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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욕망은 뜨거운데, 재미는 미지근한 '스캔들'

박정선 기자 2026. 9. 1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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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 스틸.

23년 만에 시리즈로 재탄생한 '스캔들'이 다소 밋밋한 맛으로 시청자를 찾아온다.

18일 공개된 넷플릭스 새 오리지널 시리즈 '스캔들'은 조선시대 여성으로만 갇혀 살기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인 손예진(조씨부인)과 조선 최고의 연애꾼 지창욱(조원)이 벌이는 발칙하고 위험한 사랑 내기, 그리고 그 내기에 얽힌 한 여인 나나(희연)의 이야기를 그린다.

1782년 발표된 프랑스 고전소설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하며, 2003년 개봉한 한국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시리즈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국내에서만 352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으고 배우 배용준에게 여러 시상식 신인상을 안긴 영화를 23년이 지난 2026년, 8부작 시리즈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공개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영화 '해피엔드'(1999), '사랑니'(2005), '모던 보이'(2008), '은교'(2012), '4등'(2016), '침묵'(2017), '유열의 음악앨범'(2019), 시리즈 '썸바디'(2022)를 연출한 정지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내밀한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며 자신만의 색을 구축해온 정지우 감독. 특히 전작들을 통해 인상적인 에로티시즘을 필름에 담아온 정 감독이 높은 수위의 금기를 그리는 '스캔들'의 연출을 맡았다는 점에서도 궁금증을 더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 스틸.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 스틸.

모호한 시도와 파편화된 이야기

첫 회는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첫사랑이었던 조씨부인과 조원이 재회하고, 희연을 둘러싼 위험한 내기가 시작된다. 세 인물 모두 억압받는 이들이다. 사내 못지않은 총명함과 박식함을 지녔으나 여인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부인으로만 살아야 했던 조씨부인. 진정 사랑하는 여자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왕에게 쓴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버젓한 벼슬을 얻지 못한 조원. 누군지도 모를 남편이 죽은 후 열녀로 남으라 강요받는 희연까지. 세 인물 모두 자신을 짓누르는 금기와 맞서 싸우려 한다.

시도는 좋다. 그러나 8부작으로 이야기를 확장한 탓인지, 서사가 한곳에 모이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진다. 주요 인물들이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기보다 각자의 사연을 늘어놓는 데 가까워, 이야기가 구심점을 잃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이런 시도 속에서 치정극이라는 작품의 정체성도 흐려진다. 특히 조씨부인 캐릭터에서 욕망의 농도를 낮추다 보니, 사촌지간인 조씨부인과 조원이 왜 그런 위험한 내기를 시작하게 됐는지도 충분히 설득되지 않는다. '원작이 그러하다'는 정도로 이해해야 하는 대목이다. 메시지를 좇는 과정에서 드라마의 본질인 재미가 희미해지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 스틸.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 스틸.
영화와의 비교, 어쩔 수가 없다

'위험한 관계'는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작품으로 리메이크됐다. 그중에서도 한국 시청자에게 익숙한 작품은 단연 영화 '스캔들'이다. 이런 배경에서 시리즈가 영화와 비교되는 것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같은 이야기지만 너무 다르다. 영화 속 조씨부인과 조원은 모두 욕망에 들끓는 인물이다. 두 사람이 위험한 내기를 시작하게 된 과정부터 조원이 결국 진정한 사랑인 숙부인 희연을 만나 변화를 겪는 과정까지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반면 시리즈 '스캔들'은 영화에 비해 치정극 특유의 쫀쫀함이 덜하다. 조씨부인과 조원의 이야기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희연이 조원에게 마음을 주게 되는 과정은 다소 얼렁뚱땅 흘러간다. 조씨부인과 조원의 전사를 풍부하게 담아 시리즈만의 차별화를 시도한 듯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득이자 독이 됐다.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의 울림 역시 영화에 미치지 못한다.

영상미 또한 영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꾸몄다. 영화가 여백을 살려 더욱 아름다운 풍속화 같은 그림을 그렸다면, 시리즈에는 보다 선명한 색을 입혔다. 영화와는 다른 시각적 선택이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어떤 인상을 남길지는 지켜볼 만하다.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 스틸.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 스틸.

세 배우, 애썼다

세 배우는 과감한 시도를 감행했다. 이미숙, 배용준, 전도연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분주하게 연기했다.

조씨부인 역의 손예진은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시대에 억압받는 여인부터 위험한 제안을 건네는 묘한 매력의 여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인까지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지창욱은 이 작품에서 가장 몸을 던진 배우다. 영화 '스캔들'에서 배용준이 '욘사마' 이미지를 내려놓고 도전한 작품과 캐릭터를 통해 각종 시상식 트로피를 휩쓸었듯, 지창욱 역시 자신을 내던지고 바람둥이 조원으로 분해 연기력을 아끼지 않는다. 여기에 지창욱 특유의 능청스러운 유머까지 더했다.

나나는 수위 높은 노출 연기에 도전했다. 꽁꽁 싸맨 청상과부에서 결국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귀여운 여인으로, 다시 진정한 사랑을 찾아 여인으로서의 욕망에 충실하며 희연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찾기까지. 희연의 변화를 세련된 얼굴에 우아하게 담아냈다.

박정선 엔터뉴스팀 기자 park.jungsu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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