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 울리면 꺼라"…생산성에 밀린 안전, 74명 사상 참사 불러

김소연 2026. 9. 1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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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명이 숨지고 60명이 다친 대전 안전공업 화재 참사는 경영책임자의 안전에 대한 무관심이 빚어낸 '인재'라는 게 경찰과 노동 당국의 수사로 확인됐다.

공장 내부에 장기간 쌓인 기름때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고, 불법 증축된 공간으로 불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피해를 키웠다.

경찰은 "기름 때문에 바닥이 미끄러워 낙상 위험까지 있었다"는 직원 진술과 노동조합의 환경 개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 등을 토대로 손주환 안전공업 대표 등 경영책임자들이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보건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안전공업은 허가받지 않고, 내부에 '중이층'이라고 불리는 직원 휴게 공간을 임의로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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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때는 불쏘시개·불법 증축은 연기 통로로…2분 만에 덮친 화염
5년간 화재 48건에도 '차단 매뉴얼'…경찰·노동당국 "전형적 인재"
합동감식 참여한 유관기관 (대전=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23일 오전 7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전 대덕구 안전공업에서 화재 원인 등을 규명하기 위한 합동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2026.3.23 psykims@yna.co.kr

(대전=연합뉴스) 김소연 변선진 기자 = 14명이 숨지고 60명이 다친 대전 안전공업 화재 참사는 경영책임자의 안전에 대한 무관심이 빚어낸 '인재'라는 게 경찰과 노동 당국의 수사로 확인됐다.

공장 내부에 장기간 쌓인 기름때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고, 불법 증축된 공간으로 불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피해를 키웠다.

화재 수신기까지 임의로 끄면서 대피 골든타임 마져 놓친 것으로 드러났다.

직원들은 경찰 조사에서 안전보다 '생산성'을 중시한 데 따라 이런 참사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했다.

천장서 시작한 불이 기름때 타고 확산…"평소 안경에 기름막 낄 정도"

대전 대덕구 문평동 자동차 부품 공장인 안전공업에서 불이 난 것은 지난 3월 20일 오후 1시 17분께.

조사 결과 1층 가공라인 천장 집진 설비 인근에서 갑자기 불이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공장 설비 작동 과정에서 발생한 고온이나 금속 간 마찰·불꽃 등에 의해 불이 시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발화원을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불은 공장 설비와 내부 곳곳에 쌓인 슬러지를 타고 급속도로 확산했다.

자동차 밸브를 만드는 이 공장에서는 윤활유와 가공유 등을 다량 사용하는데, 사측은 건물 내부에 묻은 기름때 관리를 소홀히 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직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안전공업 전 직원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절삭유가 증기 형태로 작업장 전체에 퍼져 있어서 퇴근하고 나면 안경 렌즈에 기름막이 낄 정도였고 절삭유 냄새가 상시 남아 있었다"면서 "환기나 설비 개선이 필요하다고 계속 얘기했지만, 비용 부담 등의 이유로 실제 조치까지 이어지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유류는 금속 가공 공정을 위한 윤활제로, 인화점이 낮아 쉽게 기화되며 스파크와 고온에 노출되면 발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절삭유나 세척유를 사용하는 공장 등에서는 분진과 유증기가 함께 쌓이면 작은 스파크로도 연소가 확산할 수 있어 분진과 유증기 농도 관리가 중요하다.

경찰은 "기름 때문에 바닥이 미끄러워 낙상 위험까지 있었다"는 직원 진술과 노동조합의 환경 개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 등을 토대로 손주환 안전공업 대표 등 경영책임자들이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보건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헌화하는 시민 (대전=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23일 오후 대전시청 1층 로비에 마련된 대덕구 안전공업 화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참배하고 있다. 2026.3.23 psykims@yna.co.kr

'경보 차단'으로 골든타임 놓치고 불법 증축에 피해 커져

불이 난 시각 화재 수신기의 경보는 제대로 울린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직원들은 "경보가 3∼10여 초 뒤에 꺼졌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화재 수신기를 끈 것은 안전공업 관계자였다.

화재 수신기 옆에는 '경보 차단 순서'를 적은 한 장짜리 종이가 코팅돼 붙어 있었다.

이 회사는 2017∼2018년부터 "경보가 울리면 우선 끄고 현장을 확인하라"는 매뉴얼을 만들어 임직원들에게 교육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보가 울리고 모두 대피할 경우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까 봐 이런 지침을 내린 것 같다는 게 직원들의 진술이다.

"사업주가 경보가 울리는 데 노이로제가 있는 것 같았다"는 진술도 있었다.

실제 안전공업에서는 크고 작은 화재가 잇달았다.

최근 5년 동안 경찰이 확인한 화재는 총 48건으로, 자체 진화하고 내부 보고로만 끝낸 경우도 많다.

화재 등으로 보안업체가 출동한 내역도 135차례에 달한다.

화재경보기가 금세 꺼지자, 직원들은 평소처럼 화재 수신기가 오작동하거나 큰 화재가 아닌 것으로 판단해 즉각 대피하지 못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불법 증축 공간도 피해를 키웠다.

안전공업은 허가받지 않고, 내부에 '중이층'이라고 불리는 직원 휴게 공간을 임의로 마련했다.

화염을 막아줄 방화구획은 통로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뒤로 밀어 훼손됐고, 대피를 위한 비상 방송시설이나 완강기 등 필수 피난·경보 시설은 없었다.

1층에서 발생한 화염이 점심시간을 맞아 이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던 직원들을 덮치는 데는 불과 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불법 증축 공사를 한 인테리어업자는 '무면허'였다.

경찰은 무면허 인테리어업자도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안전공업 임원들은 "허가받아야 하는 사안인지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사망자 14명 가운데 무려 9명이 이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대전 자동차부품 제조공장 화재…국가소방동원령 발령 (대전=연합뉴스) 김소연 기자 = 20일 오후 1시 17분께 대전 대덕구 문평동 한 자동차부품 제조 공장에서 불이 났다. 소방 당국은 신고 접수 9분 만에 대응 1단계, 14분 만에 대응 2단계를 발령한 데 이어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오후 1시 53분을 기해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했다. 오후 2시 30분 기준 약 50명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2026.3.20 soyun@yna.co.kr

노동 당국 "명백한 인재"…직원들 "안전보다 생산성 우선"

노동 당국은 이번 참사가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업장은 윤활유·절삭유 등을 사업장 전반에 걸쳐 다량으로 취급해 언제든 대형 폭발과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 사업장이었다.

실제 사업장에서 크고 작은 화재가 반복했던 만큼 제대로 된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언제든 걷잡을 수 없는 대형 참사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경영진이 명백하게 예견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사고는 '전형적인 인재'라고 노동 당국은 규정했다.

특히 안전공업은 상시 근로자 350여명에 달하는 중견 기업으로, 화재 예방과 안전·보건 조치를 이행할 인적·재정적 여력이 충분했다고 노동 당국은 판단했다.

그러나 경영책임자가 안전에 대해 무관심하고, 관련 예산을 편성하는 데 소홀하면서 안전 보건 체계가 거의 구축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직원들은 경영진이 안전보다도 '생산성'을 우선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실질적인 피난·소방 훈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되레 손주환 대표와 회사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화재 현장에서 하드디스크를 반출해 안전 관련 서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손 대표 등 관계자 13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입건해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노동청도 손 대표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해 검찰에 넘기기로 했다.

노동청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안전조치 여력을 갖춘 중견기업조차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에 소홀할 경우 얼마나 중대한 피해가 발생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위험 요인을 방치하고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저버린 기업과 경영책임자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끝까지 수사해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so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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