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감독' 이준익이 돌연 '숏 드라마' 만든 까닭… 극장 개봉도 '주목'

남보라 2026. 9. 16. 14:0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9일 전국 롯데시네마에서 세로 화면 영화 '아버지의 집밥'이 개봉했다.

"(숏 드라마 연출이) 사실은 불편하고 두려운 선택이었죠." 영화 개봉 당일 서울 성동구의 키다리스튜디오 사옥에서 만난 이 감독이 솔직한 속내를 꺼냈다.

그럼에도 이 감독이 처음으로 숏 드라마를 찍은 건 영화계 후배들 때문이었다. 역사상 최악의 침체기를 겪는 영화계에선 신인 감독 입봉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됐고, 그는 후배들에게 "플랫폼 상관없이 창작 활동을 하는 게 창작자의 의무"라며 숏 드라마 연출을 권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아버지의 집밥' 이준익 감독 인터뷰 ]
숏 드라마를 영화로 편집, 세로 화면 개봉
후배들 부탁에 숏 드라마…가족극 선택
'2분 안에 기승전결' 완전히 다른 문법
모든 인물 내면 조명…세로 가능성 발견
"주인공 나이인 60~80대 많이 봤으면"
숏 드라마로 촬영한 후 세로형 영화로 재탄생한 '아버지의 집밥'의 순애(이정은)와 하응(정진영). 레진스낵 제공

9일 전국 롯데시네마에서 세로 화면 영화 ‘아버지의 집밥’이 개봉했다. 가로 스크린의 한가운데 3분의 1 정도만 화면으로 쓴다. 당초 휴대폰으로 시청하는 숏 드라마로 만들어진 터라 처음부터 세로로 촬영됐다. 회당 2분 분량의 숏 드라마 총 61회가 묶여 146분 길이의 영화 한 편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숏 드라마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은 국내 최초이고, 해외에서도 유례가 없던 일이다. 심지어 이 숏 드라마, ‘왕의 남자’(2005)로 ‘천만 감독’에 오른 이준익 감독 작품이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화계 최악의 침체, 후배들 독려하다가…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열린 '아버지의 집밥' 시사회에 참석한 이준익 감독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숏 드라마 연출이) 사실은 불편하고 두려운 선택이었죠.” 영화 개봉 당일 서울 성동구의 키다리스튜디오 사옥에서 만난 이 감독이 솔직한 속내를 꺼냈다. 숏 드라마는 북미와 중국에서 2, 3년 전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시장이 팽창했지만 불륜과 복수,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 소재가 대부분이라 국내에서는 여전히 ‘저급한 마라맛 콘텐츠’라는 인식이 많다.

그럼에도 이 감독이 처음으로 숏 드라마를 찍은 건 영화계 후배들 때문이었다. 역사상 최악의 침체기를 겪는 영화계에선 신인 감독 입봉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됐고, 그는 후배들에게 “플랫폼 상관없이 창작 활동을 하는 게 창작자의 의무”라며 숏 드라마 연출을 권했다. 그렇게 숏 드라마에 진출한 후배들은 그에게 “숏 드라마가 너무 마이너한 취급을 받는다. ‘이름 있는 사람’이 한 번 나서주면 힘이 될 것 같다”고 부탁했고, 고민 끝에 숏 드라마를 찍었다.

그가 택한 작품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가족극 ‘아버지의 집밥’이었다. 수십 년간 아내가 차려준 집밥으로 삼시세끼를 먹던 아버지 하응(정진영)이 냄비만 봐도 어지러워서 요리를 할 수 없는 병인 ‘요리백지증’에 걸린 순애(이정은) 대신 요리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삼대에 걸친 가족의 밥과 함께 한국 현대사의 성장통까지 담겨 각 세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그는 “(콘텐츠들이) 만날 폭력과 자극만 추구하는 시대에 가족극이 숏폼에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숏 드라마이자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인 '아버지의 집밥' 포스터. 레진스낵 제공

제약도 가능성도 많은 숏 드라마

숏 드라마 제작 과정은 34년차 감독인 그에게도 새로운 세계였다. 시나리오 작법부터 달랐다. 한 회 2분 안에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모두 들어가야 하고 주방, 거실 등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는 4곳 이하로 제한됐다. 세로 화면이라 배우들의 좌우 이동은 최소화하고, 대화하는 인물들을 한 화면에 담지 못해 매번 컷을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 감독은 "가로 화면인 영화는 주인공의 내면만 따라가지만, 세로 화면에서는 모든 인물이 단독샷을 받기 때문에 시청자가 조연의 내면까지 깊이 따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소규모지만 상업 자본의 안정적 공급도 장점이다. 이 감독은 ‘아버지의 집밥’을 33명의 스태프와 한 달 동안 5억 원의 제작비로 촬영했다. 가로 영화였다면 스태프가 100명 이상, 제작비는 5배 이상 필요했을 거라는 게 이 감독 추산이다. 그는 “감독이 자기 네트워크를 활용하지 않으면 제작비 수급이 어려운 영화 생태계와 달리 숏 드라마는 신인 창작자들이 상업 시장에 진입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열린 영화 '아버지의 집밥' 언론 시사회에서 이준익 감독(오른쪽)과 배우들이 밥 먹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숏폼 플랫폼 레진스낵에서만 공개될 예정이었던 이 작품이 극장에 걸린 건 관객 반응 덕분이었다. 이 작품은 7월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플랫폼 기획전’에 초청받았다. 당시 매 회가 끝나면 검은 화면이 나왔다가 다음 화가 이어지길 2분마다 반복하며 2시간 30여 분 동안 상영됐는데 중간에 자리를 뜨는 관객이 없었다. 눈물 훔치는 소리가 극장을 메웠다. 제작진은 극장 개봉을 결정하고 회차 간 검은 화면을 없애 한 편의 영화로 재편집했다. 이 감독은 "어르신들은 극장에서 자신의 연령대에 맞는 영화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며 "극중 아버지 나이대인 60~80대들이 극장에서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이달부터 '자산어보'(2021) 이후 5년 만의 신작 영화인 ‘반딧불이’ 촬영에 들어간다. 1970년대 독재시대에 연좌제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형사의 이야기를 담은 시대극으로, 박해일 박서준 최대훈 등이 출연한다.

숏 드라마이자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이기도 한 '아버지의 집밥'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 레진스낵 제공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