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베를린 자츠벡셀 무대에 올라 '빛과 실'을 읽다
빛으로 채운 문장, 빛으로 그린 선율
베를린 국제문학축제&베를린 필하모닉의
문학·음악 시리즈 '자츠벡셀'
지난 7일 저녁 한강이 무대 올라
9월 7일 저녁, 베를린 필하모니의 캄머무지크잘은 일찌감치 1190석이 모두 채워졌다. 베를린 국제문학축제(Internationales Literaturfestival Berlin)와 베를린 필하모닉이 새로 만든 문학·음악 시리즈 '자츠벡셀(Satzwechsel)'의 첫 무대, 그 자리에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독일 독자들 앞에 선 한강이 있었다.
'자츠벡셀'이라는 이름 자체가 '문장'과 '악장'을 동시에 뜻하는 독일어 'Satz'에 '전환'을 뜻하는 'Wechsel'을 더한 이중적 조어로, 문학과 음악이 한 무대에서 자리를 바꿔가며 이어진다는 이 시리즈의 발상을 이름에서부터 담고 있다.

음악이 먼저 말을 걸던 밤
평소 짙은 색 옷을 즐겨 입던 한강이 이날은 흰빛 드레스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이 드뷔시의 '신성한 춤과 세속적인 춤(Danse sacrée et danse profane)'으로 저녁의 문을 열자, 한강은 옅은 미소와 함께 이야기를 꺼냈다. 그동안 자신은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오래 써왔지만, 이번만큼은 빛으로 가득 채우고 싶은 책을 쓴 덕분에 이렇게 투명한 선율로 저녁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그가 가리킨 책은 바로 지난달 독일어로 옮겨진 산문집 『빛과 실』이었다. 한강은 이 책의 한 대목을 한국어로 읽어 내려갔고, 독일 배우 마르티나 게덱(Martina Gedeck)이 곧이어 독일어로 그 문장들을 이어받았다. 오랜 친분이 있는 문학 기자 카타리나 보르하르트가 대화를 이끌었는데, 두 사람은 거창한 화두 대신 사소하고 구체적인 것들 사이를 오래 맴돌았다. 커다란 사건을 말하기 전에 작은 것들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그의 글쓰기 방식과 그대로 닮은 대화였다.

역사와 정치를 다루는 작가로 불리는 데 대해 한강은 오히려 되물었다.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정말 완전히 나뉠 수 있는 것이냐고. 겉으로는 사적으로 보이는 『채식주의자』도 실은 깊이 정치적인 소설이며, 반대로 시대의 폭력을 정면으로 포착한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오히려 지극히 개인적인 자리에서 출발했다는 이야기였다. 광주를 다룬 『소년이 온다』를 두고는, 독자들이 느끼는 고통의 근원이 결국 인간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담담히 덧붙였다.
무거운 질문들 사이로 몇 차례 웃음이 터져 나온 것도 이날 저녁의 풍경이었다.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던 순간 아들과 함께 캐모마일 차를 마셨다고 답했더니, 이후 온 사방에서 캐모마일 차 선물이 쏟아져 이제는 10년치 마셔도 될 양이 쌓였다는 일화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던 팬데믹의 시간, 노래 하나를 반복해서 틀어놓고 스스로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가 된 것처럼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는 회고도 있었다. 오랜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한옥에 머물게 됐고, 그 경험이 좋아 이후 33㎡(10평) 남짓한 작은 한옥 집을 마련하며 책의 절반과 가구 대부분을 내려놓아야 했던 사연도 있었다.

거울이 있는 정원
빛이 거의 스미지 않는 그 작은 뜰에 여덟 개의 거울을 세워두고, 해가 움직이는 대로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방향을 고쳐가며 식물을 키운다는 이야기는, 이날 낭독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와 조용히 맞닿아 있었다. 책의 나머지 페이지들을 채우는 것은 시와 경구 사이 어딘가에 놓인, 짧지만 밀도 높은 산문들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동안 늘 곁에 두었던 찻잔은 훗날 스톡홀름의 노벨상박물관에 기증되는데, 그 작은 물건에 얽힌 사연조차 짧지만 마음을 건드리는 한 편의 글로 남아 있다. 스무 해를 함께한 코트가 조금씩 해져가는 모습, 좀처럼 볕이 들지 않는 방에서 지내며 글을 쓰는 일상, 한국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사말의 결까지... 타인의 생을 그토록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생 또한 끊임없이 되비추어 보게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히 증언한다.
그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무는 자리는 역시 정원이다. 서른세 제곱미터의 작은 집과 그보다 더 작은 그늘진 뜰에 단풍나무 한 그루와 수국, 비비추, 그리고 라일락 한 그루를 심어두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일. 병충해가 처음 잎을 갉아 먹었을 때 느꼈다는 작은 당혹과 불안조차 살뜰하게 기록된다.
어느 평자는 이 대목에서 카렐 차페크가 오래전 남긴 정원 예찬의 책을 떠올리며, 이 책 역시 작게나마 한 해 동안의 정원사의 기록이라 불러도 좋겠다고 적기도 했다. 그 작은 집이 실은 그가 태어나 처음 세 해를 보낸 옛집과 이상하게 닮아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대목에 이르면 이 책 전체를 지탱해 온 순환의 감각, 흩어졌던 삶의 조각들이 결국 다시 하나의 원으로 닫힌다는 감각이 비로소 선명해진다.
정원을 향한 시선에서는 그의 고유한 기질이 특히 선명하게 드러난다. 빛이 닿지 않는 뜰에 거울을 세워 태양의 위치를 좇는 일은, 단순한 원예 취미라기보다 그가 평생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인내심을 가지고,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조금씩, 원래라면 닿지 않았을 곳까지 빛을 돌려보내는 일. 그것은 곧 폭력과 상실을 오래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도 삶의 온기를 길어 올리는 그의 문학 자체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무대 위 음악 역시 그 빛의 결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다섯 대의 현악기와 하프가 서로 대화하듯 주고받던 드뷔시의 선율에 이어, 마지막에는 플루트가 더해진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Ma Mère l'Oye)'이 마치 동화 속 요정들이 정원을 거니는 듯한 환상적인 풍경으로 행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고요한 순간 속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무언가를 발견해내는 것. 그것이 한강 문학의 본질이라면, 드뷔시와 라벨의 인상주의 음악은 그 정서를 고스란히 비추는 듯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여덟 살의 시 한 편이 자라난 자리
『빛과 실』은 소설이 아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과 감사의 말, 짧은 산문과 시, 한강 작가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곁들인 정원 일기가 한데 엮인, 176쪽의 얇은 책이다. 이 책을 열고 닫는 것은 그가 여덟 살 때 써 내려간 한 편의 동시다. 이사를 준비하다 신발 상자 속에서 다시 발견한 그 시는, 사랑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무엇이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지를 묻는 짧은 물음이었다.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온 이 우연한 재회가 노벨상 수상 연설의 제목이 되었고, 이제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이름이 되었다.
『빛과 실』이 흥미로운 지점은 어린 시절 광주에서 마주했던 것들, 그로 인해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잃어버렸던 순간을 담담히 되짚는 대목이 있는가 하면, 새로 마련한 집과 뜰, 스무 해를 함께한 낡은 코트, 하루 두 시간의 산책, 글을 쓸 때면 커다랗게 틀어놓는 음악처럼 지극히 사사로운 습관들을 들려주는 대목도 있다. 그 낙차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빛과 실』은 시와 경구 사이 어딘가에 놓인 짧고 압축적인 문장들, 조용하고 연약한 솔직함이 소설 못지않은 독서의 기쁨을 선사한다. 이 책은 한강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이는 독자에게는 다정한 입구가 되어주고, 이미 그의 소설을 읽어온 독자에게는 그 작품들 뒤에 있는 한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는 보완서가 되어 준다. 무엇보다 서른세 제곱미터의 작은 집, 그보다 더 작은 그늘진 뜰 안에서도, 또한 한 편의 소설 안에서도 자신만의 온전한 우주를 빚어낼 수 있는 작가의 저력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결코 가벼운 여담으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책 전체를 가로지르는 것은 결국 하나의 질문이다. 무엇이 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이어주는가.
한강에게 그 답은 언어다. 언어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실이며, 그 실을 빛나게 하는 것이 작가가 품은 질문들이라는 오랜 생각은, 이날 캄머무지크잘을 가득 채운 낭독과 음악의 울림을 그대로 요약하는 말이기도 했다.
여덟 살의 아이가 노트에 적어 내려간 한 줄의 물음이, 사십 년을 돌아 노벨상 수상 연설이 되고, 다시 한 권의 책이 되고, 마침내 베를린의 어느 가을 저녁 인상주의 음악과 나란히 놓이는 순간까지, 그 긴 여정은 결국 '빛과 실'이라는 두 단어로 다시 접힌다.
원래라면 닿지 않았을 곳까지 조금씩 빛을 돌려보내는 일. 어쩌면 그것이 한강에게는 글쓰기이고, 이날 저녁의 무대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그의 문학일 것이다.
베를린=김정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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