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신 선동열, 김연경 국대 데뷔… 나고야에 깃든 ‘한국 스포츠 영광’

나고야/이태동 기자 2026. 9. 1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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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치 나고야 아시안게임]
나고야에 깃든 영광의 순간들

“이젠 야구를 잘 안 보는데 ‘선동열상’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나고야의 태양(sun)’은 아직 지지 않았다. 지난 17일 일본 나고야에서 만난 택시 기사는 한국에서 왔다는 기자에게 대뜸 “선동열을 안다”고 했다. 그는 “나고야 야구 팬이라면 선동열이 활약했던 시절을 즐거운 추억으로 삼는다”며 “정말 강력하고, 대단한 투수였다”고 열을 올리며 얘기했다.

19일 공식 개막하는 아이치 나고야 아시안게임의 주무대 나고야는 인구 230만명으로 일본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다. 나고야가 속한 아이치현이 일본 제1의 제조업 지역인 덕분에 대기업 후원을 받는 스포츠팀이 많고, 각종 경기장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배경으로 국제 스포츠 교류가 활발했는데, 한국 스포츠 역사에도 나고야와 얽힌 가슴 뛰는 장면이 적지 않다.

한국 야구의 ‘국보급 투수’였던 선동열은 1996년 나고야를 연고로 한 일본 프로야구팀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했다. 그는 일본 야구 2년 차인 1997년 38세이브, 평균자책점 1.28을 기록했다. 외국인 투수로는 한 번도 없었던, 일본 야구 전체로도 시즌 최다인 세이브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주니치의 수호신’이란 별명을 얻었다. 1999년엔 주니치가 11년 만에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앞장섰다. 우승을 결정 짓는 경기를 마무리하고, 헹가래를 받은 선수도 선동열이었다. 선동열은 바로 지난달 ‘주니치 D 레전드’ 일원으로 이벤트 경기에 초청받아 익숙한 나고야 홈구장 마운드에서 시구를 했다.

한국 여자 배구의 대들보였던 김연경의 태극마크 여정이 시작된 곳도 나고야다. 김연경은 17세이던 2005년 고교생 신분으로 나고야에서 열린 ‘FIVB(국제배구연맹) 월드 그랜드 챔피언스컵’ 대회에서 국가대표로 첫 경기를 치렀다. 세계 여자 배구 왕중왕전 성격으로 도쿄와 나고야에서 분산 개최된 이 대회에 한국을 포함해 6국이 출전했다. 한국은 풀리그에서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다가 11월 19일 폴란드를 상대로 유일한 승리를 챙겼다. 김연경은 이 경기에서 25점을 폭발하며 수퍼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당시 대표팀을 이끈 황현주 감독은 앳된 얼굴의 김연경을 향해 “앞으로 10년간 한국 배구를 이끌어갈 재목”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연경은 그의 예상보다 6년 더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2012년 런던,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두 번이나 한국을 4강에 올려놓고 은퇴했다. 21년 전 김연경이 경기한 나고야 레인보우 홀은 아이치 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체조 경기장으로 쓰인다.

‘한강의 기적’으로 통하는 한국 경제 발전에 결정적 계기가 된 1988 서울 올림픽 유치 과정에도 나고야가 등장한다. 1981년 9월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서울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52표를 받아 27표에 그친 나고야를 꺾었다. 나고야보다 수년 늦게 유치전에 뛰어든 서울은 3~4표에 그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완전히 뒤집고 ‘바덴바덴의 기적’을 연출했다. 올림픽 유치를 확신하며 샴페인까지 준비했던 나고야 관계자들은 허탈함에 눈물을 흘렸다. 7년 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면서 선진국 도약의 계기는 물론 전 세계에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각인하는 효과도 얻었다.

아시안게임 개막을 하루 앞둔 18일 일본 나고야 시민들이 대회 마스코트 ‘호노혼’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 /박성원 기자

세계사 흐름을 바꾼 미국과 중국 간 ‘핑퐁 외교’의 출발점도 나고야였다. 1971년 3월 나고야에서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렸는데, 당시 미국의 글렌 코완이 의도치 않게 중국 탁구팀 버스에 탑승했다. 이를 계기로 적대시하던 미국과 중국 선수가 서로 선물을 교환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다음 달 미국 선수단이 공식적으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친선 탁구 경기를 치렀다. 예기치 않게 나고야에서 촉발된 미·중 화해 모드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의 회담으로 이어졌다.

한국 여자 탁구는 나고야 세계선수권에서 이에리사·정현숙을 앞세워 동메달을 따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2년 뒤 중국과 일본을 모두 꺾고 우승하는 ‘사라예보의 기적’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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