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 불타는 듯한데 겉은 멀쩡… 인구 7~10% 겪는 ‘보이지 않는 통증’[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2026. 9. 1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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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공개된 미국 다큐멘터리 '마이 라스트 너브(My Last Nerve)'의 예고편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신경병성 통증은 신경계의 손상이나 질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만성 통증이다.

당뇨병성 신경병증(당뇨 합병증), 대상포진 후 신경통(대상포진 치유 후 지속되는 통증), 척추 디스크, 수술 또는 외상으로 인한 신경 압박 및 손상, 뇌졸중, 다발성 경화증 등 중추신경계 질환, 항암 화학요법(항암제) 부작용, 알코올성 신경 손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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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거림, 저림, 콕콕 찌르는 느낌… 스치기만 해도 고통 겪는 만성통증
당뇨-대상포진 등에 신경계 오작동… 원인 못 찾는 특발성 환자도 적잖아
약물-신경자극 치료에도 효과 제한… 통증 ‘보는’ 기술, 치료의 새 돌파구
신경병성 통증을 앓는 아버지와 치료법을 찾아 나선 아들의 12년 사투를 담은 다큐멘터리 ‘마이 라스트 너브’의 한 장면. 사진 출처 하이 워터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삶의 질 낮추는 ‘신경병성 통증’

2024년 공개된 미국 다큐멘터리 ‘마이 라스트 너브(My Last Nerve)’의 예고편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당신이 건강하다면 세상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이다. 건강을 잃게 되면 세상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무서운 속도로 배우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아들 맥스가 12년 동안 아버지 조너선의 병을 고칠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선 과정을 그린다. 맥스는 그 과정에서 의료 시스템의 여러 한계에 부딪히고 숱한 고난을 겪는다.》

사업을 시작한 조너선은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휴가를 다녀온 뒤 오른발이 불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통증은 곧 왼발과 양손으로 번졌다. 그가 받은 진단은 ‘특발성 말초신경병증’이었다. 한마디로 말초신경계에 이상이 생겼지만 그 원인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맥스는 이 진단에 화가 났다. 어려운 의학용어로 병명을 붙였지만 결국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른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해당 분야의 이름난 전문가들을 찾아갔지만 그들 역시 무엇이 잘못됐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었다.

조너선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통증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두 발을 바비큐 그릴 위에 올려놓은 듯한 느낌인데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이 때문에 괜히 아픈 척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손을 겨드랑이에 끼고 있어야 통증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졌지만 사람들은 그가 왜 그런 자세를 취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조너선은 견딜 수 없는 통증에 24시간 시달려 다른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 고통을 볼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 ‘마이 라스트 너브’ 포스터. 사진 출처 ‘마이 라스트 너브’ 공식 예고편
그는 일주일에 240개의 약을 먹고도 통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졸음과 어지럼증, 입마름, 변비 등 여러 부작용도 쌓여 갔다. 병원에서는 약 처방을 조금씩 바꿔 줄 뿐 뚜렷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다. 다큐멘터리는 아버지를 구하려는 맥스의 집요한 노력과 희망을 보여주지만 신경병성 통증 치료의 해답까지 제시하지는 못한다.

신경병성 통증은 신경계의 손상이나 질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만성 통증이다. 신체의 이상이나 위험을 알리는 일반적인 통증과 달리 신경계 자체의 오작동으로 생긴다. 칼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나 불에 타는 듯한 화끈거림, 저림과 감각 저하,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 등이 주요 증상이다. 스치기만 해도 극심한 통증을 느끼거나 아무런 자극이 없는데도 갑자기 나타나는 자발통을 겪기도 한다.

전 세계 인구의 7∼10%가 신경병성 통증을 겪고 있다. 50세 이상에서 더 흔하게 나타나며 당뇨병 환자의 25∼30%, 항암 화학요법을 받는 환자의 40%, 대상포진 환자의 15∼30%에게서 나타난다.

원인은 다양하다. 당뇨병성 신경병증(당뇨 합병증), 대상포진 후 신경통(대상포진 치유 후 지속되는 통증), 척추 디스크, 수술 또는 외상으로 인한 신경 압박 및 손상, 뇌졸중, 다발성 경화증 등 중추신경계 질환, 항암 화학요법(항암제) 부작용, 알코올성 신경 손상 등이 있다. 그러나 조너선처럼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현재 흔히 사용되는 치료법은 약물 치료다. 일반 진통제와 항경련제, 항우울제 등을 1차 치료제로 주로 사용한다. 국소 치료로는 통증 부위에 직접 붙이거나 바르는 리도카인 패치와 캡사이신 크림 등이 쓰인다. 통증을 유발하는 신경에 직접 약물을 주입하거나 신경자극기를 심어 통증 신호를 차단하는 시술을 하기도 한다. 비약물 요법으로 물리 치료, 인지 행동 치료, 침술 등을 병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경병성 통증은 가장 치료하기 난해한 통증 가운데 하나다. 통증을 절반 이상 줄이는 것만으로도 치료에 성공했다고 평가할 정도다. 그마저도 환자의 20∼50% 정도만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조너선처럼 수많은 치료를 받고도 통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는 사람이 많다. 한순간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고통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삶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는 통증을 눈으로 볼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아마도 지금까지 통증 치료가 실패해 온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도 결국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필요한 약을 개발할 수 있었다. 통증을 보이게 하는 기술 역시 통증과의 싸움에서 판도를 바꿀 것으로 기대된다. 통증을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어떤 방법이 통증을 없애는 데 적합한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통증을 눈으로 확인해 없앨 수 있는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12년간 노력해 온 맥스의 소원처럼, 조너선과 같은 이들이 통증 없이 행복한 일상을 되찾는 미래가 오기를 바란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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