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안 타도 흉작...산불 주변 농지의 2가지 위기
겉모양 멀쩡해도 수확량·품질 영향
추석을 앞두고 성묘객들의 발길이 산으로 향하면서 산불 발생 위험도 커지고 있다. 불길이 농경지까지 번지지 않더라도 연기나 재가 농작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취재를 종합하면, 산불로 소실되지 않은 농작물도 연기와 재 등의 영향으로 생육과 수확량, 품질 등에 간접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지난해 3월 경남 산청과 경북 의성, 울산 울주 등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당시 산불 연기가 농경지까지 퍼진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진이 지난 1월 학술지 『Fire』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당시 전국 8곳의 농업지역에서 산불 기간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산불이 발생하지 않은 기간보다 평균 24.9% 높았다. 미세먼지(PM10) 농도도 평균 47.3% 증가했으며, 조사한 8개 지점 모두에서 농도가 높아졌다.
산불이 발생하면 연소 과정에서 나온 입자와 각종 오염물질이 대기 중으로 퍼진다. 연구진은 습도가 높거나 대기가 정체되고, 분지처럼 공기가 빠져나가기 어려운 지형에서는 산불 연기가 농업지역에 머무를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기 속 입자, 식물 생육에 영향 줄 수도
산불 연기는 농작물의 생육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식물은 잎의 기공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수분을 내보내며 광합성을 한다. 산불 연기에 포함된 입자나 화학물질이 기공 기능에 영향을 주면 광합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연기가 햇빛을 가리면서 식물이 광합성에 이용할 수 있는 빛의 양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실제 해외에서는 산불 연기가 작물의 생산량뿐 아니라 상품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확인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아이다호에서 진행된 감자 실험에서는 산불 연기를 모사한 환경에 감자를 하루 3시간씩 6주 동안 노출했다. 전체 수확량에서는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미국의 상품 등급인 'U.S. No. 1' 감자의 비율은 연기에 노출되지 않은 감자보다 약 3% 낮아졌다.
이 연구는 2025년 국제학술지 『American Journal of Potato Research』에 발표됐다.
과일 수확량·품질에도 영향
포도처럼 연기와 직접 접촉하는 과일은 품질 변화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지난 3일 공개된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연구에서는 2010년부터 2021년까지 포도 생산량과 기온, 대기질 자료를 분석해 산불 연기로 인한 대기질 악화가 포도 생산량 감소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불이 극심했던 2020년 와인용 포도가 많이 재배되는 지역인 소노마와 나파에서는 전년보다 포도 생산량이 각각 약 35%, 39% 감소했다.
산불 연기는 포도의 향과 맛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연기 속 휘발성 화합물이 포도에 흡수되면 포도주를 만들 때 탄 냄새나 재와 같은 향이 나타나는 '스모크 테인트(smoke taint)'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포도나무가 눈에 띄게 타지 않았더라도 최종 생산물의 품질과 상품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다만 산불의 규모와 연기 성분, 노출 시간, 작물의 종류와 생육 단계 등에 따라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
행정안전부 경북·경남·울산 초대형산불 피해지원 및 재건지원단 관계자는 15일 <뉴스펭귄>과의 통화에서 "현재 시점에서는 산불 연기로 인한 간접 피해 규모를 정확하게 집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피해 신청을 통해 접수된 사례를 바탕으로 피해 여부와 규모를 확인하는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다.
지난해 대형 산불 피해와 관련해서는 현재도 피해 지원 신청이 진행되고 있다. '경북·경남·울산 초대형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른 피해 지원 신청 기간은 올해 1월 29일부터 내년 1월 28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