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 세계한글작가대회 축사 “어느 진영에도 자유로운 작가, 시인이 되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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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세계한글작가대회의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군중의 박수보다 자신의 양심을 따르고, 어느 권력에도 어느 진영에도 자신의 정신을 맡기지 않는 자유로운 작가, 시인이 되어주십시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는 한민족 5천년 역사상 제1대 사건이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제12회 세계한글작가대회의 성공과 여러분 모두의 건필과 문운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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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세계한글작가대회 축사
-문학과 권력의 관계를 생각한다-

존경하는 국내외 작가 여러분,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한글로 시대와 인간을 기록하고 계신 문학인 여러분!
제12회 세계한글작가대회의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특히 이번 대회를 준비해 오신 심상옥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장님, 김홍신 조직위원장님, 김종회 집행위원장님, 김경식 사무총장님을 비릇한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며칠 전까지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직을 내려놓고 다시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와 오늘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1963년 11월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 국민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추도식장에서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권력이 인간을 오만으로 몰고갈때 시는 인간의 한계를 일깨워 줍니다“
이 연설 며칠 후 케네디는 암살 당합니다.
혹독한 권력의 칼날에 휘둘려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 정약용 선생은 말합니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는 마음이 없는 시는 시가 아니다.”
평생 법률 특히 헌법을 공부하고 실무를 맡으면서 때로는 권력과 맞서고, 때로는 공직을 맡아 권력의 깊숙한 내부도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간간히 문학의 언저리도 배회했던 사람으로 오늘 축사에 갈음하여 한 가지 화두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권력과 문학과의 관계입니다.
제가 오랜 세월 권력과 인간을 지켜보면서 얻은 결론은 단순합니다.
권력은 지나가지만 문학은 남는 다는 것!
황제는 사라졌지만 사마천의 『사기』는 남았고, 왕조는 무너졌지만 두보와 이백의 시는 살아 있습니다.
권력은 오늘을 지배할 수 있지만 내일의 기억까지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그 기억을 만들고 기록하는 사람이 바로 작가입니다.
그렇기때문에 권력과 문학 사이에는 언제나 긴장이 있어야 합니다.
권력은 하나의 목소리를 원하지만 문학은 수많은 목소리를 만들어냅니다. 권력은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말하지만 문학은 끊임없이 묻습니다.
“과연 그런가?”
이 질문이 살아 있는 사회가 자유로운 사회입니다.
조지 오웰이 전체주의를 경계했던 것도 권력이 언어를 지배하고, 언어를 통해 인간의 생각까지 지배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거짓을 거짓이라 하고, 불의를 불의라 하며, 고통받는 사람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야 합니다. 그 기록을 통해서 권력의 오만을 경계하고 경고해야 합니다.
내가 반대하는 권력의 잘못에는 분노하면서 내가 지지하는 권력의 잘못에는 침묵한다면 진정한 문학인, 지식인의 자세라 하기 어렵습니다.
진영논리가 양심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문학이 권력의 언어를 대신하는 순간 문학은 선전이 됩니다. 그리고 문학이 권력의 추종자가 되는 순간 문학도 죽고 권력도 타락합니다.
권력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박수가 아니라 불편한 질문입니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비판받지 않을 권리를 갖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은 비판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평생 헌법을 공부하며 얻은 중요한 결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과 문학은 서로 멀리 있지 않습니다.
헌법이 자유의 제도라면, 문학은 자유의 정신입니다.
헌법은 인간의 존엄을 선언하지만 문학은 존엄을 잃은 한 인간의 고통을 보여줍니다. 헌법은 자유를 보장하지만 문학은 자유를 빼앗긴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저는 지난 1년 동안 국민통합의 현장에서 우리 사회의 갈등을 가까이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위기는 생각이 다르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민주사회에서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진짜 문제는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내 편의 잘못에는 눈을 감고 상대편의 잘못에는 분노합니다. 진영이 인간보다 앞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학은 다릅니다.
정치가 사람을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눌 때, 문학은 그 사람을 다시 한 인간으로 만나게 합니다.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며 나와 다른 삶을 이해하고, 한 편의 시를 통해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낍니다.
저는 바로 거기에서 통합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통합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의 바탕은 관용과 진실이고 그 출발은 타인에 대한 상상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가장 오래되고 깊은 국민통합의 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 자신부터 진영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저는 젊은 법조인들에게 종종 “헌법을 심장에 품은 단독자가 되라”고 말해 왔습니다.
오늘은 문학인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대의 단독자가 되어주십시오.”
군중의 박수보다 자신의 양심을 따르고, 어느 권력에도 어느 진영에도 자신의 정신을 맡기지 않는 자유로운 작가, 시인이 되어주십시오.
시인 김수영이 평생 붙들었던 것도 결국 자유의 문제였습니다.
바람이 불 때 눕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풀처럼, 문학은 권력보다 약해 보이지만 끝내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로운 정신을 담는 우리의 그릇이 바로 한글입니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는 한민족 5천년 역사상 제1대 사건이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권력자만을 위한 문자가 아니라 평범한 백성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기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문자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글에는 처음부터 인간 존중과 자유의 정신이 흐르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제 공직을 내려놓고 시민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자리를 내려놓았다고 해서 마땅히 말하고 행동해야 할 책임까지 내려놓지는 않았습니다.
권력은 지나갑니다.
정권도 지나갑니다.
시대의 유행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좋은 문장은 남습니다.
좋은 시는 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지켜낸 문학은 끝내 살아남습니다.
어쩌면 역사의 마지막 승자는 권력자가 아니라 그 시대의 진실을 끝까지 기록한 작가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모두가 어느 편의 작가가 아니라 인간의 편에 선 작가, 권력의 언어가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자유로운 단독자로 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제12회 세계한글작가대회의 성공과 여러분 모두의 건필과 문운을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2026. 9. 15
전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장, 변호사
이 석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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