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형 원전’ 놓고 막판 이견… 대미투자 MOU 연기

이영빈 기자 2026. 9. 1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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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자국 내 건설에 난색 표명
오늘 예정된 국회 보고도 미뤄
한국형 원전(APR1400)으로 발전 용량은 1400MW급인 새울 3호기. 사진은 새울 3, 4호기 원전 건설 전경. /원자력안전위원회

정부가 17일로 예정됐던 2000억달러 대미 투자 국회 보고를 연기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18일 예정됐던 한미 간 대미 투자 1호 사업 양해각서(MOU) 서명·발표도 미뤄질 전망이다.

연기의 핵심 원인은 원전 분야 이견이다. 한미는 대미 투자의 일환으로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를 짓는 방안을 협의해 왔다. 한국은 8기 중 2기는 한국형 원전으로 짓기를 원하지만, 미국은 한국형 원전의 자국 내 건설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원전 원천기술 기업 웨스팅하우스에 대한 지분 투자 및 의결권 참여도 추진하고 있지만, 미국은 의결권은 곤란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텍사스 가스복합화력발전소 수요처 보증 문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편입 여부 등 다른 쟁점까지 얽히면서 협상이 진통을 겪고 있다.

16일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 17일 예정됐던 보고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산중위 관계자는 “22일로 전체회의를 옮기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했다. 관련 법에 따라 국회 보고를 마쳐야 미국과 후속 절차를 진행할 수 있어, 국회 보고가 밀리면 MOU 일정도 함께 늦춰지게 된다.

◇韓 “전력 살 美기업 미리 정해달라” 가스화력 발전소 건설도 막판 쟁점

한미는 미국에 건설할 대형 원전 8기를 웨스팅하우스 모델인 AP1000 6기와 한국이 개발한 APR1400 2기로 구성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 그러나 미 정부와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인 APR1400의 미국 내 건설에 난색을 보이며 착공 시점을 뒤로 미루려 하고 있다. APR1400은 미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설계인증까지 통과한 모델이다. 미국으로선 시공 역량이 뒷받침되는 한국형 원자로가 안방에 진출할 경우, 자국 주력 모델인 AP1000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을 경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웨스팅하우스가 반대하면 한국형 원전을 미국에 지을 길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한전·한수원은 APR1400에 쓰인 기술의 권리를 놓고 웨스팅하우스와 분쟁을 벌인 끝에, 지난해 북미 등 일부 시장에서는 독자적으로 신규 원전 사업을 추진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미국에서 APR1400을 지으려면 웨스팅하우스 동의가 필요한 구조다. 웨스팅하우스는 캐나다 자본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지만, 핵심 원천기술이 미 원자력법의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어 지분 매각이나 해외 수출 등 주요 의사 결정권은 사실상 미 정부가 쥐고 있다.

◇원전 8기 중 한국형 2기가 걸림돌

한국형 원전 문제는 웨스팅하우스에 대한 한국의 지분 투자 및 경영 참여 문제와도 연계돼 있다. 한국은 대미 투자에 상응하는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웨스팅하우스 지분 20% 안팎과 이사회 참여 등 실질적인 의결권을 요구해 왔다. 과거 체코 원전 수주 당시 맺은 불리한 계약 조건을 개선하고, 향후 해외 원전 시장 진출에서 대등한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한 지렛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의결권이 없는 5~10% 수준의 소수 지분 투자안을 고수하며 맞서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형 원전의 미국 진출을 늘리는 대신 의결권을 일부 양보하거나, 반대로 경영 참여 폭을 넓히는 대신 건설 규모를 양보하는 식의 주고받기식 절충안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원전 외에 다른 에너지 인프라 사업의 사업성 및 손익 배분 구조도 쟁점이다. 200억달러가 넘게 투입되는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는 데이터센터 등에 전력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는 구조다. 그러나 아직 수요처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미국 빅테크 기업 등과의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을 미국 정부가 주선·보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확정된 수요처 없이 사업 착수를 서두르고 있어 한국의 투자 리스크 우려가 커졌다.

이익과 손실을 나누는 방식도 쟁점이다. 당초엔 여러 사업의 손익을 한데 묶어 관리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미국은 사업별로 따로 계산하자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이익이 난 사업의 돈을 손실이 난 사업에 돌려 쓰기 어려워진다.

◇이익·손실 배분도 쟁점

반면 미국에는 개별 정산이 유리하다. 원리금 회수가 끝나면 순이익의 90%를 미국이 챙기는 구조인 탓이다. 사업별로 따로 정산하면 알짜 사업의 원금 회수가 단기간에 끝나고, 그 결과 미국이 수익의 90%를 챙겨가는 시점도 그만큼 앞당겨진다. 한국으로선 잘되는 사업의 과실은 일찍 미국에 넘겨주고, 안 되는 사업의 적자는 그대로 떠안는 불리한 구조가 되는 셈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강력히 요구해 온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여부도 고심거리다. 초기 파이프라인 건설 등 막대한 비용(수백억 달러) 대비 장기 수익성이 불투명해 우리 정부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원전 8기 건설비(기당 약 150억달러, 총 1200억달러 안팎)에 가스복합화력·알래스카 LNG까지 미국 요구를 다 수용할 경우 총 투자 소요액이 당초 한미가 정한 2000억달러를 훌쩍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원전 노형 배분, 지분 의결권, 인프라 투자 리스크 등 여러 조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연계돼 있어 막판까지 치열한 손익 계산과 조율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협상 결렬이나 파행이라기보다는 상호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세부 계약 조건을 좁혀가는 과정”이라며 “실익 확보를 위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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