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 넘자 세계 곳곳서 시위···‘가격 인상 대 보조금’ 딜레마 빠진 각국 정부

미국·이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세계 곳곳에서 고유가에 항의하는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각국 정부가 연료 가격을 올리자 생활비 부담이 커진 시민들의 불만이 거리로 터져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와 과테말라에서부터 시리아까지 세계 곳곳에서 고유가에 반발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유가는 지난 9일 배럴당 100달러를 다시 돌파했다.
시리아에서는 지난 13~14일 정부의 연료 가격 인상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시리아 정부가 디젤을 비롯한 석유제품 가격을 최대 40%까지 한시적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힌 지 불과 몇 시간 만이었다. 시민들은 도로를 막고 타이어에 불을 질렀다. CNN은 이번 시위가 2024년 12월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 정권 붕괴 이후 시리아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라고 전했다.
과테말라에서도 지난주 운수 노동자와 원주민 활동가들이 가격 상한제나 보조금 같은 임시방편을 넘어선 근본적인 유가 대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수도 과테말라시티 남쪽 비야누에바에서는 시위대가 차량에 불을 지르며 항의하기도 했다. 한 시위 참가자는 고유가에 맞선 이번 투쟁을 “정부와 부유층, 그리고 나머지 모든 사람 사이의 경쟁”으로 규정했다고 NYT는 전했다.
포르투갈에서는 지난 7일 경유 가격이 갤런당 9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자 전국 곳곳에서 차량 경적 시위가 벌어졌다. 수도 리스본 인근 도로에도 차량 60~100대가 모여 포르투갈 국기를 내걸고 경적을 울리며 유가 상승에 항의했다. 이들은 “치솟는 연료 가격은 이제 그만”, “가족들이 더는 견딜 수 없다” 등의 손팻말을 들었다. 시위대는 시네스의 정유시설로 이어지는 도로를 차단하기도 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에서는 연료난이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더 크게 압박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취사용 가스 부족과 정전이 잇따르는 가운데 정부가 도입한 휘발유 배급제가 혼란을 키우고 있다. 정부가 2부제(홀짝제)에 따라 휘발유를 배급하기로 하자 술라웨시섬의 택시 운전기사들은 전날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같은 날 자바섬 욕야카르타에서는 연료 가격 급등에 항의하는 학생 주도 시위도 열렸다.
필리핀에서도 버스와 차량호출 서비스 운전기사들이 고유가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필리핀 버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버스 기사들이 하루 15~18시간씩 일해도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NYT에 전했다. 정부가 대중교통 기사들에게 약 80달러의 일회성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현장에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커진 연료비 부담에 어민들은 출항을 포기했다. 페르난도 히캅 필리핀 주요 어업협회 전국 회장은 “많은 사람이 출항하고 싶어도 기름을 살 돈이 없다”며 “유가 상승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NYT에 말했다.
고유가는 산업 현장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석유의 90% 이상을 중동 지역에서 수입해 온 방글라데시는 미·이란 전쟁 발발 이후 액화천연가스(LNG) 부족으로 전력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루 4~5시간씩 정전이 이어지면서 주력 산업인 의류 업계에서는 생산을 일시 중단하거나 아예 공장 문을 닫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각국 정부는 국제유가 상승분을 국내 연료 가격에 반영할지, 보조금 등을 늘려 가격 상승을 억제할지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가격을 올리면 인플레이션과 민심 악화를 부추길 수 있지만, 보조금을 확대하면 재정과 국가부채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시리아 정부는 전쟁으로 인해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스리랑카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이미 개발도상국 가운데 높은 수준이지만 추가 보조금 지급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부유층과 중산층을 연료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아시아의 분쟁과 국가 건설을 연구하는 사나 자프리 호주국립대학교 강사는 “아시아나 개발도상국들이 이번 지정학적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재정적 여력이 전반적으로 얼마나 되겠냐”며 이들 국가의 대응 여력이 바닥나기 시작하면 그 충격이 세계 금융시장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어느 시점이 되면 결국 모두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9102125025
최경윤 기자 ck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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