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의 대중음악 열전] 여가수 전성시대

경기일보 2026. 9. 15.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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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케이팝을 논할 때 대부분은 비티에스(방탄소년단)를 필두로 싸이, 빅뱅, 엔시티 등을 떠올린다. 빌보드 앨범 차트 수위를 스트레이키즈, 엔하이픈, 에이티즈 등 남자 아이돌 그룹들이 차례로 점령했지만 국내 음원 차트에 관한 한 걸그룹 혹은 솔로 여가수들이 지배자들이다.

일례로 1972년 MBC '10대 가수 청백전' 프로그램을 보면 남진, 나훈아, 김상진, 이상열, 이용복 남자 5인 옆에 조미미, 김상희, 하춘화, 정훈희, 문주란 등 다섯 여가수가 포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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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계 ‘성비 균형’…女가수 맹활약
남자와 다른 음악적 다양성으로 차별화
현재까지 이어져…K-팝 세계화에 기여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글로벌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케이팝을 논할 때 대부분은 비티에스(방탄소년단)를 필두로 싸이, 빅뱅, 엔시티 등을 떠올린다. 상징성은 이렇듯 남자들이 가질지 몰라도 현실성은 여가수들이 소유한다. 그 콘트라스트는 뚜렷하다. 단일곡의 음원 차트가 증거한다. 빌보드 앨범 차트 수위를 스트레이키즈, 엔하이픈, 에이티즈 등 남자 아이돌 그룹들이 차례로 점령했지만 국내 음원 차트에 관한 한 걸그룹 혹은 솔로 여가수들이 지배자들이다.

남자 아이돌 노래는 확실히 대중에게 특히 기성세대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지금도 멜론 지니차트 1위는 ‘러브 어택’의 걸그룹 리센느다. 리센느의 팬층은 다양하지만 상대적으로 기성세대 남성들의 지지가 압도적이다. 수년 전 브레이브걸스도 ‘삼촌팬들’이 몰려들면서 인기가 수직상승했다. 현재 금융권 모델도 여가수 우위를 읽을 수 있는 지표로 기능한다. 하나은행이 아이브의 안유진을 자사 모델로 선정해 매출이 오르자 우리은행은 같은 그룹의 장원영으로 대응했다. 기업은행은 여자 셋, 남자 둘로 여초인 혼성그룹 올데이프로젝트를 모델로 기용했고 신한은행의 모델은 걸그룹 있지의 유나가 주인공이다. 한마디로 걸그룹 판이다.

폭염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의 시작을 맞자, 일제히 컴백의 나래를 펼치는 것도 큰 흐름을 솔로 여가수들이 잡고 있다. ‘젊은 거장’ 소리를 듣는 아이유, 슈퍼스타 걸그룹 블랙핑크의 리사와 지수, ‘벌써 12시’로 솔로 여가수 입지를 다진 청하가 모두 9월 들어 신작 싱글을 냈다. ‘아이들’의 음악을 전담한 실력자 전소연은 ‘퇴사할게여’라는 곡으로 솔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퇴사를 시사하는 신곡의 제목 때문에 그룹 아이들의 해체 소문이 돌았으나 스포일러로 밝혀졌다. 올데이프로젝트도 곧 댄스의 장으로 돌아온다.

가요계는 과거와 다르게 영상이 주도하는 음악계 풍토에서 아무래도 비주얼 측면에서 유리한 걸그룹과 여가수의 득세가 당연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여가수들의 뚜렷한 이목구비는 댄스와 더불어 케이팝 세계화의 주 캐릭터다. 성평등의 시대에 여성들의 활약이 더 많이 이뤄지고 요구되는 추세는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성비(性比) 균형이 최근 경향이 아니라 국내 음악계의 경우 대중가요의 여명기인 1930년대부터 가시화되었고 저 옛날 1970년대 텔레비전의 10대 가수 쇼는 의도적으로 남자 가수 다섯, 여자 가수 다섯의 포맷을 고집했다. 일례로 1972년 MBC ‘10대 가수 청백전’ 프로그램을 보면 남진, 나훈아, 김상진, 이상열, 이용복 남자 5인 옆에 조미미, 김상희, 하춘화, 정훈희, 문주란 등 다섯 여가수가 포진했다.

아무리 가부장제가 판치는 엄혹한 시절이라 해도 가요계는 평등이란 이름으로 바깥세상과 스스로 격리했다고 할까. 수적 맞추기란 의미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전체를 보는 그 은근한 전통이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는 것이다. 여가수 활약은 성의 문제를 넘어 음악의 예술적 풍요로움 쪽으로도 순기능을 발휘한다. 남자와 기본적으로 소리의 질감과 성격 그리고 이미지 등 표현세계가 다른 여자가 맹활약한다는 사실은 우리 대중음악이 더 넓은 소리의 팔레트와 확장된 이미지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특화, 차별화는 결국 다양화로 향하게 되어 있다.

아마도 케이팝의 ‘글로벌 현상’은 우리 여가수의 분발에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양하니 팬들도 다양하게 구성된다. 성적으로 남자 아이돌에게 쏠렸다면 케이팝의 파괴력과 규모는 줄어들었을 게 분명하다. 조용필의 옛노래 ‘여와 남’ 가사처럼 ‘지구 위의 반은 남자, 지구 위의 반은 여자’다. 걸그룹과 여가수들의 분투에 박수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개성 추구만 얹힌다면 다양성이 절실한 케이팝의 미래는 더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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