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이 AI 두뇌 훔쳤다” 美中 AI 패권전쟁 뇌관으로 떠오른 ‘증류’
딥시크·문샷 등 추론·코딩 훈련시켜
美재무 “中기업 증류 확인 땐 제재”
미·중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의 핵심 갈등으로 ‘증류(Distillation)’가 떠오르고 있다. 고성능 AI의 답변을 이용해 다른 AI를 훈련시키는 방식이다. 미국 정부는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첨단 AI 모델에 우회 접속해 답변과 사고 과정을 대량 수집하고, 이를 자사 모델 학습에 활용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 정부는 “증류는 세계 AI 기업들이 쓰는 일반적이고 중립적인 기술”이라며 “미국이 아무 문제없는 기술을 정치화해 AI를 독점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첨단 반도체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이제 AI 모델의 지식을 둘러싼 갈등으로 확전하는 양상이다.

◇“AI가 생각하는 법 훔쳤다”
증류는 성능이 뛰어난 대형 AI를 ‘교사’, 작고 값싼 AI를 ‘학생’으로 삼는 학습법이다. 교사가 푼 문제의 답과 풀이 과정을 교재로 만들어 학생을 가르치는 식이다. 혼합물을 증류해 불순물은 걸러내고 필요한 성분만 얻듯, 크고 복잡한 AI에서 핵심 능력만 뽑아 작고 값싼 AI에 옮기는 것이다. 증류 자체는 정상적인 AI 개발 기술이다. 오픈AI도 2024년 강력한 GPT-4o의 답변으로 저렴한 GPT-4o 미니를 훈련하는 증류 도구를 개발자들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미국이 문제 삼는 것은 중국 기업들의 접근 방식과 수집 규모다. 오픈AI와 앤스로픽은 중국 본토에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또 약관을 통해 AI의 답변을 경쟁 모델 개발에 사용하거나, 자동화로 대량 수집하는 행위도 금지한다. 중국 AI 기업들은 그러나 해외 클라우드 등 ‘환승소’를 통해 미국 AI에 우회 접속했다. 여러 가짜 계정으로 24시간 내내 질문을 보내 답변을 자동으로 수집했고, 이를 자사 모델 개발에 활용했다. 정상적으로 수업을 받은 것이 아닌, 도강(盜講)이자 답안지 대량 유출이라는 것이다.
중국 기업들이 미국 AI에서 가져가려 한 능력도 다양했다. 미 정부에 따르면, 딥시크는 미국 모델에 사고 과정을 단계별로 출력하도록 지시해 추론·법률·글쓰기 능력을 R1과 V3에 학습시켰다. 문샷AI는 오픈AI의 GPT와 앤스로픽의 클로드의 답변을 수학·코딩 학습에 활용했고, 알리바바는 큐원의 코딩·고객 상담 능력을 강화했다. 미국 정부는 “(불법 증류는)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닌 중국 AI 개발 전략의 핵심 요소”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민감 정보가 미국 기업에 넘어가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앤스로픽은 “문샷AI와 딥시크가 이용자의 질문 가운데 일부를 몰래 클로드에 보내 답을 받아온 뒤, 이를 자사 AI가 만든 답처럼 고객에게 보여줬다”고 밝혔다. 클로드에게 대리시험을 치게 만든 것이다. 문제는 고객들이 자신의 질문이 미국 AI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중국 인민해방군 관계자가 올린 수백 대의 CCTV 자료와 국유 기업의 내부 정보들이 앤스로픽에 전달됐다.
◇반도체에서 AI 모델로 확전
미국은 2022년부터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그래픽 처리 장치)와 반도체 제조 장비의 대중 수출을 단계적으로 제한하며 중국의 AI 개발에 필요한 연산 자원 확보를 제한해왔다. 그러나 증류는 이미 완성된 모델의 답변을 학습 자료로 활용해 개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이 반도체 수출 통제로 높아진 개발 장벽을 미국 AI의 지식으로 낮추려 한다는 것이 미국 측의 시각이다.
미국 정부는 이에 대응해 제재 범위를 넓히겠다는 입장이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 7월 “중국 기업들이 산업 전반에 해당하는 규모로 은밀하게 증류 공격을 감행하면 제재와 수출 통제 명단 등재를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첨단 반도체의 이동을 막는 데서 나아가 AI 모델의 지식이 경쟁국으로 넘어가는 경로까지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증류를 막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GPU는 물리적 제품이어서 생산·유통 경로에서 통제할 수 있지만, AI의 답변은 온라인상에서 원천 차단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AI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첨단 반도체를 막아 중국 AI의 ‘몸’을 묶자, 중국 기업들이 이제는 미국 AI의 ‘두뇌’를 직접 가져가려는 것”이라며 “계정을 차단해도 새로운 계정과 우회 경로를 만들 수 있어 미국과 중국 기업 간 쫓고 쫓기는 싸움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증류(Distillation)
대형 ‘교사 AI(인공지능)’의 답변과 풀이 과정을 작은 ‘학생 AI’에 대량 학습시켜 성능을 끌어올리는 기술. 주로 경량 모델 개발에 쓰인다. 최근 중국 기업들이 접속 제한을 우회해 미국 첨단 AI를 증류하고, 자사 AI 성능을 끌어올렸다는 의혹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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