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을 만나다] 10. 민종식 자동차 정비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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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교복 입고 학교에 갈 때 그는 손에 기름을 묻혔다. 먹고살 기술이라도 배우려 시작한 자동차 정비는 이제 그의 삶이 됐다.
한때 고등학교 졸업장조차 얻지 못했던 소년은 자동차학과 겸임교수와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가 돼 자신이 평생 익힌 기술을 후배들에게 가르치는 자리에 섰다.
민 명장은 "자동차를 제대로 다루려면 전기·전자공학부터 기계공학, 재료역학까지 두루 공부해야 한다"며 "예전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그저 '기술을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어서는 버텨내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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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공부 병행하며 교수 자리 올라
자동차 기술 변화 따라 평생 공부 매진
“기술로 세상 이롭게” 은사 가르침
후배들에 45년 현장 경험 전수
연필 대신 공구 쥐던 열일곱, 멈췄던 차도 움직이는 베테랑 되다

친구들이 교복 입고 학교에 갈 때 그는 손에 기름을 묻혔다. 먹고살 기술이라도 배우려 시작한 자동차 정비는 이제 그의 삶이 됐다. 고장 난 차를 붙들고 원인을 찾지 못해 몇 날을 헤매고, 답답한 마음에 차를 껴안고 울기도 했다. 그래도 멈춰 있던 자동차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시동을 거는 순간이면 모든 고생을 잊었다. 그렇게 자동차와 씨름한 세월이 45년. 뒤늦게 고교 졸업장을 따고 대학과 대학원을 거쳐 후학을 가르치는 자리까지 올랐다. 열일곱 무렵 자동차를 만난 소년은 어느덧 강원도 명장이 됐다. 민종식(62) 자동차 정비 명장을 5일 동해에서 만났다.
■교복 대신 손에 묻힌 기름
자동차 정비와의 만남은 우연에 가까웠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넉넉지 못한 집안의 5남매 맏이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많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친구들이 한 반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평생 기술을 배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던 아버지는 장남에게 기술을 권했다. 기술 하나라도 제대로 배워두면 먹고사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강릉 옥계에 살던 그는 그렇게 아버지의 권유를 따라 춘천에 있는 강원도 농촌직업훈련소에 들어갔다.
처음 배운 것은 농기계 기술이었다. 하지만 6개월쯤 지나자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민종식 명장은 “아버지는 본인이 기술이 없어 고생하셨으니 기술을 배우라고 하셨지만, 친구들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데 나는 손에 기름을 묻히고 있어야 하니 학교에 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다 동해 망상에 기술을 배우면서 고등학교 과정도 이수할 수 있는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학비도 저렴했다. 그는 자동차학과에 들어갔다.
자동차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3년을 공부한 뒤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맞았다. 교육당국의 인가를 받지 못한 곳이어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없었다. 공부를 하고 싶어 찾아간 학교에서 3년을 보냈지만 정작 원했던 졸업장은 손에 쥐지 못했다.
그는 일단 군대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자동차 정비 기술병으로 입대해 3년간 복무한 뒤 대기업 서비스센터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자동차 정비사의 길로 들어섰다.
서비스센터에서 기술을 익힌 뒤 개인 정비업체를 운영했지만 배움에 대한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다시 입학해 그토록 원했던 고교 졸업장을 손에 넣었다. 이후 삼척산업대학교(현 강원대 삼척캠퍼스) 자동차학과에 진학했다.

■기술로 세상을 이롭게 하라
45년을 현장에서 뛴 베테랑이지만 그에게도 자동차 정비는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민 명장은 자동차와 함께한 지난 세월을 ‘애증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좋아서 계속했고 수없이 보람을 느꼈지만 자동차 때문에 애가 닳은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아무리 들여다봐도 고장의 원인을 찾지 못할 때가 그랬다. 정비사에게 차가 들어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방법을 찾지 못하면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은 답답한 마음에 자동차를 껴안고 울기도 했다.
자동차 정비는 손기술은 기본에 어떤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전 과정을 꿰고 있어야 가능하다. 기계적인 판단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이 개입해 배선이 문제인지 센서가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찾아야 한다. 자동차와 민종식 명장 둘이서 오롯이 버텨내야 하는 순간이다.
민종식 명장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강조했다. 경험 하나하나가 곧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며 “실수도, 잘못도 하나의 자산이 된다. 안 해보면 이게 맞는지 틀린지 모르지만 해본 사람은 무엇이 답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어려울 때도 적지 않았지만 자동차 곁을 떠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움직이지 않던 차가 수리를 마친 뒤 다시 힘차게 시동을 걸고 도로로 나가는 순간의 희열 때문이다. 민 명장은 “들어올 때는 죽었던 차가 생명을 불어넣은 것처럼 다시 움직이고, 그 모습을 본 고객이 만족해 기분 좋게 운행할 때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는 말도 있다. ‘기술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은사의 가르침이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소년은 평생 공부했고, 이제는 자신이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있다. 민 명장은 “내가 배운 기술로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게 지금도 신기하다”고 했다.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먹고살기 위해 기술을 배워야 했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자동차 정비는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일이 됐다. 민종식 명장이 반세기 가까이 자동차 곁에서 체감한 가장 큰 변화다.
자동차는 시대의 첨단 기술이 집약된 ‘기술의 축소판’이다. 가솔린과 디젤, LPG 차량에서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수소차까지 동력원이 다양해졌고 그에 따라 정비 방식도 달라졌다. 민 명장의 표현대로라면 자동차 기술은 ‘1년, 1년이 다르게’ 변한다.
그는 “새로운 차가 출시될 때마다 기술이 업그레이드되니 그 기술을 파악해야 하고 설계자의 의도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며 “어떤 시스템이 필요하고 무엇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아예 손을 댈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못 배워서, 가난해서’ 기술을 택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10대 시절만 하더라도 아버지가 ‘기술 하나만 배워두면 먹고살 수 있다’고 권했지만 그가 후배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정반대에 가깝다. 기술자가 되려면 먼저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 명장은 “자동차를 제대로 다루려면 전기·전자공학부터 기계공학, 재료역학까지 두루 공부해야 한다”며 “예전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그저 ‘기술을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어서는 버텨내기 어렵다”고 했다.
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이제는 버튼을 누르는 것을 넘어 사람의 음성을 알아듣고 움직이는 자동차까지 등장하고 있다. 평생 자동차를 공부해온 명장에게도 새로운 자동차는 여전히 낯설고 신기하다.
민 명장은 한참 자동차의 미래를 이야기하다 웃으며 말했다. “음성으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나온다는데, 제 사투리도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45년, 후회 없이 일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자동차 정비를 시작한 지 45년. 민 명장은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현장을 떠날 생각은 없다. 일흔까지는 자동차 곁을 지킬 생각이다. 이제 자신이 자동차를 한 대 더 고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생겼다. 몸으로 익힌 경험과 기술을 후배들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숙련된 기술자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젊은 정비사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고 그는 믿는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답은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는 자산이 됐다.
2만여 대의 자동차를 고친 그에게 어떤 정비사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했고 후회 없이 노력한 사람. 그렇게 일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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