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선점해놓고 천천히 가자는 미 AI 기업들…한국 ‘발등 불’

이혜리 기자 2026. 9. 1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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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AI 업체들 주도로 안전 기준 강화될 땐 후발주자에 ‘진입장벽’
이 대통령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전문가 “국제협상 적극 참여를”

전문가들은 최근 인공지능(AI) 개발 속도조절론의 배경에는 공감하면서도, 미·중 양강구도를 뒤쫓는 한국에는 진입장벽이 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선도그룹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정수 블루닷에이아이 연구센터장은 15일 통화에서 “(AI가) 의도하지 않고도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앤트로픽이나 오픈AI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기업들에도 경각심을 주는 사례이고 한국 기업의 경쟁력 차원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밤 엑스에 속도조절론에 관해 “좋은 지적이지만 AI는 도덕과 당위를 떠나 이미 현실이 됐다”며 “위기는 기회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고 썼다.

문제는 AI 안전 기준을 누가 만드느냐다. 미국 기업들이 AI 시장을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강화된 기준이 만들어지면 한국과 같은 후발주자에는 시장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이승현 한양대 에리카 글로벌문화통상학부 겸임교수는 “물론 안정성과 신뢰성을 고민해야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사다리 걷어차기’가 되고, 격차를 좁히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미국 기업들이 리딩하고 싶다는 것인데 그러면 모든 AI가 미국 중심으로 갈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한국도 글로벌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며 “미국과 중국이 담합해 스탠더드를 만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이 여기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미국 AI 기업들의 말과 행동이 다른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홍락 LG AI연구원 공동연구원장은 지난 14일 토크콘서트 행사에서 “(미국 기업들이) 계산량이나 연구·개발(R&D)에 가속을 했으면 했지, 감속하는 것으로 예상하진 않는다”며 “모델 출시 전 조금 더 신중하게 검토가 필요하다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안전과 사이버 보안은 ‘AI 주권’과도 연결된다. 이미 지난 6월 앤트로픽은 보안협력체 ‘프로젝트 글래스윙’을 만들어 소속 기관에만 미토스 최신 모델을 공개했고, 미국 정부는 AI 보안 문제를 국가안보 사안으로 규정해 미토스 수출 통제를 단행한 전례가 있다. 당시 한국은 수출 통제의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원태 국민대 특임교수(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보안특별위원장)는 “정부는 ‘개발이냐 규제냐’라는 이분법을 넘어 국내 프런티어 AI 역량을 신속히 확보하는 동시에 이를 독립적으로 시험·검증·통제할 수 있는 AI 주권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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