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정기선’ 첫 1조원 베팅…조선 호황으로 번 돈, 전력에도 건다

안옥희 2026. 9. 18. 06: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HD현대중공업이 발전엔진과 소형모듈원자로(SMR)에 1조원을 투입한다. 선박을 만들며 쌓은 엔진 기술과 생산 역량을 육상 전력시장으로 확대하는 대규모 투자다.

선박용 엔진에서 발전엔진으로 사업 영역을 넓힌데 이어 원전 기자재까지 생산 기반을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발전엔진이 이미 미국에서 대형 수주를 확보하고 생산능력을 늘리는 단계라면 SMR은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에 제작 역량을 확보하는 선행 투자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포커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2025년 8월 22일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과 회동을 갖고 SMR 사업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HD현대

HD현대중공업이 발전엔진과 소형모듈원자로(SMR)에 1조원을 투입한다. 선박을 만들며 쌓은 엔진 기술과 생산 역량을 육상 전력시장으로 확대하는 대규모 투자다.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전력시장을 겨냥했다. 투자 발표 시점도 눈길을 끈다. 정기선 회장이 HD현대 2대 주주로 올라선 지 일주일 만이다.

정 회장은 지난 9월 3일 부친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으로부터 HD현대 주식 280만 주를 증여받아 지분율을 6.12%에서 9.67%로 높였다. 국민연금공단 지분율 7.12%를 넘어섰다. 정 이사장은 23.0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정 회장이 2025년 10월 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처음 발표한 1조원대 신사업 투자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정기선 체제에서 HD현대중공업의 사업 확장 방향이 조선을 넘어 전력과 원전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투자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9월 10일 총 1조722억원 규모의 신규 시설투자 2건을 공시했다. 8336억원은 울산 온산에 3GW 규모의 발전엔진 생산기지를 짓는 데 쓴다. 2386억원은 울산조선소 안에 SMR 주기기 제작 전용 공장을 세우는 데 투입한다.

HD현대중공업 시설 투자 개요. 그래픽=송주연 기자

 배 만들던 엔진, 데이터센터로 간다

이번 신규 투자의 핵심은 발전엔진이다. 주목할 제품은 HD현대중공업의 독자 엔진인 ‘힘센(HiMSEN)’이다. 힘센엔진은 현대중공업이 약 10년간 연구개발 끝에 2000년 독자 개발한 4행정 중형엔진이다. 2001년 첫 엔진 생산을 시작했으며 선박 추진과 발전, 육상 발전 등에 사용되고 있다.

HD현대는 일찍이 힘센엔진 발전소 패키지를 개발해 육상 발전시장으로 영역을 넓혔다. 2005년에는 쿠바에서 7억2000만달러 규모의 육상발전설비 544기를 수주했고 이후 해외 발전시장 공급을 확대했다. 현재까지 60개국에 1만5000대의 힘센엔진을 공급했다.

힘센엔진은 디젤뿐 아니라 천연가스와 이중연료 모델을 갖추고 있다. 최근 미국 데이터센터 시장에 공급하는 20MW급 발전엔진도 이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HD현대중공업은 약 21만5000㎡ 부지에 엔진 조립·시운전 시설과 크랭크샤프트 가공, 엔진 블록 주조 공장 등을 짓는다. 2027년 1분기 착공해 2028년 5월 준공할 예정이다.

신규 공장의 발전엔진 생산능력은 3GW다.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30년 약 945TWh로 2025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에서는 증가폭이 더 크다. 2030년까지 미국 전체 전력수요 증가분의 약 절반을 데이터센터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망 증설 속도가 데이터센터 건설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체 발전설비와 분산형 전원의 가치가 커지는 이유다.

이번 증설을 통해 육상 발전엔진 생산능력은 연간 4GW로 늘어난다. 선박용을 포함한 힘센엔진 전체 생산능력은 현재 3GW에서 2030년 7.2GW까지 확대된다. 울산 본공장은 선박용, 온산 신규 공장과 전남 영암의 HD현대엔진은 육상 발전용으로 생산거점을 나눈다.

미국 전력 수요 전망. 그래픽=송주연 기자

미국을 중심으로 커지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투자의 주요 배경이다. 미국의 전력 수요는 AI 데이터센터 확산 등의 영향으로 2026년과 2027년 연속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데이터센터가 전력망에 접속하기까지 대기기간이 길어지고 변압기 등 핵심 전력설비 공급도 지연되면서 자체 발전설비를 확보하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

실제 수주도 이어지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올해 4월 미국 에이페리온에너지그룹과 6271억원 규모의 684MW 발전설비 공급계약을 맺었다. 8월에는 코반에너지그룹과 9560억원 규모의 1GW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두 계약을 합치면 1조5831억원이다. 모두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에 들어가는 물량이다.

한영수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증설 규모와 내용은 기존 예상 대비 긍정적”이라며 “엔진 부문은 증설이 완료되면 선박용을 포함한 4행정 엔진 생산 능력이 기존 3기가에서 7.2기가로 증가하고 생산 능력이 두 배 이상으로 확장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엔진은 실적, SMR은 다음 성장축

SMR 투자도 이번 계획에 포함됐다. HD현대중공업은 2386억원을 들여 울산조선소에 SMR 주기기 제작 전용 공장을 만든다. 2029년 상반기 완공이 목표다. 선박용 엔진에서 발전엔진으로 사업 영역을 넓힌데 이어 원전 기자재까지 생산 기반을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발전엔진이 이미 미국에서 대형 수주를 확보하고 생산능력을 늘리는 단계라면 SMR은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에 제작 역량을 확보하는 선행 투자다.

HD현대는 테라파워와 수년 전부터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2022년 테라파워에 투자하며 협력의 첫발을 뗐다. 2024년에는 테라파워의 나트륨 원자로에 들어가는 원통형 원자로 용기를 수주했고 이후 핵심 주기기 제작으로 협력 범위를 넓혔다.

올해 5월에는 HD현대중공업이 테라파워의 나트륨 원자로 핵심 설비 제작·공급과 관련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정기선 회장은 지난 8월 빌 게이츠 테라파워 회장과 만나 나트륨 원자로 사업 협력을 논의했다.

HD현대는 앞으로 원자로 용기를 연간 2~3기 공급할 수 있는 생산체계도 구축할 계획이다. 기존 조선소의 대형 구조물 제작 경험과 원전 기자재 제작 역량을 결합해 SMR 공급망에서 입지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HD현대중공업 육상발전용 힘센(HiMSEN) 가스엔진H54GV 모델. 사진=HD현대중공업

 ‘배 밖’에서도 돈 벌 수 있을까

HD현대중공업이 투자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실적 개선도 있다. 회사는 올해 2분기 매출 6조3322억원, 영업이익 1조399억원을 기록했다. 엔진기계 부문은 매출 7602억원, 영업이익 2686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8%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33.6% 늘었다.

장성호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힘센엔진에 대한 미국 데이터센터의 수요는 향후 확대될 것”이라며 “전력은 데이터센터 증설을 제약하는 가장 큰 병목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고 힘센엔진은 이미 검증된 전력원”이라고 분석했다.

관건은 늘어난 생산능력을 실제 수주로 얼마나 빠르게 채우느냐다. HD현대중공업은 신규 공장 가동률을 2028년 30%에서 2030년 100%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선박 발주에 따라 움직이던 엔진 사업에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육상 전력이라는 별도의 수요처가 자리 잡을지가 핵심이다.

이재혁 LS증권 애널리스트는 “발전용 엔진 생산능력 확대는 선박용 중심이었던 엔진 사업을 발전용으로 본격 다각화하는 사업 재편”이라고 평가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