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 초가을 바다가 차려낸 보약, 병어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늦여름 바다에 은빛 병어가 들어온다.
신선한 병어는 회로 먹을 때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본래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고, 찜으로 만들면 수증기의 힘만으로 살이 촉촉하게 익는다.
봄 어장이 끝나면 병어가 많이 잡히는 바다로 어선이 몰려들었고, 포구에는 생선을 사고파는 파시가 섰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사람의 노동과 생선을 손질하는 가족의 손길, 저녁 밥상에서 한 마리를 나누어 먹던 정이 병어 한 마리 안에 함께 담겨 있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병어 [연합뉴스 자료 사진]](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5/yonhap/20260915104549146azxq.jpg)
늦여름 바다에 은빛 병어가 들어온다. 납작하고 둥근 몸에 살이 도톰하고 잔가시가 적어 젓가락으로 살을 떼어 먹기 좋은 생선이다. 예부터 우리 밥상에서 병어는 생선 한 마리 그 이상의 무게를 지녔다. 제철 바다가 사람에게 건네는 늦여름의 선물이었고, 초가을까지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한 마리를 나누어 먹던 생활문화였다.
문헌 속 병어, 수백 년을 이어온 여름 생선
'신증동국여지승람' 토산조에는 경기도와 전라도 몇몇 지방의 토산물로 병어가 실려 있어, 수백 년 전부터 병어를 잡아 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서유구는 '난호어목지'에서 병어를 창(鯧)이라 부르고 서·남해에서 나는데 호서의 도리해에서 많이 난다고 적었다. 그의 다른 저서 '전어지'에는 병어가 서남해에서 나며 반드시 떼를 지어 다니기 때문에 병어(兵魚)라 불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흑산도 유배 시절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는 병어가 납작하다는 뜻의 편어(扁魚)로 나온다. 속명은 병어(甁魚)라 했고, 등과 배가 불쑥 나와 사방으로 뾰족한 모양에 입이 극히 작으며 맛이 좋고 뼈가 연해 회·구이·국 어디에도 좋다고 설명했다. 몸집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달랐다.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크기는 자랭이, 어른 손바닥만 한 것은 병치, 다 자란 것은 병어, 가장 큰 것은 덕자로 구분해 불렀다.
전통 의서가 전한 약선, 그리고 지나침에 대한 경계
중국 당나라 때 본초학서인 '본초습유'는 병어의 성미가 평(平)하고 맛은 달며(甘) 독이 없다고 기록했다. 위(胃)와 간경(肝經)으로 들어가 기운을 더하고 피를 길러주며, 힘줄의 경련을 가라앉히고 뼈를 튼튼하게 한다고 설명한다. 청나라 학자 왕사웅이 지은 '수식거음식보'에는 뼈가 적고 배에 살이 많아 풍미를 즐길 수 있는데 작은 수컷이 좋으며, 말리거나 젓갈을 담글 수도 있다는 구절이 있다.
다만 같은 문헌은 지나친 섭취를 경계하는 기록도 함께 남겼다. '본초습유'는 병어 배 속의 새끼는 독이 있어 먹으면 설사를 일으킨다고 했고, '수식거음식보'는 많이 먹으면 옴이 생기고 풍이 동한다고 적었다. 좋은 음식도 정도를 지켜야 한다는 옛사람들의 당부인 셈이다.
병어의 성질을 두고는 문헌마다 설명이 갈리기도 한다. '동의보감'은 병어의 성질이 차고 맛이 짜지만, 독이 없어 수종과 부종을 치료하고 소변이 잘 나오게 한다고 적었고, '본초강목'은 소화불량과 팔다리 저림에 효과가 있다고 기록했다.
문헌마다 성질을 다르게 보았지만, 기력을 보하고 소화를 돕는다는 큰 줄기는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현대 영양학이 확인한 것들
국립수산과학원 자료를 보면 병어 100g에는 오메가-3 지방산이 1천460㎎ 들어 있고, 이 가운데 DHA가 661㎎, EPA가 478㎎을 차지한다. 저지방·고단백 흰살생선인 데다 칼슘과 인, 마그네슘 등 무기질도 고루 갖추고 있어 뼈 건강이 신경 쓰이는 성장기 어린이나 중장년층에게도 부담 없는 생선으로 꼽힌다. 다만 병어가 비타민 B1·B2가 특별히 풍부하다는 이야기는 인터넷에 떠도는 부정확한 정보라는 지적도 있다. 확인되지 않은 효능을 부풀리기보다, 수치로 확인되는 오메가-3와 단백질이라는 장점에 주목하는 편이 정직하다.
해산물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주의가 필요하고, 생선은 무엇보다 신선도와 위생이 우선이다. 전통 문헌들이 한결같이 과식을 경계했듯, 아무리 좋은 생선도 몸에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이 먼저다.
병어는 겨울철 대만 북부 지역에서 이동해 여름철 국내 연안으로 올라온다. 봄에 살을 찌우고 알을 배기 시작해 6월경 산란기를 맞기 때문에 여름철 병어가 제철을 맞는다. 전국 병어 생산량의 70%가량은 전남 신안군에서 잡힌다. 신안군은 매년 병어축제를 열어 제철 병어의 풍미를 알린다.
![병어찜 [연합뉴스 자료 사진]](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5/yonhap/20260915104549318sdba.jpg)
병어는 다른 재료와 만날 때 비로소 제맛을 낸다. 조림에 무와 감자를 깔면 담백한 생선살에 채소의 단맛이 스며든다. 무에 함유된 '다이아스테이스'라는 소화효소가 병어의 영양소를 더 효과적으로 흡수하도록 도와주어 궁합이 좋다. 생강과 파는 비린내를 잡고 향을 돋우며, 깻잎은 병어 특유의 풍미를 살려준다. 맑은탕으로 끓이면 무와 미나리가 어우러져 부담 없는 한 그릇이 된다.
신선한 병어는 회로 먹을 때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본래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고, 찜으로 만들면 수증기의 힘만으로 살이 촉촉하게 익는다. 소금을 살짝 뿌려 구우면 껍질은 노릇하고 속살은 담백해지며, 튀김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아이부터 어른까지 두루 좋아한다.
![병어회 한상 [연합뉴스 자료 사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5/yonhap/20260915104549511vxoq.jpg)
밥상 너머의 병어
병어는 과거 전라도와 섬마을 사람들에게 특별한 생선이었다. 봄 어장이 끝나면 병어가 많이 잡히는 바다로 어선이 몰려들었고, 포구에는 생선을 사고파는 파시가 섰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사람의 노동과 생선을 손질하는 가족의 손길, 저녁 밥상에서 한 마리를 나누어 먹던 정이 병어 한 마리 안에 함께 담겨 있었다. 그래서 병어는 맛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바다의 냄새,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병어조림, 형제끼리 한 점이라도 더 먹으려 젓가락을 다투던 기억까지 함께 딸려 온다.
옛날에는 흔했던 병어가 이제는 귀한 생선이 됐다. 그래도 음식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제철 바다에서 얻은 생명을 정성껏 손질하고, 가족과 나누어 먹으며, 몸에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 그것이 선조들이 지켜온 가장 평범하면서도 깊은 지혜였다. 은빛 병어 한 마리에는 바다의 기운과 선조들의 지혜, 가족의 따뜻한 밥상이 함께 담겨 있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배우 백일섭 사진 무단사용 주방용품 업체…법원 "1억원 배상" | 연합뉴스
- 120만원짜리 단체여행, 알고 보니 60만원…차액은 '수고비?' | 연합뉴스
- "파리 잡으려고"…마을주민들 매운탕에 농약 넣은 60대 실형 | 연합뉴스
- '10대 제자 수십차례 성폭행' 교회 교사, 항소심도 징역 6년 | 연합뉴스
- 실종 신고된 50대, 진도 야산서 숨진 채 발견 | 연합뉴스
- 휴대폰 검사·홈캠 감시·폭행…여친 학대치사 30대 첫 재판 | 연합뉴스
- '요리에 개미 토핑' 미슐랭2스타 레스토랑 대표 벌금 1천500만원 | 연합뉴스
- "부모 욕 해서" 여자친구 살해한 20대 체포 | 연합뉴스
- 직장서 여직원 책상 밑·화장실 불법촬영 40대 징역 3년 | 연합뉴스
- 中서 배변사고에도 대회 우승 호주여성…현지 음료 때문에 배탈?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