러 갔는데, 개들이 미국 땅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좋아서 뒹굴었어요.”

─당신들은 돌연변이로군요! 생존에 급급하면 보통은 주변도 타인도 안 보이는데.

“너무 예쁘잖아요, 생명 있는 것들이.”

부부가 노래하듯 말했다. 올리버와 다운은 인생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고 했다. 이왕이면 추해지지 않기 위해서 생명이 있는 곳에 닻을 내리고 싶었다고. 그게 건강하게 생존하는 뿌리가 되더라고.

숲 한가운데 사채를 써서 직접 지은 올리버 가족의 집. 그러나 결국은 모래 위의 요새가 됐다.

올리버의 가족도 유럽에서 미국으로 배를 타고 왔다. 오다가 병들어 죽는 사람도 많았다. 미국에 와서도 조상들은 이곳저곳 떠돌아다녔다. 노마드의 피를 물려받은 올리버도 성년이 되어 멕시코, 스페인, 한국을 돌며 특별한 환대를 경험했고 가족을 이뤄 후 텍사스로 돌아왔다.

숲 한가운데 지은 텍사스 집이 따뜻한 생명체들의 온기로 차오를 무렵, ‘사람이 이렇게 행복할 수도 있구나’ 벅차던 그 시간은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기후 위기와 에너지 고갈은 텍사스를 정면으로 강타했다.

─텍사스의 살인적인 더위는 ‘폭염 살인’의 저자인 제프 구델을 인터뷰하면서 전해 들었어요. 그 땅에서 직접 집을 지어 살아본 경험은 어땠습니까?

“텍사스는 한국보다 땅이 다섯 배나 커요. 저희가 집을 지은 숲은 인프라는 없었지만, 땅값은 평당 5백 원 정도로 헐값이었어요. 저희에겐 유일한 선택지였어요. 그런데 불과 몇 년 후 풍경이 달라졌어요. 아무것도 없던 숲에 코스트코가 생기고 집들이 많아졌어요. 텍사스의 친기업 정책으로 테슬라, 삼성 등 대기업이 들어오면서 인구가 폭증했어요.

폭염보다 먼저 혹한이 몰아쳤어요. 어릴 때부터 텍사스에 살았는데 그런 추위는 처음이었어요. 혹한에 대비가 안 돼 있으니, 전력망이 마비되고 너무 추우니까 많은 사람이 집 안에 있는 가구, 울타리를 태우면서 버텼어요. 2020년에서 1800년대로 문명이 후퇴할 수도 있구나… 믿기 힘들지만 사실이었어요. 병원도 전기가 나가서 촛불 속에서 출산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왔어요.”

연방정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전력망을 따로 관리한 탓에 텍사스는 외부 전력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사방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온도가 떨어질 때마다 미국인들은 생존 키트와 생필품을 사들였다. 시스템이 나를 구해줄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혹한이 끝나자 폭염이 왔다.

─우물 파는 친구가 와서 한숨을 쉬었다고요.

“네. 파도 파도 지하수가 말라 수맥을 찾을 수 없으니 잔디를 심지 말라더군요. 에어컨을 틀어도 1.5도 이상 온도가 내려가지 않았어요.”

잔디가 망가지면 동네 집값 떨어진다고 사회적 눈총을 받는 미국에서, 올리버와 다운은 나무와 식물을 심으며 버텨왔다. 그러나 한계에 다다랐다. 결정적 사건과 상징적 사건이 그들을 덮쳤다.

큰 어른, 올리버의 아버지 목수 브래드.

결정적 사건은 의료 시스템 마비였다. 인구는 폭증하는데 의사는 턱없이 부족했다. 갓난아기 체리의 배꼽에 진물이 흐를 때도 의사를 만날 수 없었다. 자영업자 보험으로 피부과 의사와 약속을 잡으려면 몇 달을 대기해야 했다. 집안의 큰어른이었던 올리버의 아버지도 췌장암에 걸린 채, 제대로 손 한 번 못써보고 몇 개월 만에 세상을 떴다. 가까스로 만난 의사는 ‘소금물을 마시라’는 황당한 처방을 내렸다.

“후회와 죄책감이 들었어요. 암 환자에게 오진단을 내리고 ‘소금물 마시며 쉬라’는 말을 듣는데 그걸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무서웠어요.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부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잠식 침묵했다. “저도 미국인이지만 미국인들은 아파도 병원에 잘 가지 않아요. 치과 가려고 한국 간다는 말이 그제야 이해됐어요.”

─상징적 사건은 체리 나무가 말라죽은 사건인가요?

“네. 체리가 태어났을 때 정원에 심은 체리 나무가 가뭄으로 말라 죽었어요. 다른 땅을 찾아야 할 때가 온 거죠. 저희가 지은 요새가 모래 위에 세워진 성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숨통을 조여오는 불볕더위, 바닥을 드러낸 지하수, 잦은 토네이도, 떠나는 보험사들… 그런데도 텍사스주는 미국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데이터센터를 짓고,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설에 착공했다.

“기술은 아름다워요. 하지만 물이 마르고 전기 요금이 오르면서 주민들은 데이터센터를 위협으로 느껴요. 줄어든 자원 앞에서 마음도 각박해집니다.” 올리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한국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 중인 데이터센터에 대한 의견을 묻자, 말을 아꼈다. “저희는 밑바닥을 봤잖아요.”

기후 재난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이 선택한 다음 피난처는 미네소타였다.

ICE 철수를 요구 중인 미네소타 시민들.

─피난처가 미네소타라니… 황당했어요. 당시 무장한 ICE 요원들의 발포와 체포로 온 세계가 그 도시를 걱정했습니다. 내전 상황이나 다름없어 보였어요.

“맞아요.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보수적인 텍사스에서 진보적인 미네소타로 가다니! 역시 정치적이야!’ 그런데 저희는 살려고 발버둥 쳤어요. 미네소타행은, 아버지의 유언이었어요. ‘네 어머니를 부탁한다’는 말씀… 어머니의 고향이 미네소타였어요. 다행히 미네소타는 보석 같은 곳이었어요. 춥지만 집값도 싸고 의료와 교육 환경도 좋더라고요.”

다운이 인터넷으로 나온 매물을 매의 눈으로 체크하고 올리버가 사전 답사를 다녀온 후 대가족의 다음 거처가 정해졌다. 그리고 새 보금자리의 잔금을 치르기 위해 온 가족이 미네소타로 향했던 3박 4일의 여정을 이들은 특별하게 기억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 ICE요원들이 외국인들을 무작위로 체포해서 추방한다는 소문이 들끓던 그때.

방한복으로 뒤뚱거리는 두 아이와 부부는 전쟁터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올리버가 가족의 신분증과 여권을 가슴에 안고 척후병처럼 앞서 걸었다.

─무장한 ICE요원들이 도처에 있는데 아시안 아내와 아이들까지… 올리버, 두렵지 않았나요?

“겁이 났죠. 공항은 의외로 평화로웠는데 호텔과 도심은 일촉즉발이었어요. 시위자들은 ICE요원을 찾아다니고, ICE요원들은 시위자들을 추적하고. 르네 굿이 사망한 직후여서 서로 더 긴장이 폭발했어요. 그래서 호텔 로비에서 총을 찬 사람들을 마주쳤을 때, 그 길로 방으로 가서 짐을 쌌어요. 마트에서 매트리스만 사서 계약만 마친 빈집으로 들어가 숨었어요.”

바닥부터 올라오는 한기와 두려움, 배고픔이 온몸을 파고드는데, 체리가 케사디아 한 조각을 떼어 떨고 있는 동생 스카이 입에 넣어주었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됐다. 말라붙은 텍사스에서 얼어붙은 미네소타까지 1600㎞. 서울에서 홍콩까지의 먼 길을 한 살, 네 살 어린아이와 네 마리의 동물, 덜컹거리는 이삿짐 트레일러까지 매달고 하는 대이동. 한국처럼 포장 이사도 없어, 미국은 이사를 죽음과 이혼의 고통에 비유할 정도라는데.

눈폭풍이 쏟아지기 전 먼 길을 달려가는 올리버 대가족.

극한 상황에서도 부모의 보살핌의 뿌리는 아이들과 동물들에게 이어졌다. 안전띠에 고정된 채로, 두 아이와 발밑의 개들은 20시간 내내 좁은 공간에서 버텨야 했다. 작은 터치에도 움찔하던 생명체들이 털과 살이 뒤엉킨 채, 사랑과 배려로 작은 몸을 오므렸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삶의 기반을 통째로 들어 셀프로 선적한 짐을 싣고 20시간 만에 당도한 미네소타에 막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체리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하늘에서 파파가 눈구름을 꽉 잡아줬나 봐!” 50㎝ 폭설이 예보된 가운데 눈이 쌓이기 전에 도착한 것은 기적이었다. 올리버와 정다운은 자신들의 책 ‘아메리칸 서바이벌’이 각자의 지옥과 무게를 지고 사는 세상 모든 어른에게 보내는 러브 레터라고 했다.

─재난 영화의 밝고 현명한 주인공을 보듯 ‘올리버쌤’ 가족을 보면 웃으며 몰입하게 돼요. 그럼에도 부양의 무게 때문에 허리가 휘고, 도망치고 싶을 때는 없었나요?

“저희 마인드가 그래요. ‘+1이 아니라 x1로 생각하면 어차피 무게는 1이야.’ 고양이 숯이 찾아왔을 때도 그랬어요. 어차피 우리 집도 먼지 구덩이에 난장판인데 뭐(웃음). 책임감이 무서울 때마다 생각했죠. ‘사랑이 너무 무거워서 그런 거다.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책임감을 느끼는 건 사랑할 존재가 늘어나서라고.”

─용감하군요! 두 사람 다!

“하하. 저희가 둘 다 88년 용띠예요. 더블 드래곤이죠.”

책임질 생명이 없으면 몸이 너무 가벼워져서 우주복 없이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느낌일 거라고 부부가 동시에 깔깔거렸다. 떼쓰는 소리, 웃는 소리, 우는 소리, 짖는 소리가 삶에 발붙여줄 중력이더라고. 책임질 존재가 있으면 ‘이 생명을 잘 먹이고 잘 재우겠다’ 오로지 그것만 단순하게 남더라고.

“저희는 하루하루의 생존자예요. 그걸 밝은 앵글로 보여주면서 구독자들과 함께 위로를 받는 거죠.”

일상의 가족 브이로그에 영어 한마디를 얹은 올리버쌤의 유튜브를 보며, 나는 이 ‘어린 가족’에게 깃든 밝음과 의젓함에 매번 감탄했다.

─사람들은 왜 올리버 가족의 유튜브를 좋아할까요?

“글쎄, 왜 좋아할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인생을 투명하게 솔직하게 장단점을 다 보여주니까? 한국 문화와 섞여서 한국말로 미국 생활을 보여주니까 친근감이 생기는 거겠죠. 순수하게 우당탕하는 모습 보면 재밌으려나요(웃음)?

AI와 기후 재난이 겹쳐서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잖아요. 그래서 악플을 봐도 저희에게 상처 주려는 게 아니라 그저 ‘이 사회가 많이 아프구나’... 나쁜 뉴스를 보면 일상에서라도 밝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무엇보다 내래이터인 올리버의 선한 목소리, 진실함, 배려가 화면 밖까지 느껴져요. 야생인데 부드러워요.

“올리버 성격은 시아버지를 닮았어요. 아버지는 텍사스 상남자였어요. 목수 일 하다 심하게 다쳐도 밴드 하나 붙이면 그만이셨어요. 병원에서 췌장암 진단을 늦게 받아 돌아가실 때도 묵묵히 상황을 받아들이셨어요. 진짜 어른이셨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배운 게 많다고 했다.

“끝까지 추한 모습 없이 숭고하고 아름다웠어요. 반짝 힘을 내서 마지막 식사로 아이들 햄버거도 구워주셨고, 하루 전까지 아이들과 놀아주셨고, 마지막 순간에 걸어서 화장실도 다녀오셨어요. 미소를 띠고 오후 2시의 햇살을 받으며 눈을 감으셨어요.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여기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표본을 저희는 봤어요. 그런 건 카메라에 담지 않고 저희 눈동자에만 담아요.”

생로병사의 압축 파일을 열어본 현자들이 평안한 어조로 말했다. 인생이 너무 짧다는 걸 보고 나니, 앞으로 태어날 생명까지 생각하게 되더라고.

올리버의 어머니 로희 여사, 독일인 3세. 그녀가 마침내 고향인 미네소타로 돌아왔다.

─안타까운 건 인생이 짧다는 걸 너무 늦게 알게 된다는 거죠. 저는 동영상 ‘로희 여사는 어디 있나요?’편에서 ‘it’s a hard choice, but it was for the best.’라는 한 줄 영어 표현이 참 좋았어요. “힘든 선택이지만 그게 최선이었어!

“그런 순간이 정말 많잖아요. 텍사스에 사채를 얻어서 집을 지을 때도 미네소타에서 인터넷 쇼핑으로 집을 살 때도 정말 힘들었지만, 그게 최선이었어요. 만약 더 여유가 있었다면 그 정도 고생은 안 했을 거예요(웃음). 추울 때 집이 싸게 나오니까 한파를 뚫고 간 거죠. 덕분에 폭염에서 한파로, 겨울 추위를 견뎌보는 테스트도 됐고요.”

텍사스 숲에서 미네소타 도시로 나오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이웃이었다. 올리버는 이웃을 보면 엉덩이에 꼬리가 달린 골든 리트리버처럼 다가간다고 다운은 웃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착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착하대요. 배신당해도 그 사람 빼고는 다 착하대요(웃음).”

─올리버, 사람들이 선하다고 믿어요?

“그럼요. 사람들은 대체로 열심히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요. 100명 중 한 명 정도만 사이코패스죠. 그리고 원래 착해서 착한 게 아니라 착하게 봐주면 착해져요. 아이들도 그래요. 제 삶의 목표가 사랑하는 법을 나누는 거예요. 아이들도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 그게 인생의 발판이 돼요. 남는 건 오직 인간성이에요.”

미국적 재난을 통과하는 과정을 섬세한 시선으로 정리한 가족 르포르타주 ‘아메리칸 서바이벌’. 정다운이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나그네를 환대하며 큰 나라가 된 미국은 트럼프 이후 각박해졌어요. 책임을 전가할 상대를 찾기 바쁘죠.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자원이 줄어드니 온 세계가 다 아등바등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 미국에서 숨 쉬고 생활하면 선량한 이웃들이 대부분이에요. 일례로 처음 미네소타에 왔을 땐 거리에 나뭇가지들이 다 흉물스러웠는데, 봄이 되어보니 그게 다 산딸기더라고요. 어느 날 아이들하고 산딸기 채집에 나섰어요. 그런데 한 할아버지가 큰 통에 칼 같은 걸 들고 저희를 안 좋은 눈으로 쳐다보는 거예요.

오싹했어요. 우리를 경쟁자로 보는구나. 나중에 보니 그 할아버지가 먼저 가서 아이들이 다칠까 봐 길을 다 닦아놓으셨더라고요. 힘들수록 눈 마주치고 목소리를 교환하면, 세상 어디든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한국 독자와의 만남의 자리. 정다운은 자신감이 넘치는 행동파 지휘관이고 올리버는 분석하고 걱정하고 수습하는 사람이다.

─치열한 유튜브 생태계에서 구독자와 선한 이웃 관계로 오래 남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나요?

“(미소 지으며) 저희의 존엄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정말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은 영상에 담지 않아요. 20%만 나누죠. 우리가 조회수의 노예가 되면 버티지 못해요. 조회수나 구독자 수보다 ‘좋아요’ 버튼을 의미 있게 보고 있어요.”

생계가 유튜브로 유지되지만, 정체성을 유튜버로 한정 짓지도 않는다고 했다.

“저희는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는 우선순위에서 유튜브는 5~6위 정도예요. 최우선 순위는 저희답게 사는 거. 저희답게 살아서 아이들한테 사랑하고 교감하는 법을 물려주는 거죠.”

─다운의 입장에서는 한국에 원가족을 두고 남편의 고향으로, 다시 시어머니 로희 여사의 고향으로 이동했잖아요. 흔들림은 없었나요?

“기준은 하나였어요. 인생은 짧다! 한국의 엄마 아빠는 더 젊고 시어머니 로희 여사는 혼자 남으셨잖아요. 그분 인생이 끝날 때까지 같이 있고 싶었어요.”

─가족이란 뭘까요?

“같이 늙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로맨틱 관계? 자식들에게 죽음을 아름다운 유산으로 물려주면서요. 늙어가는 걸 보는 게 참 감사해요.”

마흔도 안 된 젊은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돌아보면 운 좋은 인생이었나요?

“한때는 미국인이라는 것만으로 운 좋은 인생이었는데, 지금은 한국인의 자부심이 더 커지고 있지요. 저희는 생존하다 보니 운이 자연스럽게 좋아진 것 같아요.”

정다운은 인생은 어차피 험난하지만, 올리버와 같은 배를 타면 재미있을 거라고 믿었다고 했다. 두 딸 체리와 스카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세 가지만 꼽아주시겠어요?

“저희 가족은 조정 경기팀이에요. 엄청난 체력이 소모되죠. 그래서 첫째는 건강이요. 건강한 음식을 먹고 번지점프나 스카이다이빙 같은 건 안 해야죠. 둘째, 웃음. 저는 가족을 위해 코미디언이 돼요. 힘들 때도 장난을 치면 숨통이 좀 트이잖아요(“올리버는 천상 코미디언이에요”라고 마님이 맞장구를 쳤다).

셋째는 사과와 용서예요. 인내하고 웃으면, 아이도 어른도 달라져요.”

─‘아메리칸 서바이벌’을 읽으면서 좀 뜬금없지만 영화 ‘미나리’가 생각났어요. 바퀴 달린 집에 살던 가족, 한국에서 찾아온 장모님, 가뭄, 화재와 이혼 위기 등의 재난 그리고 양지바른 곳 어디서나 잘 뿌리내리는 미나리 같은 생명력을 지닌 개척자들… 마지막으로 올리버 가족만의 행복한 서바이벌 팁을 나눠주겠어요?

“예전엔 생존하려면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 집을 지었을 때 거기서 안정된 삶을 지키려고 부단히 애를 썼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가는 것이 죽음보다 무섭다’고 했을 때, 문득 깨달았어요. 행복한 서바이벌을 위해서는 결단력이 중요하다는 걸.

그래서 집을 떠났을 때, 그 작은 트레일러에 생필품만 넣고 떠났을 때 집을 잃어버린 기분이 들지 않았어요. 노아의 방주처럼 가장 소중한 핵심만 작은 차에 싣고 달리는 게 이상하게도 충만감을 줬어요. 이 작은 것이 우리의 핵심이구나!”

세계인의 정체성이 서바이벌이 되고 있는 이즈음, 이 젊은 대가족의 이야기는 많은 울림을 준다. “저희는 하루하루의 생존자예요.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고 기적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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