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온도’보다 ‘오늘의 생명’에 무게중심 옮겨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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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유럽은 지독한 폭염에 시달렸다. 유럽의 평균기온은 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불까지 번져나갔다.
이채로운 점은 2019년 폭염이 짧고 강하게 간헐적으로 발생했다면, 올해는 7년 전보다 이른 시기부터 견디기 힘든 폭염이 여러 차례 연속해서 유럽을 덮쳤다는 것이다.
유럽이 2019년부터 올해처럼 예상치 못한 장기간의 폭염에 대비했다면 지금 같은 재난 상황을 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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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혹독한 폭염…‘새로운 일상’ 된 이상기후
●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도 세계 배출량 최고치 경신
● 에너지 위기와 자국 우선주의로 지속적 이행 난항
● 감축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수십 년 시차 발생
● 지금 당장 생명과 재산 지키는 ‘적응’ 투자 시급

유럽의 폭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에도 전례 없는 고온이 이어지며 연일 관련 뉴스가 쏟아졌다. 당시 프랑스 파리는 섭씨 42.6도를 기록했고, 독일 등 여러 지역이 사상 최고기온을 경신했다. 이채로운 점은 2019년 폭염이 짧고 강하게 간헐적으로 발생했다면, 올해는 7년 전보다 이른 시기부터 견디기 힘든 폭염이 여러 차례 연속해서 유럽을 덮쳤다는 것이다. 폭염이 일시적 이상 현상을 넘어 여름철의 새로운 일상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유럽은 환경보호나 지구온난화 대응에 항상 적극적이었다. 유럽연합(EU)의 그린딜(Green Deal)을 통한 탄소중립에서부터 독일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탈원전 선언,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등 앞장서서 변화를 이끌었다. 지구상에서 기후위기를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대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럼에도 기후위기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2019년 폭염을 겪은 후에도 유럽의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원인 줄이는 '완화', 생명 지키는 '적응'
기후위기 대응은 크게 '완화(mitigation)'와 '적응(adaptation)'으로 나뉜다. 완화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거나 흡수원을 늘려 기후변화의 속도와 폭을 억제하는 것이다. 석탄 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 전기차를 보급하고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 산림을 통해 탄소를 흡수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완화는 기후위기의 원인을 줄이는 정책이다.적응은 다르다. 이미 발생하고 있거나 앞으로 피하기 어려운 기후변화의 피해를 줄이는 일이다. 폭염에 대비해 병원과 학교, 주택에 냉방시설을 설치하고 도시의 그늘과 녹지를 늘리는 것, 집중호우에 대비해 하수관과 저류시설을 확충하는 것, 해수면 상승을 고려해 제방과 항만을 보강하는 것이 적응이다. 가뭄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고 산불 감시체계를 강화하는 것도 포함된다. 완화가 미래의 기온을 낮추는 일이라면, 적응은 달라진 기후 속에서 오늘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그동안 국제사회의 기후 정책은 적응보다 완화에 훨씬 많은 힘을 쏟았다. EU의 예산에도 이러한 경향이 반영돼 있다. EU는 2021∼2027년 전체 예산의 34%인 약 6620억 유로를 기후 대응에 투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EU 집행위원회가 2021∼2025년 기후 관련 지출을 분석한 결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완화가 전체 지출의 72%를 차지한 반면 기후변화 적응은 18%에 그쳤다. 완화에 투입된 지출 비중이 적응의 4배에 달한다.
수치화·산업화 쉬운 '완화' 중심 정책의 함정
기후 정책의 초점이 전 세계적으로 완화에 맞춰지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완화는 목표와 성과를 숫자로 표현하기 쉽다. 발전소와 공장,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계산하고 연도별 감축 목표를 정할 수 있다. 탄소에 가격을 매겨 배출권을 사고팔 수도 있다. 국가 간에 공통 목표를 정하고 이행 여부를 비교하기도 수월하다. 반면 제방 축조 등 적응 사업의 성과는 '재난이 터지지 않았음'으로 나타난다. '발생하지 않은 피해'의 역설이다. 사고가 나지 않으면 투자의 가치를 입증하기 어렵고, 정치인들이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경제적 이유도 있다.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배터리, 수소, 전력망 사업은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만든다. 기후 정책을 산업 정책과 연결할 수 있으므로 정부와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끌어내기 쉽다. EU가 탄소국경조정제도를 통해 수입 제품의 탄소 배출에도 비용을 부과하는 것은 기후 정책이 통상정책이자 산업 정책임을 보여준다. 반면 학교 운동장에 나무를 심고 요양시설에 냉방설비를 설치하며 낡은 하수관을 교체하는 사업은 거대한 첨단산업으로 보이지 않는다. 자연을 파괴하는 토목공사라 여겨질 뿐이다.

유럽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에서는 배출량이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의 산업화와 에너지 소비가 늘면서 세계 전체 배출량은 감소로 이어지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를 개발도상국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이들의 배출량 중 상당 부분은 선진국 시장에서 소비되는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선진국이 탄소 집약적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한 뒤 완제품을 수입하면 생산국의 배출량은 늘고 소비국의 배출량은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국제협약의 한계와 '공유지의 비극'
선진국들이 먼저 산업화를 이루면서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는데, 이제 와서 개발도상국에 기후위기를 이유로 경제발전을 못하게 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정확한 통계 비교는 쉽지 않겠지만 필자는 확신한다. 전 지구에서 기후변화로 사망하는 인구보다 가난해서 사망하는 인구가 훨씬 많다고. 심지어 가난한 국가와 사람이 기후변화에 더 취약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국제협약이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기후변화 완화는 전형적인 '공유지의 비극'이기도 하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비용은 개별 국가와 기업이 부담하지만 그 편익은 세계가 함께 누린다. 한 나라가 많은 비용을 들여 배출을 줄이더라도 다른 나라가 배출을 늘리면 효과는 희석된다. 반대로 자신은 감축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서 다른 국가의 노력에 기대려는 유인이 생긴다. 모든 국가가 공동의 이익보다 당장의 자국 이익을 앞세우면 세계 전체의 배출량은 줄지 않는다.
에너지 위기는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천연가스 공급이 불안해지고 에너지 가격이 치솟자 유럽 국가들은 기존의 환경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웠다. 독일은 탈원전 정책 자체를 철회하지는 않았지만, 2022년 말 폐쇄할 예정이던 마지막 원전 세 곳의 가동을 2023년 4월까지 연장했다. 가스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 예비 석탄발전소도 다시 가동했다. 유럽의 일부 국가 역시 석탄 사용을 늘리거나 원전 수명을 연장했다.
이를 선한 의도로 시행한 정책에 내포된 맹점만으로 설명할 일은 아니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전력 공급이 불안해지면 국민은 수십 년 뒤의 기후보다 이번 겨울의 난방비와 공장의 가동 여부를 먼저 걱정한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는 이러한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다. 평상시에는 장기적인 탄소중립을 약속할 수 있지만 전쟁과 경제위기가 닥치면 에너지 안보와 물가, 일자리가 정책의 우선순위가 된다. 미래의 편익을 위해 현재의 비용을 감수하자는 완화 정책이 정치적으로 지속되기 어려운 이유다.
감축 효과의 시차, 그 간극 메우는 '적응'
지금 적응이 더욱 시급한 결정적 이유는 온실가스 감축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데 있다. 오늘 전 세계가 획기적으로 배출량을 줄이더라도 지금까지 대기 중에 축적된 온실가스와 바다가 흡수한 열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온실가스를 높은 수준으로 지속해서 감축할 경우 대기 조성의 변화는 수년 안에 나타날 수 있지만, 지구온난화의 둔화가 뚜렷하게 확인되기까지는 약 20년이 걸릴 수 있다고 본다.그동안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과 산불은 계속 찾아온다.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서 다음 여름의 열대야가 사라지거나 다음 장마의 침수 위험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미래의 기온 상승을 줄이는 완화 정책과 지금 발생하는 피해를 줄이는 적응 정책 사이에 시간의 간격이 존재한다. 그 간격을 메우는 것이 '적응'이다.
기후위기에 관한 경고가 오래전부터 반복됐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구온난화로 인한 파국과 인류 문명의 위기를 경고하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왔다. 일부 언론과 활동가들은 특정 연도를 마치 돌이킬 수 없는 종말의 시점처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예고된 방식으로 세계가 갑자기 끝나지는 않았다. 이런 경험은 대중에게 기후위기 경고에 대한 피로와 불신을 남겼다. 지구온난화가 이산화탄소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의 가능성을 넘어 온실가스 효과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우리나라도 적응보다 완화 중심의 정책을 펴고 있다. 탄소중립·녹색성장 국가기본계획에 따르면 2023~2027년 투자할 예정인 총 재정이 약 89조9000억 원에 달한다. 이 중 온실가스 감축, 즉 완화에 54조6000억 원(60.7%)이 배정되고 녹색산업 성장에 6조5000억 원(7.2%), 기후변화 적응에는 19조4000억 원(21.6%)이 투입될 예정이다. 물론 이 계획이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완화에 초점을 맞춘 기조라는 점은 확실하다.
폭염이 유럽을 강타한 2019년 필자는 독일 출장을 가야 했다. 다행히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라 폭염이 한창이던 시기는 피할 수 있었다. 그래도 덥긴 더웠다. 독일에서 첫날밤을 보낸 호텔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허름한 모텔에도 다 있는 에어컨이 1박에 수십만 원 하는 호텔엔 없어서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생각보다 덥지 않았다. 분명 기온은 높은데 아침, 저녁 날씨는 시원했다. 한낮에도 햇볕만 피하면 견딜 만했다. 습도가 낮기 때문이다. 독일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정도는 참을 만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연재해를 쉽게 잊는다. 유럽이 2019년부터 올해처럼 예상치 못한 장기간의 폭염에 대비했다면 지금 같은 재난 상황을 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10년, 20년 뒤 지구온난화로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현재 기후변화로 사람이 죽어가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것 같다. 인류 멸망보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이 훨씬 가능성이 높은 일인데도 말이다.
이제 기후 정책의 무게중심을 조정할 때다. 온실가스 감축을 포기하자는 뜻은 아니다. 미래의 온도를 낮추는 일에 집중한 나머지 지금 닥친 폭염과 홍수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번 여름이 더는 희생과 큰 피해 없이 지나가기를 바란다.

●1983년 출생
●포항제철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 중어중문/경영 졸업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現 솔루티드(주) 대표(중소기업 ESG 컨설팅 전문)
이명우 ㈜솔루티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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