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좋아도 취업되는 외국어로"…동남아 채용 '한국어 1위' 깨졌다

정지용 2026. 9. 17.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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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확실히 중국어가 대세죠."

13일 찾은 베트남 하노이대(HANU) 한어수평고시(HSK·중국어능력시험) 고사장.

베트남 채용플랫폼 잡오케이오(JobOKO)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어 구사자 채용 공고는 1만2,997건으로 2024년 대비 49% 폭증했다.

각 대학 공고에 따르면 하노이국립대 외국어대(ULIS)의 올해 외국어 계열 합격선은 영어가 25.92점(30점 만점)으로 가장 높았고 중국어 25.65점, 한국어 24.3점, 일본어 23점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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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작년 HSK 응시 14.6만 명 ‘세계 1위’
중국어 대입 커트라인도 한국어 제쳐
생산직 블랙홀 이어 사무직까지 경쟁
13일 베트남 하노이대 중국어능력시험(HSK) 시험장에서 응시자들이 입실하고 있다. 하노이=정지용 기자

"이제 확실히 중국어가 대세죠."

13일 찾은 베트남 하노이대(HANU) 한어수평고시(HSK·중국어능력시험) 고사장. 최고 등급인 6급 시험을 치르고 나온 직장인 부 티 타오(23)는 "중국계 철도 회사에서 일하다 아예 퇴사하고 중국어 강사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라며 "중국 기업들의 진출이 빨라지면서 중국어 시장이 크게 열리고 있다"고 했다.

하노이대에서 중국어 말하기(HSKK) 시험을 마치고 나온 응시생들. 대부분 젊은 학생, 직장인이다. 하노이=정지용 기자

동남아 중국어 학습 열풍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아세안) 국가에 ‘중국어 열풍’이 불고 있다. 한류를 타고 한국어 학습 붐이 일었던 과거와 달리 중국어가 핵심 ‘취업용 외국어’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무역 제재를 피해 동남아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면서 중국어 능통자를 대거 채용한 영향이다.

이날 고사장에는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젊은 응시생이 가득했다. 고등학교 3학년 지아 한(18)은 “중국 유학과 중국계 기업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중국어에 매달린다”고 했다. 대학생 응우옌 투이링(22)은 “한국 드라마와 K팝을 가장 좋아한다”며 “그래도 미래와 취업을 생각해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동남아 중국어 열기는 수치로 입증된다. 중국어능력시험주관기관(CTI)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 HSK 응시자는 14만6,000명으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어 태국 13만 명, 한국 6만 명, 일본·인도네시아 각각 3만 명으로 뒤를 이었다.

지난해 주요 언어 채용 공고 현황. 베트남 채용플랫폼 JobOKO

4급만 따도 취업 100%, 고연봉 보장

채용 시장 변화는 지각변동 수준이다. 베트남 채용플랫폼 잡오케이오(JobOKO)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어 구사자 채용 공고는 1만2,997건으로 2024년 대비 49% 폭증했다. 일본어 구사자 채용 공고는 5,422건, 한국어는 2,388건에 그쳤다. 1~3년 차 중국어 구사자는 동일 직무 평균보다 50%가량 고연봉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입 합격선도 뒤집혔다. 각 대학 공고에 따르면 하노이국립대 외국어대(ULIS)의 올해 외국어 계열 합격선은 영어가 25.92점(30점 만점)으로 가장 높았고 중국어 25.65점, 한국어 24.3점, 일본어 23점 순이었다. 하노이대 역시 영어 34.45점(40점 만점)에 이어 중국어 34.20점, 한국어 32.14점으로 집계됐다. 몇 년 전까지 입결 1, 2위를 다투던 한국어가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접경지 풍경도 바뀌고 있다. 현지 매체 단트리는 3월 “박닌 등 산업단지에서는 직원들이 퇴근 후 중국어 학원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다”며 “HSK 4급만 갖춰도 취업률은 100%”라고 보도했다. 중국어 학원 강사인 호앙 퀴응아(24)는 본보에 “불과 2~3년 전에 비해 수강생이 급격히 늘었다”며 “직장인의 경우 대우를 더 잘 받기 위해 공부하다 보니 학습 의지가 강하다”고 했다.

하노이대에 자리 잡은 공자학당의 모습. 공자학당은 중국 정부가 중국어를 보급하기 위해 세운 기관이다. 하노이=정지용 기자

"생산직 이어 사무직까지... 한국 기업 비상"

중국도 중국어 확산을 위해 거침없이 전진 중이다. 중국은 동남아 각국에 중국어 보급 기관인 ‘공자학원’을 설치해 언어 보급, 교사 양성, HSK 주관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 태국, 라오스, 인도네시아 등 일대일로 참여국을 중심으로 직업훈련 기관인 ‘루반공방’을 세워 중국산 장비 활용법과 언어를 무료 패키지로 제공한다.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 카네기센터는 "중국 루반공방이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했다"며 "중국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위협'에서 '파트너'로 전환하기 위해 루반공방을 활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한 대기업 현지 법인장은 “한국 기업 입사 지원서에 특기로 중국어를 써낼 정도로 중국어 학습이 유행이 됐다”며 “중국계 기업들이 한국 기업보다 월급을 조금 올리는 식으로 숙련 노동자를 흡수하더니, 이제는 생산직을 넘어 사무직 쟁탈전까지 벌어지게 됐다”고 토로했다.

하노이= 정지용 특파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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