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78세 포항 산악인 손동학씨 “산에 가면 내일 살 힘 생겨”

서의수 기자 2026. 9. 1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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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에 엘브러즈 이어 78세엔 3900m 아라콜패스 완주
35년간 국내외 명산 누벼…“다음 목표는 네팔 메라피크”
▲ 최근 키르기스스탄 아라콜패스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온 손동학(78·포항시) 씨. 서의수 기자

"산에 다녀오면 내일을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힘이 닿는 한 계속 산을 오르고 싶습니다."

70세에 유럽 최고봉 엘브러즈 정상에 섰던 포항의 노장 산악인이 8년 만에 중앙아시아의 고산 트레킹 코스를 완주하며 식지 않은 도전정신을 보여줬다.

주인공은 최근 키르기스스탄 아라콜패스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온 손동학(78·포항시) 씨다.

아라콜패스는 해발 3900m 안팎의 고산지대로, 가파른 경사와 미끄러운 자갈길이 이어지는 난도 높은 코스로 알려져 있다. 패스 아래에는 빙하가 녹아 형성된 아라콜 호수와 톈산산맥의 봉우리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지난 7월 국내에서 모인 일행들과 키르기스스탄을 찾은 손 씨는 2박 3일에 걸쳐 아라콜패스를 넘었다. 일행 가운데 최고령이었던 그는 젊은 참가자들과 함께 전 일정을 소화했다.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구간은 절벽처럼 가파른 경사와 발이 밀리는 자갈길이 이어졌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일부 참가자는 두통 등 고산 증세를 겪기도 했다.

해외 고산을 여러 차례 경험한 손 씨는 출국 전 의료기관에서 고산병 예방약을 처방받아 준비했다. 고산 증세로 어려움을 겪는 일행에게 자신이 준비한 약을 나눠주며 함께 패스를 넘었다.

손 씨는 "마지막 구간은 경사가 심하고 자갈이 미끄러워 한 걸음씩 내딛는 것도 쉽지 않았다"며 "그래도 시작한 산행은 끝까지 완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걸었다"고 말했다.

힘겨운 오르막 끝에서 마주한 아라콜 호수와 주변 산맥은 고된 산행을 잊게 했다.

그는 "호수와 폭포, 산맥이 한눈에 펼쳐지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며 "정상에 오르기 전에는 끝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하지만, 막상 올라서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고 회상했다.

▲ 손동학 씨가 지난 7월 20일 해발 3920m 아라콜패스에서 등정 현수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손동학 제공

△포항 뒷산에서 시작된 35년 산행

손 씨는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낸 포항 토박이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방위산업체인 풍산 연구소에서 근무했으며, 정년퇴직 후에도 줄곧 포항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가 처음 산을 찾은 것은 40대 초반이었다. 당시 신경성 위장질환으로 고생하던 그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동네 뒷산을 걷기 시작했다.

가볍게 시작한 산행은 점차 전국의 명산과 주요 산줄기를 종주하는 도전으로 이어졌다. 산악회 활동을 시작한 뒤에는 백두대간을 비롯한 국내 장거리 종주에 나섰고, 해외 산행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손 씨는 "처음에는 몸이 좋지 않아 집 근처 산을 걷기 시작했다"며 "한 산을 오르고 나니 다른 산이 궁금해졌고, 산악회 사람들과 전국을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외 산에도 도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해외 산행은 약 25년 전 중국의 산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이후 일본 북알프스와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네팔, 중국 차마고도, 캐나다 로키산맥 등 세계 각지의 산과 트레킹 코스를 다녔다.

2017년에는 카자흐스탄과 중국·키르기스스탄 국경 일대의 고봉인 한텡그리를 찾았고, 이듬해인 2018년에는 해발 5642m의 엘브러즈 등정에 성공했다.

수많은 산을 다녔지만 가장 큰 성취감을 안겨준 곳은 여전히 엘브러즈다.

손 씨는 "지금까지 다녀온 곳 가운데 풍경은 캐나다 로키산맥이 가장 기억에 남고, 정상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은 엘브러즈가 가장 컸다"며 "아라콜패스는 넓은 초원과 호수, 산맥이 이어지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 손동학 씨가 키르기스스탄 아라콜패스에서 일행들과 등정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손동학 제공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체력관리

78세에도 젊은 사람들과 고산 트레킹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은 특별한 보약이 아닌 꾸준한 운동이다.

손 씨는 계절과 관계없이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난다. 텃밭을 돌보지 않는 날에는 집 주변을 2시간가량 걷는다. 주말에는 산악회 회원들과 15㎞ 안팎의 산행을 소화한다.

그는 "평소 운동을 하지 않고 일요일에만 산에 가면 숨이 차고 훨씬 힘들다"며 "매일 꾸준히 몸을 관리해야 젊은 사람들과 5∼6시간을 걸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항에서 추천하고 싶은 산으로는 내연산과 보경사 계곡을 꼽았다.

손 씨는 "내연산 향로봉과 보경사 계곡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곳"이라며 "포항은 바다뿐 아니라 아름다운 산과 계곡도 함께 품고 있는 도시"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고령의 손 씨가 해외 고산을 찾을 때마다 걱정하며 이제는 산행을 줄일 것을 권한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손 씨는 우선 80세까지 산행을 계속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80세가 되는 해에는 오랜 기간 함께 산을 오른 산악회 회원들을 초청해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마지막 도전지로 마음에 품고 있는 곳은 네팔의 메라피크다. 해발 6000m가 넘는 고봉인 만큼 가족의 동의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지만, 건강이 허락한다면 한 번은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손 씨는 산행이 단순히 정상에 오르는 행위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힘겨운 오르막을 견디는 과정에서 의지를 기르고, 정상에서 얻은 활력이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산을 오르는 사람에게 산행은 좋은 내일을 위한 밑거름"이라며 "오늘 산에서 흘린 땀과 성취감이 내일을 살아갈 활력소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체력이 저절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매일 꾸준히 움직이고 준비해야 산에 오를 수 있다"며 "최소한 80세까지는 계속 산을 다니고, 그 이후에도 건강과 힘이 허락한다면 산행을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