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수사도북 왕복만 3번…"무모하다구요? 준비가 반이죠" [산지컬 100]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극한 산행은 단순히 체력만 좋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에 홀로 남아 라이트 불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보다 더 마음이 평화로울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산행도 불수사도북이 안겨줬다.
'과학적으로 등산'하는 것의 최종 목표는 사실 수도권 55산 완주가 아니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극한 산행은 단순히 체력만 좋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산을 대하는 올곧은 태도와 이념, 탄탄한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춰야만 안전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넷플릭스 인기 예능 <피지컬100>에서 피지컬이 뛰어난 이를 탐구했듯, 월간<山>은 '산지컬'이 뛰어난 이들을 만나본다. _ 편집자

차 사고였다. 1980년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버지는 1960년대 후반부터 당시로선 희귀한 취미인 사이클을 탔다. 동호회도 만들고 인천에서 임진각까지 라이딩을 즐길 정도로 사랑이 남달랐다. 사고도 사이클을 타다가 당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아버지가 가셨다. 어머니는 삼형제에게 "너희는 절대 자전거를 타지마라"고 꾹꾹 눌러 말했다.
하지만 열 살 아들은 아버지의 그림자를 좇는다. 어머니 몰래 페달을 밟았다. 10년, 20년 안장에 앉은 시간이 길어지니 아버지가 왜 이토록 사이클을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워낙에 독특하고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아버지라면, 뭔가 더 극한의 도전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검색해 보니 서울 잠실에서 전남 해남까지 단독으로 사이클을 타고 간 기록이 안 보였다. 자전거도로도 아니고 순수 국도로 가야 하기에 굉장히 위험했고, 단독으로 타면 자기구조도 못하고 바람을 번갈아 막아줄 사람도 없어 난이도가 높았다. 하지만 이미 '아버지라면, 이 모험을 했을 것'이란 생각에 사로잡혔다.
2008년에 그렇게 혼자서 37시간을 달려 해남에 도착했다. 고독하고, 처절하고, 힘든 길이었다. 완주한 후 어머니께 사실을 고했다. 어머니는 그저 "내가 말렸어도 너는 그럴 것 같았다"고 했다.

그렇게 사이클로 시작한 도전의 삶은, 어느 변곡점을 넘어 어둠이 눌러앉은 산으로 향하게 됐다. 등산은 트레일러닝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용인에서 혼자 트레일러닝대회를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트랭글의 유명 동호회 '짐승종주클럽'을 만들었던 닉네임 '백무' 구용회씨다.
높이 300m 산이 바꿔 준 삶
구씨는 어린 시절을 "부유했다"고 갈음했다. 부모님이 의류사업을 했는데 당시 유명 연예인들의 무대의상을 제작하는 수준이었다. 1970년대 후반인데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도 있고, 움직이는 장난감도 있고 그랬다.
"부모님께서는 아들이 셋이니 한 명은 공무원, 한 명은 천주교 신부, 한 명은 청와대 경호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 기억인데 '누가 경호원 할래?'하니 제가 손을 번쩍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떠난 이후에도 주어진 꿈은 그대로 품었다. 사격, 격투기, 태권도, 수영을 하면서 평균 이상의 체력을 갖췄다. 단 평균 이상 정도가 한계였다. 엘리트 체육인의 성적은 내지 못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사업은 산 같았다. 오르면 내려가고, 내려가면 올랐다. 그렇게 인천과 평촌에서 각각 부침을 겪으며 사업을 이끌었다. 운동은 꾸준히 했다. 마라톤도 풀코스를 세 번 뛰고, 인천에서 부산까지 633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국토종주도 두 번 정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산은 일절 가지 않았다. 첫 산의 경험이 강렬했던 탓일 수도 있겠다. 대학생 때 설악산으로 MT를 갔었다. 지금 되돌아봐도 그저 힘든 기억밖에 없었다. 마라톤은커녕 운동도 안 했던 20대 초반이라 그저 '사람들은 대체 왜 등산을 하는 건데?'란 생각밖에 안 들었다. 어차피 내려갈 걸 왜 올라 가냐는 거다.
"40대 초반에 인생의 절정기를 맞았었습니다. 사업이 가장 번창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대학교 강의도 나갔었어요."
가장 높게 올랐기에, 가장 낮게 떨어졌다. 부도가 났다. 가진 걸 전부 잃었다. 재산, 가정 모두 깨져버렸다. 철저하게 혼자가 됐다. 그렇게 홀로 남게 되자, 더 철저히 혼자가 돼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뒷산을 향했다. 경기도 용인 와우정사 뒷산인 은이산(363m)이다.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무슨 코스로 어떻게 오르고 내려올지에 대한 생각은 못 했다. 시간도 몰랐다. 산에 들고 보니 밤이었다. 혼자 라이트를 켜고 야간산행을 했다. 거의 20년 만에 첫 등산이라 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뻥튀기 3개만 들고 발걸음 닿는 대로 마구 걸었다. 지금 생각해도 몇 km 쯤을 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경험이 너무 좋았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에 홀로 남아 라이트 불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보다 더 마음이 평화로울 수 없었다. 또 해질녘과 동틀 무렵 희미하게 실루엣이 드러나며 선이 굵어지는 산 그림자가 그토록 멋있을 수 없었다. 꽃과 나무 하나 보이지 않고 색 빠진 산의 매력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트랭글'로 종주산행 입문
"그게 2013년이었는데, 그렇게 산에 매료되고 찾아보니 산행앱인 '트랭글'이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였어요. 바로 설치하고, 전국의 산을 미친 듯이 헤맸죠. 그리고 곧 거기에 커뮤니티 기능이 있단 걸 알게 되어서 '짐승종주클럽'을 만들었습니다. 이 클럽의 취지는 '등산, 걷기, 마라톤, 자전거 4개 종목을 모두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한 번 대차게 땀을 흘려보자'는 거였죠."
소싯적에 사이클을 좀 탔겠다, 모임장이기도 하니 사람들이 하자는 건 다 했다. 자전거 200km 타자고 하면 타고, 100km 걷자고 하면 걷고, 50km 뛰자고 하면 뛰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도전의 영역이 넓어졌다. 등산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꽤 고수여야 완주할 수 있는 '불수사도북'을 했다. 그런 와중에 사람들이 '가팔환초'를 가자고 하자 "그게 무슨 보약이에요?"라고 반문할 정도로 산을 몰랐다. 어쨌든 폭발적으로 등산을 하니 성장속도가 빨랐다. 보통 7~8년 걸린다는 유명한 종주코스를 등산을 시작한 당해에 몰아치워서 해버렸다.
"불수사도북을 시작으로 지리산, 남알프스, 남부7산, 덕유산육구종주, 무등산대종주 등을 했어요. 지리산 종주 땐 꼬박 8시간 동안 비를 맞고 했었죠. 분명 일기예보는 비가 조금 온다고 해서 갔던 건데 산의 날씨가 그럴 줄 몰랐어요."
무대와 공간이 계속 확장됐다. 그중에 가장 애착이 간 건 불수사도북, 강북5산. 그는 "고도표가 인생 그래프하고 너무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다섯 개의 산을 급격하게 오르내리는 과정이 그래서 재밌었다. 40번 완주했을 때까진 셌는데, 이후로는 카운트를 그만뒀다. 왕복도 3번 해봤다. 불수사도북도사수불이다.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산행도 불수사도북이 안겨줬다. 불수사도북을 왕복하고 거기에 북한산둘레길을 얹는 147km였다. 이렇게 걸으니 이 북한산둘레길 63km가 "역대 가장 힘들었던 코스"로 남았다.
사실 이건 상당히 특이한 코스다. 불수사도북을 왕복으로 타고 나서 60여 km를 더 걸을 수 있을 만한 체력이 남아 있다면 대부분 3회전에 도전한다. 불수사도북도사수불수사도북이다. 그런데 이 대신 북한산둘레길을 택했다. 그는 "기질이 그렇다"고 했다.
"백두대간이나 정맥, 지맥처럼 사람들이 딱 정답이라고 정해 놓고 다니는 길들은 왠지 적성에 안 맞아요. 말도 안 되고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가는 게 제 패턴에 맞았어요. 그 일환으로 트랭글을 살펴보니 불수사도북 왕복 후 북한산둘레길을 걸은 기록이 없기에 해봤던 도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백두대간도, 정맥, 지맥, 기맥 모두 맛만 봤다. 각 산줄기별로 유명하다는 구간만 몇 번 가봤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하는 건 애초에 시도도 안 했다. 다만 한 번에 완주할 수 있다면, 했다. 대표적으로 수도권 55산 무지원 단독 종주였다. 장장 230km의 산길이다.

"나이 50이 되는 해였어요. 그래서 지난 50년은 어떻게 살았고, 남은 생은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그런 한 가지 화두를 산에서 풀고 싶었어요. 그때 떠올린 게 수도권 55산 무지원 단독 종주죠. 산행 경력은 고작 6~7년인 걸 생각하면 굉장히 무모했습니다.
그래도 나름 준비는 했어요. 저는 등산도 과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산행 플랜도 과학적으로 짜려고 했죠. 덩달아 6개월 동안 잠 안 자는 연습을 하고, 종주 중 카페인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커피도 끊었어요. 234km를 97시간에 걸쳐서, 총 6시간만 자면서 걸었습니다. 찾아보니 보통 지원을 받아서 10일, 14일 정도로 하거나 자면서 간 분들은 있더라고요."
'과학적으로 등산'하는 것의 최종 목표는 사실 수도권 55산 완주가 아니었다. 보통 이 정도 거리를 걷고 나면 최소 일주일은 먹고 자는 것 빼곤 걷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회복을 위해서다. 그런데 그는 55산 완주 후 단 3일 뒤에 지인과 함께 동두천 6산 30여 km를 완주했다. 234km를 걸은 것보다 이 30여 km를 걸은 게 훨씬 기쁘고 자랑스럽단다. 그는 "내가 생각한 것과 실기가 맞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완주하며 데미지를 최소화했고, 회복도 생각한 대로 잘됐다는 뜻이다.
과학적으로 걸으면 등산이 20% 쉽다
이게 중요하다. 사실 극한 산행을 하는 커뮤니티에 있다 보면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입문하고, 또 그만큼 꽤 많은 사람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걸 볼 수 있다. 부상 때문이다. 단순히 어려운 산행을 못 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몸이 망가지면, 정신도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측면에서 부상을 방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이왕이면 조금 더 맞는 보행법을 하고, 조금 더 맞는 호흡법을 하고, 에너지보충도 계산해서 먹고, 맞는 패턴으로 쉬자는 거죠. 더 쉽게 말하자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페이스를 유지하는 겁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끝 지점에 도달할 때 몸을 탈탈 갈아 넣어서 쓰러지듯 몸을 던져 넣는 거예요. 그게 골병드는 스타일이거든요."
수도권 55산도 그렇게 걸었다. 테이핑과 아이싱 같은 기본을 철저히 지켰고, 정해진 시간만큼 걷고, 쉬고, 걸었다. 그게 과학이다. 그게 무너지면 장거리나 단거리나 힘이 든다. 그리고 좀 더 심화하자면 거리와 경사도, 지형에 따라서 여러 보행법과 페이스를 쓴다. 그는 "다섯 가지 정도 보행법을 혼용한다"고 했다. 흔히 아는 레스트 스텝, 타이거 스텝 등이다. 그러면 확실히 데미지가 적다고 했다. 100km를 간다고 쳤을 때 체감상 15~20% 정도 절감된다.
"물론 정답은 없어요. 각자 몸에 맞는 페이스와 보행법, 호흡법이 모두 다르거든요. 그러니 자기 몸에 맞는 걸 찾아야 되요. 그건 이것저것 시도해 봐야만 알 수 있어요."
멘털 관리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 가지 화두를 정해 놓고 걷는 식으로 이를 해결한다. 몸이 97시간 22분에 234km를 걷는 동안 머리는 어떻게 살았는지 반추하고, 어떻게 살지 결심하고 있었다. 그는 천마산 전후, 낙엽이 파도치듯 흩날리는 한 등산로에서 어느 정도 매듭을 짓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정말 멋진 사람" Vs "이상한 사람"
앞서 말했듯, 그는 정해진 유명 코스들을 걷는 데는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그래서 직접 코스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첫 실행은 경기도 용인에서 출발해 양평 용문산까지 가는 코스다. 개인적으로 용문산을 가본 적이 없어서 관심이 일던 차에 먼저 다녀온 지인들이 "힘든 산이니 가급적 혼자 가지 마라"고 하는 게 묘하게 자존심을 흔들었다. 이에 걸어서 다녀오겠다는 발상을 떠올렸다. 용인터미널에서 출발해 산줄기 80km를 연결해서 걸어 용문산 정상(1,157m)에 올랐다. 30시간 조금 안 걸렸다.

용인터미널에서 마찬가지로 양주시청까지 걸어 가봤다. 가급적 도로나 마을길이 아닌 산줄기를 탔다. 정 어쩔 수 없을 때만 도로로 갔다. 길눈이 좋은 편이라 딱히 알바를 하는 일도 없었다. 지도를 보고 코스 계획을 수립하면, 몸이 산에 있어도 그대로 따라 움직였다.
"용인터미널에서 평촌도 걸어갔었어요. 산악회 한 회원이 산에서 크게 다쳐서 평촌 소재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습니다. 병문안을 가야 되는데 너무 편하게 교통편을 이용해 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길을 한 번 만들어서 걸어서 가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친 사람의 고통을 같이 느끼려는 병문안이죠. 용인터미널에서 출발해서 한남정맥을 좀 타다가 강남 16산을 또 타다가 관악산 밑으로 해서 안양을 지나 평촌에 갔죠. 70km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하거나 "이상한 사람".

현재 꼭 챙기는 등산장비 두 가지도 좀 멋지고 이상하다. 하나는 얼굴모기장이다. 4월부터 10월까지 벌레나 해충, 특히 묵은 산길을 걷는 일이 많은 그에겐 거미줄을 차단해 주는 효과가 탁월해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가볍고 통기성도 좋고, 답답하지도 않다. 사람이 많은 산이면 '어디서, 얼마에 샀냐'는 질문을 지금도 받는다고. 다른 하나는 레몬즙이다. 아르기닌, 크레아틴 등을 다 먹어 봤는데 레몬즙이 젖산 분해 효과가 뛰어나 잘 맞았다.
"용인 트레일러닝 대회 만들 것"
최근에는 또 하나 '멋지고 이상한'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있다. 시작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의 한 등산모임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200km 코스를 걷기로 했는데 사람들의 행색이 중등산화를 신고 큰 등산배낭을 메고 온 자신과 영 딴판이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러닝조끼에 트레일러닝화를 신고 있었다. 200km인데도 말이다.
"코로나 시기 마라톤을 취미로 하던 분들이 산으로 넘어오면서 생긴 변화였어요. 그때만 해도 우리한텐 '장거리 산행 = 중등산화'라는 게 공식이었잖아요? 하지만 이들은 '가볍게 빨리 갈 수 있는데 왜 느리게 오래 가는 거지?'란 관점이었죠."

그렇게 러닝에서 넘어온 사람들의 흐름에 휩쓸려 그도 마찬가지로 트레일러닝에 푹 빠지게 됐다. 그러던 차에 10년 전 용인시청에서 출발해 환종주하는 코스를 하나 걸었던 것이 생각났다. 거리와 획득고도, 경사도나 편의성, 타 등산객 이용 빈도 등을 고려해 보니 모든 조건이 트레일러닝 코스로 최적이었다. 그래서 이 코스를 토대로 내년 상반기에 트레일러닝 대회를 하나 만들어볼 요량으로 현재 준비 중이다.
"수도권 분들이 트레일러닝 대회에 대한 수요가 많아요. 최근 국립공원에서도 대회 개최를 막고 그래서 다들 대회에 참가하려면 저 멀리 지방까지 가야 되는 현실이죠. 그러니 가까운 용인에서 이에 준하는 대회가 열리면 꽤 많은 관심을 끌 것 같아요. 용인이 트레일러닝특례시가 되도록 한 번 해보려고 합니다. 요즘 인기 있는 장수트레일러닝 대회도 시작은 이와 같았다고 들었어요. 조언을 들어보려 한 번 내려가려고 합니다."
완주 후 회복이 중요
마지막으로 그는 "무엇을 완주했느냐보다 무엇을 완주하고도 괜찮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몸은 안 좋으면 분명한 신호를 보낸다. 그 소리를 들어야 한다. 애써 이를 무시하고 산행을 강행하면 탈이 난다. 소리를 듣고 테이핑, 아이싱, 보행법, 호흡법, 회복, 컨디션 조절, 운행법, 페이스 조절 등을 알맞게 해주면 부상을 확 줄일 수 있다.
"의사가 3주 쉬라고 얘기해도 많은 사람들이 1주일 뒤 괜찮은 것 같다고 산에 오르죠. 그러면 '와 1주일 쉬었다고, 그거 좀 다쳤다고 내가 이 정도로 힘들어하네?'하면서 자존심 상해하죠. 그래서 운동을 더 하고, 또 다쳐요.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지금은 예전처럼 체력을 올린다고 납 조끼 입고 모래주머니 차고 등산하던 시대가 아니에요. 극기, 헝그리정신 같은 건 물론 여전히 중요하지만 운동과 회복에 대한 생리학적 이해도를 바탕으로 둬야 안전한 도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