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생로병사] 기억은 스마트폰에, 생각은 AI에 의존… 우리의 뇌는 괜찮을까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26. 9. 15.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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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기억 외주화’ 심각해, 뇌기능 악화로 치매 우려 나와
AI도 뇌에 악영향… 독서·사색·학습으로 ‘저축성 자산’ 쌓아야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쓰인지 대략 15년이 지난 지금, 아무도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는다. 배우자나 자녀 번호조차 모른다. 전화번호라는 정보를 기억하는 대신 ‘누구의 연락처가 스마트폰에 있다’는 사실만 기억한다. 우리는 길을 외우지 않고, 가족 생일도 잊곤 한다. 노래 제목, 배우 이름도 힘들게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과거도 폰카 사진이 복원한다. 스마트폰이 내 모든 기억을 대신한다. 이제 기억하려는 노력 자체가 사라졌다.

그래픽=이철원

스마트폰 이후 인간의 뇌 기능은 어떻게 변했을까. 2011년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에는 미국 컬럼비아대와 하버드대 연구팀의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실렸다. 이들은 연구 참가자들에게 여러 정보를 입력하게 한 뒤 “이 정보는 컴퓨터 어딘가에 저장되어 나중에도 볼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러자 사람들은 정보 자체를 덜 기억했다. 대신 그 정보가 어디에 저장돼 있는지를 더 잘 기억했다. ‘기억의 외주화’ 현상이다. 연구진은 이런 뇌 기능 변화를 ‘구글 효과(Google Effect)’라고 했다.

다른 연구에서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상식 문제를 풀게 하면서 한쪽은 스마트폰으로 구글을 사용하게 하고, 다른 쪽은 자기 기억만 이용하게 했다. 그다음 새로운 문제를 풀도록 했는데, 앞서 구글을 사용한 사람들은 스스로 알 법한 쉬운 문제조차도 검색을 사용했다. ‘검색 세대’는 점점 쉬운 것도 검색에 의존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제 기억을 꺼내보려는 시도 자체도 줄었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문명이 등장했다. 외주화 대상이 ‘기억’에서 ‘생각’으로 확대됐다. 스마트폰 시대에는 인터넷에 “혈당 스파이크 원인은 뭐지?”라고 물으면 여러 자료가 뜨지만, 결국 읽고 비교하고 판단하는 것은 검색자 몫이었다. 생성형 AI 시대에서는 “혈당 스파이크 원인을 정리하고 중요한 순서대로 정리해서 1000자로 요약해줘”라고 한다. 인간이 담당했던 선택, 비교, 요약, 종합 구성도 이제 AI가 수행한다.

2025년 미국 MIT대 연구진은 생성형 AI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 참가자들에게 에세이를 쓰도록 하면서, 이들을 생성형 AI 사용 그룹, 검색 엔진 사용 그룹, 아무 도구 없이 자기 뇌만 사용 그룹 등 셋으로 나눴다. EEG(뇌파)를 이용해 각 그룹의 뇌 인지 활동을 측정했다.

그 결과, 자기 뇌만 사용한 그룹에서 가장 강하고 광범위한 뇌 네트워크 연결성이 관찰됐다. 검색 엔진 그룹은 중간, 생성형 AI 그룹은 가장 낮은 패턴을 보였다. 생성형 AI가 고도의 뇌 인지 네트워크 활동을 줄인다는 의미다. AI 사용 그룹은 자신이 쓴 글의 내용을 기억하거나 활용하는 능력도 떨어졌다.

2010년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스마트폰을 손에 쥔 20대가 2025년 30대 후반에 생성형 AI를 만나고, 15년 후인 2040년 50대 중반이 되었을 때, 그들의 뇌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기억과 생각의 외주화를 오래 산 세대들은 70대가 됐을 때 뇌 기능이 퇴화해 인지 장애가 잘 오고, 치매 발생이 늘어날까?

스마트폰과 생성형 AI가 인지 기능을 떨어뜨려 치매 발생을 높인다는 장기 추적 연구는 없다. 결론을 내기에 아직 이른 시기다. 하지만 상당수 의학자는 스마트폰이 기억을 대신하고 생성형 AI가 추론하고, 문장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까지 모두 대신하게 된다면 장기적으로 뇌 기능 약화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오늘 AI를 이용해 아낀 인지적 노력이 오랜 세월 반복됐을 때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는 개념이 ‘인지 예비 능력(cognitive reserve)’이다. 똑같이 나이가 들고 뇌에 비슷한 퇴행성 변화가 생겨도 어떤 사람은 일상생활을 잘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일찍 인지 장애 증상을 보인다. 이런 차이를 설명하는 개념이 인지 예비 능력이다.

인지예비능은 평생 교육과 지적 활동, 직업 경험 등을 통해 뇌가 효율적이고 유연하게 네트워크를 동원해 손상에 대처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뇌에 병리적 변화가 어느 정도 쌓여도 풍부한 인지예비능을 가진 사람은 기존 신경망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상당 기간 인지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인지예비능은 꾸준한 학습을 하고, 복잡한 일을 하고,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사회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커진다. 뇌 활동에 따른 저축성 자산이다.

스마트폰은 인간에게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었고, 생성형 AI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만들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은 일부러 기억하고, 가끔은 지도를 보고, 긴 글을 직접 읽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새로운 언어와 악기를 배우고, 책을 읽고 사색하고,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도 중요하다. 뇌 건강은 머리만 갖고 안 된다. 신체 활동, 수면, 청력 관리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인지 예비 능력이 커진다.

AI로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AI를 이용해 지적 호기심을 늘리자. AI로 사고와 세상 범위를 확장한다면 AI가 뇌 건강 도우미가 될 수 있다. 스마트폰과 AI가 우리의 뇌를 쉬게 해주는 시간만큼, 우리는 좀 더 창의적인 뇌 쓰기에 시간을 써야 한다. 이 글을 쓰는 데 AI의 도움을 받았지만, 생각의 노고는 그 이상 깊었다. 스마트폰이 기억해주고 AI가 생각해주는 시대, 우리의 뇌는 더 바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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