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세계 제빵대회 챔피언 장경주 셰프 “석달간 내 삶 없었죠”
한국 여성 최초 ‘독일 이바컵 챔피언’
여주 ‘드롭베이커리’ 장경주 셰프

여주세종문화관광재단이 다음달 9~10일 신륵사관광지 내 출렁다리 일원에서 ‘제1회 여주골목대빵축제’를 연다. 경기도에서 처음 열리는 빵 축제다. 이 축제의 얼굴로 나서는 인물이 있다. 지난해 세계 제과제빵대회 독일 ‘이바(iba)컵’에서 한국 여성 최초로 우승한 여주드롭베이커리 장경주(43) 셰프다. 세계 정상에 오른 뒤에도 여주를 떠나지 않은 그를 만났다.
■ 태국 강의에서 돌아온 다음 날, 다시 반죽 앞으로

인터뷰 전날인 지난 12일 밤, 그는 태국 방콕에서 돌아왔다. 세계 각국의 유명 셰프들이 현지 수강생을 가르치는 세미나에 5박6일 일정으로 초청받아 다녀온 길이었다. 장 셰프는 “세계를 다녀보면 제빵 분야에서 한국은 손에 꼽힌다. 세계대회에 나가도 한국이 거의 정상권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무대는 여주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 6월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성수르치아바타’는 개점 직후부터 완판 행진 중이다. 그가 출연했던 제빵관련 서바이벌 TV 프로그램 ‘천하제빵’의 제작 투자자들이 출연 셰프 가운데 그를 택해 함께 만든 브랜드로, 그는 기술 전반을 총괄한다. 치아바타와 디저트 치아바타를 합쳐 30여 종을 선보이는데, 백화점 팝업에서는 하루 3천개 가량이 팔려 오후 서너 시면 매대가 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롯데월드타워·수원 스타필드 등 전국 팝업 일정이 연말까지 잡혀있다.
정작 그 프로그램에 나가는 일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미 세계대회 우승 타이틀을 가진 그에게 주변에서는 “굳이 왜 나가느냐”고 만류했다. 시그니처인 올리브 치아바타를 들고 나갔다가 초반에 탈락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불안도 있었다.
장 셰프는 “1라운드만 붙자는 마음으로 나갔는데 계속 올라가게 됐다”라고 말했다. 결승 문턱에서 탈락했지만 팀전에서는 팀장을 맡아 1위를 했고, 제과·제빵·공예를 두루 다루는 기술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얻었다. “방송에서 얻은 가장 큰 것은 인지도가 아니라, 내 기술력을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은 것”이라는 게 그의 자평이다.
■ 커피 창고 찾아 온 여주, 인생을 바꾸다

시작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요리사가 꿈이던 인문계 학생이 친구를 따라 제빵에 입문했다. 손에 익는 속도가 남달랐다. 대학 주최 제과제빵 대회에서 1위를 해 특례 입학했고, 이후 유명 베이커리에서 경력을 쌓았다. 올해로 26년째다.
1990년대 후반 제빵을 배우겠다는 학생을 보는 시선은 지금과 달랐다. “그때는 빵을 한다고 하면 공부 못해서 한다는 이미지였다. 빵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건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라고 그는 회고했다. 새벽 5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하고, 12월이면 한 달에 하루를 쉬던 시절을 지나왔다. 장 셰프는 “당시 100명 중 여자는 나 혼자였다. 여자가 이 업계에서 살아남기는 정말 힘들었다”라고 토로했다.
여주와의 인연은 계획이 아니었다. 2008년 남편과 함께 서울 부암동에서 커피숍을 열어 자리를 잡았지만, 독일에서 직수입한 커피콩을 쌓아둘 창고가 없었다. 임대료가 싼 여주에 창고를 구한 것이 이주의 계기였다. 그런데 여주에서는 커피가 생각만큼 팔리지 않았다. 장 셰프는 “그래서 다시 빵에 뛰어들었다. 여주에 온 건 지금 생각하면 운이 따라준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2015년 여주의 지금 자리에 문을 연 드롭베이커리가 그렇게 시작됐고, 그는 여주에서 제과제빵 최고 자격인 ‘기능장’을 땄다. 국내에 1천명 남짓만 보유한 자격이다. 요즘은 가게가 바빠지자 식당을 하던 어머니가 매일 일손을 거들러 온다. “어머니가 만드는 빵이 정말 예쁘다. 일찍 시작하셨으면 크게 되셨을 것”이라는 농 섞인 말에서 모녀가 함께 반죽하는 주방이 그려졌다.

대표 메뉴 올리브 치아바타는 부암동 시절부터 만들던 빵이다. 달라진 건 그가 아니라 시장이었다. “똑같이 만들어 왔는데 몇 년 전부터 올리브가 트렌드가 되면서 기본으로 해오던 것들이 뛰기 시작했다”라는 것이다.
여주 매장의 치아바타 반죽에는 대왕님표 여주쌀로 지은 밥알이 들어간다. 쌀가루가 아니라 밥알 그대로다. 장 셰프는 “빵을 자세히 보면 밥알이 다 보인다. 고소함과 풍미가 훨씬 뛰어나다”라고 설명했다. 여주시 지원을 받은 상인회의 의뢰로 ‘여주 땅콩엿 바삭쫀득 과자’를 개발해 지역 축제에서 판매되도록 한 것도 그다.
지난해 독일 이바컵 무대는 그의 26년 경험과 기술의 증명이었다. 협회 선발전을 거쳐 2인1조로 출전한 장 셰프는 석 달간 매일 같은 리허설을 반복했다. 그는 “눈을 감고도 손이 알아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훈련했다. 그 기간에는 내 삶이라는 게 없었다”라고 말했다.
장 셰프는 우승이 확정된 순간 기쁨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승의 만족감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왔다”라고 말했다. 고3 때 세운 그의 꿈은 세 가지. 기능장이 되는 것, 학생을 가르치는 것, 세계대회 국가대표가 되는 것. 장 셰프는 “2025년에 그 꿈을 다 이뤘다”라며 미소 지었다.

■ “함께 즐기고, 함께 살아남는 축제로”
축제 참여 제안에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여주에 감사하다.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역 소상공인 20여 곳과 명인급 업체가 한 축제에 섞이는 구조에 대한 우려를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장 셰프는 “축제의 핵심은 함께 즐기고 여주를 알리는 것이다. 경쟁 우려보다는 1회로 끝나지 않고 2회, 3회 이어질 연장성이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다만, 지역 베이커리 업계를 향한 조언에는 뼈가 있었다. 그는 “어느 집을 가도 제품이 똑같은 게 못마땅하다. 남을 따라해서는 롱런하지 못한다. 자기만의 특색 있는 제품,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시골에서 살아남으려면 독특해야 한다는 것이 10년 전 여주에서 루꼴라 빵과 프레첼을 팔기 시작한 그의 생존전략이기도 했다. 대를 이어가는 일본의 동네 빵집처럼 그 역시 “1대, 2대, 3대에 걸쳐 이어지는 베이커리를 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장 셰프의 다음 목표는 분명했다. “여주 특산품을 더 많이 활용하는 베이커리를 하고 싶다. 여주에 오면 무조건 들르는 집, 여주의 성심당이 됐으면 좋겠다.” 최근 성심당 사내 대회에 외부 심사위원으로 초청받기도 했다는 그는 성심당과는 다른 길을 보고 있다. 세계 챔피언의 다음 무대는 여전히 여주다.


여주/양동민 기자 coa007@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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