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화가라는 신화에 머물지 말고 욕망의 미술로 이중섭을 재해석하자”
이지호 관장·미술평론가 임근준
세계 미술의 관점서 이중섭 재평가

‘민족의 화가’ ‘비운의 천재’. 이중섭을 설명하는 말은 많지만 이 익숙한 틀만으로는 그를 세계 미술의 좌표에 놓기 어렵다. 17일 제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29회 이중섭 세미나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중섭의 선은 어디서 왔고, 몸들은 왜 그렇게 얽히는가. 이중섭 신화를 반복하기보다는 그의 조형 언어를 다시 읽는 자리였다.
첫 번째 발제자인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은 프랑스 화가 조르주 루오와 스승 임용련을 통해 이중섭의 조형 언어가 형성된 과정을 짚었다. 그는 “루오의 굵은 선이 인물을 외부로부터 분리하는 ‘경계의 선’이라면, 이중섭의 검은 선은 끝없이 이어지는 ‘관계의 선’”이라고 했다. 루오가 인간의 고독을 화면에 응축했다면 이중섭은 사람과 사람, 인간과 동물 사이의 교감과 연대를 선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국·프랑스에서 공부한 임용련을 오산학교에서 만난 일도 “예술가를 형성하던 가장 예민한 시기에 받은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다.

다음 발제자인 미술 평론가 임근준씨는 이중섭을 ‘민족’과 ‘가족’이라는 두 틀로 읽어온 관습에서 벗어나자고 했다. 대신 그는 성애와 초현실주의적 시공을 살폈다. 특히 ‘부부’와 ‘투계’를 함께 봤다. 두 그림 모두 수탉과 암탉이 몸을 휘어 부리를 맞댄 장면으로, 각각 입맞춤과 싸움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두 경우 모두 몸과 몸이 부딪히고 얽히며 긴장과 생명력을 만든다는 점이다. 그는 “접촉, 만남, 조응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소 그림도 민족적 울분만으로 보지 않았다. 몸부림치는 소와 발정한 수소의 ‘플레멘 반응(Flehmen response)’까지 짚으며 “분노라기보다 흥분에 가까운 언어”라고 봤다.
두 발표는 다른 길로 이중섭의 그림에 접근했다. 이지호가 선의 뿌리와 미술사적 계보를 추적했다면, 임근준은 그 선과 몸이 화면에서 만들어내는 욕망과 생동을 읽었다. 이번 세미나는 내년 재개관을 앞둔 이중섭미술관에도 하나의 방향을 제시했다. 익숙한 ‘국민 화가’의 신화를 반복하는 데서 벗어나, 이중섭의 조형 언어를 세계 미술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행사엔 변종필 서귀포공립미술관 관장, 송재경 한국미술협회 제주특별자치도 지회장, 김민수 이중섭미술관 운영위원, 김통원 아르부뤼 미술관 관장, 유족 대표로 이중섭 화백의 조카손녀 이지연·지향씨, 이종조카 이태호씨, 안진국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주간, 김미라 다넷뉴미디어연구소장, 박향자 김한미술관장 등 각계 인사와 제주도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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