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좀 천천히 갑시다’ 갑자기 왜?…상장 앞둔 그들의 속사정 [투자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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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개발 속도를 늦추자는 '속도조절론'이 투자심리를 흔들고 있다.
올여름부터 AI가 차세대 AI 개발에 직접 기여하는 재귀적 자기개선(RSI) 사이클이 업계 전반에서 나타나면서 모델 발전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AI가 다음 세대 AI 개발을 직접 돕기 시작하면 인간의 검증·통제 속도를 넘어 모델 성능이 가속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는 우려다.
AI 투자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를 누려온 하드웨어 기업 입장에서 속도조절론은 달갑지만은 않은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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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게티이미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6/ned/20260916214217418qdqo.jpg)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인공지능(AI) 개발 속도를 늦추자는 ‘속도조절론’이 투자심리를 흔들고 있다. 명분은 ‘보안’이다. 하지만 증권가의 시선은 기업공개(IPO)를 앞둔 프런티어 AI 기업들의 ‘돈 계산’으로 향한다. 천문학적인 학습비를 계속 쏟아부을 경우 수익성과 기업가치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개발 속도를 조절하려는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속도조절론에 불을 댕긴 건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프런티어 AI의 발전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추자는 ‘프런티어 속도 조절(Pacing the Frontier)’을 제안했다. 경쟁자인 샘 올트먼 오픈AI CEO를 비롯해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 일론 머스크 xAI CEO도 잇따라 지지를 표했다.
아모데이 CEO가 내세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올여름부터 AI가 차세대 AI 개발에 직접 기여하는 재귀적 자기개선(RSI) 사이클이 업계 전반에서 나타나면서 모델 발전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AI가 다음 세대 AI 개발을 직접 돕기 시작하면 인간의 검증·통제 속도를 넘어 모델 성능이 가속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는 우려다.
여기에 오픈AI 실험 모델의 허깅페이스(Hugging Face) 공격 사건에서는 에이전트 스웜(Agent Swarm)이 지시받지 않은 사이버 공격과 평가 시스템 해킹을 시도한 사실까지 확인됐다.
이에 아모데이 CEO는 3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외부 평가기관의 상시 접근을 허용하고 미국 등 민주주의 국가의 프런티어 기업들이 공통 안전 기준을 마련한 뒤, 궁극적으로 중국까지 포함한 국제 공조로 넓히자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인류의 안전을 위한 제안처럼 보이지만, 증권가의 시선은 그보다 현실적인 이해관계로 향한다.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이 같은 주장이 나온 시점이다.
그 배경을 이해하려면 프런티어 AI 기업의 수익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은 별도의 현금창출원이 있는 빅테크와 달리 모델 성능과 판매가 사업의 핵심인 순수 AI 기업(Pure Player)이다.
이들에게 그래픽처리장치(GPU)는 미래 모델을 개발하는 설비인 동시에 당장 매출을 만드는 자산이다. 차세대 모델 학습에 GPU를 투입하면 그 기간에는 해당 자원을 고객 대상 추론 서비스에 활용할 수 없다. 학습을 늘릴수록 미래 모델의 성능은 높아질 수 있지만, 당장 벌어들이는 매출에는 기회비용이 생기는 구조다.
메리츠증권은 오픈AI의 GPT-6 아스트라(Astra)가 블랙웰(Blackwell)급 GPU 10만개 이상으로 학습됐다는 점을 토대로 핵심 사전학습 기간을 10주로 가정할 경우 기회비용이 12억1000만달러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연율로 환산하면 약 63억달러로, 오픈AI 연간반복매출(ARR) 추정치 520억달러의 약 12%다. 개발 경쟁의 속도가 늦춰질 경우 학습에 투입됐던 일부 GPU를 추론 서비스로 돌려 매출화할 여지가 그만큼 생긴다는 의미다.
여기에 IPO 일정까지 겹치면 속도 조절의 경제적 유인은 더욱 커진다. 앤트로픽은 10월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조만간 증권신고서(S-1)를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미애널리시스는 앤트로픽의 3분기 매출액을 167억달러, 영업이익을 10억달러 이상으로 전망했다. 반면 메리츠증권은 일각에서 3분기 적자 전환 가능성도 제기되며, 주요 원인으로 대규모 AI 학습비가 지목되고 있다고 전했다. 상장을 앞두고 수익성을 입증해야 하는 시점에 학습비 부담이 커지는 것은 기업가치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오픈AI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상장 계획은 사실상 접었지만 내년 이후 IPO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속도조절론이 불거지기 전인 지난 6월, 오픈AI가 기업가치가 기대치인 1조달러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상장 연기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높은 몸값을 인정받으려면 성장뿐 아니라 수익성을 보여줘야 할 필요성도 커진 셈이다.
이 때문에 학습에 쓰는 컴퓨팅 자원의 일부를 추론으로 돌리는 것은 프런티어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는 수익성 개선 카드가 된다. 추론에 투입하는 GPU가 늘면 매출화할 수 있는 컴퓨팅 자원도 늘어난다. 모델 교체 주기가 길어지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기존 모델을 더 오래 판매하면서 투자비를 회수할 시간도 벌 수 있다.
다만 한 기업만 속도를 늦추기는 어렵다. 앤트로픽이 학습을 줄이는 사이 오픈AI나 구글이 차세대 모델 개발을 밀어붙이면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요 프런티어 기업들이 비슷한 수준으로 개발 속도를 낮춘다면 상대적인 경쟁 구도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학습에 투입했던 자원의 일부를 추론으로 돌릴 수 있다. 향후 IPO를 의식해야 하는 오픈AI도 수익성 측면에서는 비슷한 유인을 갖는다. 경쟁사들이 함께 움직인다는 신뢰가 형성된다면 공동 감속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다시 벌어지는 듯한 흐름도 속도조절론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7~8월만 해도 중국 AI 모델의 빠른 추격으로 미국 프런티어 기업의 입지가 위태롭다는 우려가 컸지만 최근에는 미국 모델이 다시 우위를 보이는 지표들이 나타나고 있다.
아티피셜애널리시스 지능지수(AAII) 대시보드 최상단을 미국 모델이 다시 차지하기 시작했다. 오픈AI의 저비용 경량 모델 GPT-5.6 루나(Luna)는 작업당 비용이 0.2달러로 딥시크 V4.1 플래시(0.3달러)보다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앤트로픽은 9월 보고서에서 문샷(Moonshot)의 키미(Kimi)와 딥시크(DeepSeek)가 일부 실제 사용자 요청을 클로드(Claude)로 넘긴 뒤 받은 답변을 다시 사용자에게 보여준 정황도 공개했다. 문샷의 경우 10일간 30만건에 달했다.
중국 모델의 성능 추격이 상당 부분 이 같은 재호스팅(Rehosting)에 기댄 것이라면 실제 미·중 모델 격차는 벤치마크 수치보다 클 수 있다. 미국 프런티어 기업들이 개발 속도를 일부 조절할 여지도 그만큼 커진다는 게 메리츠증권의 해석이다.
속도조절론을 둘러싼 찬반 구도 역시 기업별 이해관계에 따라 엇갈린다. 공교롭게도 찬성하는 쪽은 대부분 AI 모델 개발사다.
AI 투자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를 누려온 하드웨어 기업 입장에서 속도조절론은 달갑지만은 않은 주장이다. 모델 개발 경쟁이 둔화될 경우 그동안 가파르게 늘어온 학습용 GPU와 데이터센터 투자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수요 감소 여부와 별개로, 적어도 AI 인프라 투자가 무한히 확대될 것이라는 투자 내러티브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1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일즈포스 연례행사 ‘드림포스’ 무대에 올라 “속도와 안전은 서로 상충되는 선택지가 아니며 두 가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공개 반박했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보안은 명분이고, AI 성능에 편중된 기업가치 평가 잣대를 희석하고 학습 비용을 줄여 번 시간 안에 IPO 전후 수익 구간을 달성하려는 의지로 해석된다”며 “‘보안’이라는 비용 허들과 해외 AI 인프라 유출 통제는 후발주자의 추격을 늦추는 듀오폴리 강화 장치”라고 말했다.
김중한 삼성증권 연구원은 “프런티어 랩들이 표면적으로는 속도조절론에 동의하지만 현실화된 위협을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하게 가져가려 한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인 가정”이라며 “AI 테마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으나 펀더멘털이 아닌 단기 내러티브의 변화”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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