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으로 읽는 음식 이야기] 물 사 먹을 권리, 나라가 왜 막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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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 8일, 대법원은 "인간이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이나 마시고 싶은 음료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의 하나로서 행복추구권의 중요한 내용을 이룬다"고 판결했다.
국민이 생수를 마시기 시작하면 수돗물이 못 미덥다는 불안이 퍼져 식수공급행정에 혼란이 온다는 것, 그리고 생수를 마시는 계층과 수돗물을 마시는 계층 사이에 '위화감'이 생긴다는 것.
불안은 생수 판매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국민이 수돗물의 질을 믿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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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명
과징금부과처분취소
당사자
원고(상고인): 주식회사 고려종합 외 7인
피고(피상고인): 보건사회부장관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태평양합동법률사무소(담당변호사 김인섭 외 2인)
서울고등법원 1991. 12. 12. 선고 90구20611 판결(청구 기각) → 대법원 1994. 3. 8. 선고 92누1728 판결(파기환송)

행복추구권이 적힌 판결문
1994년 3월 8일, 대법원은 "인간이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이나 마시고 싶은 음료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의 하나로서 행복추구권의 중요한 내용을 이룬다"고 판결했다. 생수를 국민에게 팔지 못하게 한 정부 고시는 헌법에 위반되어 효력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물을 사 마시는 일이 비로소 합법이 된 순간이다.
외국인만 마실 수 있던 물
그전까지 생수는 '외국인의 음료'였다. 정부는 1976년부터 보존음료수제조업을 허가하면서 '전량 수출 또는 주한외국인에 대한 판매에 한함'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근거는 보건사회부 고시 제85-17호 '식품제조영업허가기준'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외국인 선수단에는 생수가 공급됐지만 정작 내국인은 살 수 없었다. 정부 논리는 두 가지였다. 국민이 생수를 마시기 시작하면 수돗물이 못 미덥다는 불안이 퍼져 식수공급행정에 혼란이 온다는 것, 그리고 생수를 마시는 계층과 수돗물을 마시는 계층 사이에 '위화감'이 생긴다는 것.
페놀 이후, 몰래 사 먹는 물
그러나 1989년 수돗물 중금속 검출, 1990년 트리할로메탄 검출,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 잇따르면서 먹는 물에 대한 불신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살 수 없는 물을 사 먹는 사람이 늘었다. 1990년 7월 업체들이 내국인에게 생수를 판 사실이 적발됐고, 보건사회부는 그해 8월 30일 영업정지 4개월에 갈음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산수음료와 고려종합은 수질검사에서 일반세균이 허용기준(1㎖당 100마리)을 넘긴 사실까지 함께 적발됐다. 여덟 개 회사가 소송을 냈다.
원심 - "정수기를 쓰면 되지 않느냐"
서울고등법원은 정부 손을 들어줬다. 맑은 물을 마실 권리는 "수돗물의 수질개선, 지하수나 약수음료의 사용, 청량음료의 사용, 정수기의 사용 등으로도 추구할 수 있으니 본질적 침해가 아니다"라는 논리였다.
대법 - 위화감 법으로 막을 수 있나
대법원의 판단은 정반대였다. 먼저 '위화감 방지'를 겨눴다. 재판부는 이를 "일종의 상대적 박탈감"이라 규정하고, 그런 감정은 "그 자체를 법률로 규제할 성질의 것은 되지 못한다"고 못 박았다. 오히려 "보존음료수를 국내에서 주한외국인에게 판매하는 것만을 허용하는 것이 위와 같은 위화감을 더 조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돗물 불안감' 논리도 무너뜨렸다. 불안은 생수 판매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국민이 수돗물의 질을 믿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할 일은 수질을 개선하는 것이며, "국민으로 하여금 다른 음료수를 선택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수돗물만을 마시도록 강요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했다. 원심을 향해서는 "규제하려는 쪽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다 덜 제한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지를 모색하여야 할 것"이지 제한당하는 쪽에 다른 수단이 있다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며 "앞뒤가 뒤바뀐 것"이라고 꼬집었다.
수출 비중이 총생산량의 1.3%(1987년, 원고들 주장)에 불과한 터라 국내 판매 금지는 사실상 시장 전체를 닫는 것이므로 직업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라고도 봤다. 결론은 파기환송. 주심은 뒷날 헌법재판소장이 되는 김용준 대법관이었다.
이듬해 만들어진 법
국회는 이듬해 답을 냈다. 1995년 1월 5일 먹는물관리법(법률 제4908호)이 제정돼 그해 5월 1일 시행되면서 생수는 정식 상품이 됐다. 1998년 3월 5일 제주항에서 인천으로 첫 출하된 제주삼다수는 한 달 만에 5,000t이 팔렸고, 2025년 1분기 점유율 40.4%(닐슨코리아 기준)로 27년 연속 1위를 지키고 있다. 한편 1998년 12월 24일 헌법재판소는 먹는샘물 제조업자에게 판매가액의 20% 범위에서 물리는 수질개선부담금을 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했다(98헌가1). 지하수는 지켜야 할 공공재라는 원칙과, 물을 골라 마실 자유가 나란히 자리를 잡은 것이다. 무엇을 먹고 마실지는 국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고르는 것이다.
박정배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