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등돌린 코어 지지층을 만나다

나주·익산·대전 김연희 기자 2026. 9. 15.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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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5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 더불어민주당 전남광주 지역 합동연설회가 열리는 나주종합스포츠파크 다목적체육관 앞은 각 후보를 응원하러 온 당원들로 일찍부터 북적였다.

결국 "부패한 엘리트 기득권을 타파한다는 민주당의 시대적 과제"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의심된다는 것이 코어 지지층의 시각이다.

서울 지역 권리당원으로 정청래 후보를 지지했던 정기용씨(가명·59)는 "이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흔들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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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당대회가 배출한 것은 신임 당대표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에게 비토에 가까운 감정을 가진 일부 코어 지지층이 출현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았다.
8월15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합동연설회 행사장 앞에서 정청래 후보 지지자들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시사IN 김연희

8월15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 더불어민주당 전남광주 지역 합동연설회가 열리는 나주종합스포츠파크 다목적체육관 앞은 각 후보를 응원하러 온 당원들로 일찍부터 북적였다. 특히 노란색 바람개비를 든 정청래 진영과, 이재명TV 등의 문구가 쓰인 파란 옷을 맞춰 입은 김민석 진영 사이 신경전이 치열했다. 흥분한 지지자들이 몸싸움을 벌이려 해 주변 사람들이 말리는 소동도 잠시 빚어졌다.

김상화씨(가명·51)는 ‘2번 알정찍’이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달린 머리띠를 쓰고 있었다. 2번은 정청래 당대표 후보의 기호, ‘알정찍’은 ‘알았어 정청래 찍을게’라는 ‘팀정청래’ 쪽의 슬로건이다. 머리띠를 뒤집으면 친청 최고위원 후보인 ‘6번 이성윤’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광주에서 공예방을 운영하는 김씨는 이 머리띠를 직접 만들었다. 이번 전당대회 기간 호남 지역뿐만 아니라 대전·부산·인천·대구 등 주말마다 열리는 모든 합동 유세장을 찾아 ‘팀정청래’ 후보들을 응원했다.

유세전을 벌이느라 목이 반쯤 쉰 그는 “너무 속상하다”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는 지금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고, 지인들에게 직접 전화해 한 표를 호소하는 일명 ‘밭갈이’에도 적극 동참했다. 그렇게 당선시킨 대통령이 전통적인 당원들의 뜻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내가 만든 대통령을 내 손으로 끌어내리게 된다 해도 이제는 어쩔 수 없구나 싶다. 남편에게 배신당해도 괘씸한 마음이 이 정도는 아닐 것 같다.”

김민석 후보의 승리로 끝난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가 배출한 것은 신임 당대표뿐만이 아니다. 역대급 이전투구를 거치며 민주당 지지층이 ‘친석(친김민석)’과 ‘친청(친정청래)’으로 극명하게 양분되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에게 비토에 가까운 감정을 가진 ‘성난 지지자’들이 출현했다. 스스로를 ‘코어 지지자’로 호명하는 사람들 중 일부이기도 하다. 이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는 대통령 지지율 하락세가 전통 당원들의 명령을 어긴 대가로 통한다. 정청래 후보의 패배 후 민주당을 탈당하려던 울분을 누르고 다음 총선과 대선을 준비하자는 얘기도 오간다. 탈당하지 않는 대신 당비는 권리당원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 금액인 1000원으로 낮춘다.

8월17일 대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벌어진 고공 시위는 극적인 단면이다. 이날 전당대회에선 한 남성이 중앙 조명탑에 올라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포스터를 흔들며 자신에게 마이크를 달라고 요구했다. 40여 분간의 실랑이 끝에 체포된 그는 경찰차에 태워지기 전 취재진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이재명 대통령은) 내가 최고로 존경했던 양반이다. 그런데 왜 이상한 사람들을 픽업하냐. 친명, 반명이 어딨고 신천지가 어딨냐.” 이 남성이 멘 가방에는 ‘내란행위자 처벌’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이들은 왜 이렇게 화가 난 걸까?

8월17일 대전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남성이 행사장 중앙 조명탑에 올라 고공 시위를 벌였다. ⓒ시사IN 조남진

전당대회장에서 만난 이창모씨(가명·60)는 노란 ‘노사모’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순회 경선 기간 전국을 다니며 팀정청래 지지 활동을 벌였다. 일부이긴 하지만 노사모 회원들이 ‘노사모’ 이름으로 단체 행동에 나선 것은 2019년 해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민주당과는 2004년 열린우리당 대의원으로 인연을 맺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현재는 권리 당원이다.

정청래 후보를 열성적으로 지지한 이유를 묻자, 이씨는 따지듯 되물었다. “내가 신천지, 반명, 분열주의자입니까?” 신천지, 반명, 분열주의는 당대표 레이스 초반이던 지난 7월, 김민석 대표가 거론했다. 정청래 후보 쪽을 겨냥한다고 해석되었다. 당원을 갈라치기하고 코어 지지층을 ‘반명’으로 먼저 몰아간 쪽은 김민석 측이라는 것이다.

이창모씨에 따르면 정청래는 민주당 국회의원 대다수, 사실상 김민석을 편드는 대통령, 뉴이재명 평론가 등 민주당 내 ‘신세력’으로부터 “다구리”를 당했다. 이런 인식은 정청래 후보를 지지했던 당원들 사이에 상당히 팽배하다. 이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에서 정청래는 2016년 공천 컷오프에도 불구하고 당을 지킨 “의리 있는” 정치인인 반면, 김민석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뒤로하고 정몽준에게 간 “기회주의자”다. 그런 “정청래를 흔드는 것은 민주당과 민주당을 지켜온 코어 지지층을 흔드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보완수사권 폐지되었지만…’

그 밑바탕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코어 지지층의 뜻을 ‘배신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짙게 깔려 있다. 김상화씨의 말이다. “제가 한참 이 얘기를 달고 살았다. ‘누가 코스피 5000 만들어달랬어? 윤석열이 코스피 2500이 깨져서 탄핵됐어? 검찰개혁 그거 하나 해달라는데 대체 왜 이래!’ 이혜훈을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임명할 때부터 ‘이거 이상하다’ 싶었지만 숨은 뜻이 있겠거니 했다. 이제는 이 사람이 우리를 속인 건가, 그런 생각만 든다.”

일부 코어 지지층에게 검찰개혁은 검찰의 오랜 권한 남용을 바로잡는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검찰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목숨을 잃었다’라는 부채 의식에 더해, 한국 사회 “기득권과의 전쟁”이라는 상징성이 검찰개혁에 덧씌워져 있다. 결과적으로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지만, 이는 당대표 선거 때문에 친명 세력에서 어쩔 수 없이 동의한 일일 뿐이다. 결국 “부패한 엘리트 기득권을 타파한다는 민주당의 시대적 과제”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의심된다는 것이 코어 지지층의 시각이다.

이창모씨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고 딱 잘라 말했다. “왜 국힘당이랑 골프를 치나. 지금 내란이 청산되었나? 우리 코어 지지층이 바라는 건 내란당 해산인데, 엉뚱한 걸 하고 있다.” 지난 6~7월,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과 골프 회동을 가진 것을 두고 한 말이다. “12·3 비상계엄 때 저도 아내와 함께 국회 앞으로 갔다. 이재명 대통령이 잘해서 대통령이 됐나? 국민들과 당원들이 살려줘서 대통령이 된 것 아닌가. 그러면 ‘지지층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지 뭐 하는 건가.”

이 대목에서 일부 정치 유튜브와 커뮤니티를 떠도는 일명 ‘연임 개헌론’이 등장했다. 임기가 끝나면 중단되었던 재판을 받아야 하기에, 이 대통령은 ‘연임 개헌’을 원하고 있으며 개헌안 의결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국민의힘 의원들과 골프를 치는 등 우호적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근거를 묻자 이창모씨는 “연임 안 하겠다는 말을 대통령이 직접 못하고 있지 않나”라고 답했다.

서울 지역 권리당원으로 정청래 후보를 지지했던 정기용씨(가명·59)는 “이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흔들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도 외연 확장으로 구조적 다수를 만들어야 재집권이 가능하다는 의견에도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정씨가 보기에 중도 외연 확장은 역사적으로 성공 사례가 없는 실패한 길이며, 정치철학이 없는 구조적 다수는 “욕망 결합체”일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말대로, 저는 대통령을 머슴으로 뽑았다. 그런데 그 머슴이 갑자기 집을 장악하고, 낯선 사람들을 픽하고, 주인을 몰아내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신뢰를 이어갈 수 있겠나? 민주당은 가치를 중심으로 뭉친 정당이다. 가치를 버리고 얻는 실용은 실용이 아니라 거대한 사기극일 뿐이다.” 정씨는 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8월19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 당대표·후보자 만찬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건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훈식 비서실장, 송영길 후보, 김민석 대표, 이재명 대통령, 한병도 원내대표, 정청래 후보, 홍익표 정무수석. ⓒ청와대

민주당TV 첫 방송 때 벌어진 일

정청래 후보를 지지했던 이들의 말과 SNS 게시물에는 유시민 작가가 펼쳤던 논리가 자주 인용된다. 유 작가는 지난 3월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 나와 민주당 지지층을 가치 중심의 A와 이익 중심의 B로 나누는 일명 ‘ABC론’을 제시했다. 그 후 여러 유튜브에 출연하며 ‘증축’을 원했던 기존 지지층의 바람과 달리,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의 재건축·재개발을 꾀하며 “필연적 실패의 길로 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코어 지지층에게, 그런 유시민 작가는 “다른 사람이 못하는 말을 하고” 전통 당원들이 가지고 있던 의심을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며” 민주당을 버리지 않을 “희망과 감동 주는” 사람이다.

8월24일 유튜브 방송 ‘저널리스트’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눈을 뜬다. 윤석열에게 봤던 그 요소인데, 우리의 이성적 사유가 잠드는 순간 걔들이 눈을 뜬다. 지금 민주당은 걔들이 눈을 떴다. 그런데 당원들은, 그리고 열성 지지자들은 이익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다. 옳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눈을 뜨고 있었다. 그래서 전당대회 결과가 (김민석 대표의 일방적 승리가 아닌) 54대 46으로 나온 것이다. 저는 민주당에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본다.”

8월17일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린 대전컨벤션센터 앞에서 지지자들이 정청래 후보를 응원하고 있다.ⓒ시사IN 조남진

흡사 예언처럼 들리는 이 진단이 참일지 거짓일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분노하는 일군의 코어 지지층은 적극적으로 ‘실력 행사’에 나서는 부류의 시민들이라는 것이다. 김민석 대표가 야심 차게 추진한 민주당TV의 첫 라이브 방송을 하루 앞둔 8월31일, 정청래 지지자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는 같은 시간 방송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함께 보자’는 내용의 웹자보가 여기저기 공유되었다. 다음 날인 9월1일 아침 7시, 김민석 대표가 출연한 민주당TV의 첫 방송은 동시 접속자가 5만명을 넘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동시에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동시 접속자 20만명, 슈퍼챗 5500만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창모씨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후보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노사모 회원들은 흩어지지 않고 조직을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4년 뒤 정청래 의원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올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는 2028년 총선에서 김민석 대표가 친청계 의원들을 공천 탈락시키는 등 ‘팀정청래’를 공격한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김민석 대표 지역구인) 영등포을 좌표를 찍고, 그 지역 권리당원을 모아서 낙선운동을 벌일 거다. 지난 총선에서 우리가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라는 뜻의 멸칭)’을 잘라냈듯이 말이다.”

나주·익산·대전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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